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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철 사이 인류가 처음 사용한 금속, 청동기

<복원한 청동기 시대 마을(고창고인돌박물관)>   

“이보시오! 이보시오! 여기 고물 좀 가져가시오.”

“어디 이 정도면 엿 한 덩이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녹슨 고물은 어디서 났소?”

“비가 많이 와서 집 주변에 배수로를 파다 우연히 나왔지요.”

“하하! 횡재하셨구려.”

전남 화순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고물 장수가 엿 한 덩이로 바꾼 고물은 다름 아닌 청동기였어요. 그것도 발굴 장소를 알 수 있고 우리나라에 뛰어난 청동기 문화가 있었음을 증명한 국보급 청동기였어요. 청동기는 무엇일까요? 청동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구리의 발견과 문명의 발전

대략 5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첫 인류가 나타났어요.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인류가 돌을 이용해 처음으로 도구를 만든 시기는 대략 250만 년 전으로 보고 있어요.

인류는 우연히 돌과 돌끼리 부딪혀 떨어져 나간 돌조각에서 날카로운 날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날카로운 날을 이용해 찍거나 자르는 도구로 사용했어요. 돌을 다듬는 기술도 조금씩 발전하면서 주먹도끼나 찌르개 등 여러 도구를 만들 수 있었어요.

오랫동안 인류는 돌을 다듬는 기술을 발전시켰어요. 신석기 시대에는 돌을 더욱 날카롭게 갈아서 다양한 용도의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어요.

<뗀석기와 간석기>   
국립중앙박물관

아주 오랜 기간 돌을 사용하던 인류는 기원전 약 8000년 전 돌 속에서 새로운 재료를 발견했어요. 다른 의견들도 있지만, 지금의 중동 지역에 살던 인류가 처음 발견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그 재료는 동(구리)이라는 금속이었어요. 구리가 포함된 돌을 쌓아 불을 피우면 구리가 녹아요. 그리고 이것이 다시 굳으면 단단한 금속이 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구리를 발견한 인류는 이때부터 불을 이용해 돌 속에 포함된 금속을 가열해 녹여서 뽑아내고, 이것을 다시 굳히는 과정을 통해 구리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구리 광석과 주석 광석>   
경희대학교 자연사박물관

도구를 만드는 재료로 구리를 처음 이용했을 때는 구리 광석을 얻기가 매우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땅 위에서 구할 수 있는 광석을 이용하다 점점 땅속을 파들어 갔지만 아주 적은 양의 구리만 얻을 수 있었어요. 게다가 순수한 구리로 만들면 단단하지가 않아 아주 작은 크기의 송곳, 낚싯바늘 등을 만드는 데 만족해야 했어요.

구리를 발견하고 또 많은 시간이 지났어요. 그리고 대략 기원전 4000년 전 인류는 구리에 주석이란 광물을 함께 녹이면 더 낮은 온도(700~900℃)에서 구리를 녹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금속의 녹는 온도가 낮아지면 그만큼 가공하기도 쉬워지지요.

이렇게 구리와 주석을 함께 녹여 만든 금속을 청동이라고 해요. 청동은 주석의 양에 따라 색과 단단한 정도가 달라졌어요. 무른 성질의 구리가 주석과 만나 더 단단한 금속이 되자 여러 도구를 만들 수 있었어요. 드디어 본격적인 청동기 시대가 열린 것이에요.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 시작된 청동기 문화는 초원길을 따라 동쪽으로 전해졌어요. 그리고 한반도에도 전해졌고, 다양한 청동기가 만들어졌지요.

한반도에 전해진 청동기! 우리 조상들은 어떤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했을까요?

  

최초의 청동기는 어떤 모습일까?

이스라엘의 유적에서 한 여자의 뼈가 발견되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건조한 기후 때문에 유골은 묻혔을 때의 모습 그대로 발굴되었어요. 이 여자는 손에 작은 청동 송곳을 꼭 쥐고 있었어요. 학자들은 여자가 쥐고 있던 청동 송곳이 구리가 처음 사용되었을 때 만들어진 유물로 밝혀지자 깜짝 놀랐어요.

인류가 구리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는 광산을 개발하는 방법도 몰랐고, 금속을 다루는 법도 몰랐어요. 그래서 땅 위에서 구한 돌을 가열해 아주 적은 양의 구리를 빼내 도구를 만들었어요. 게다가 구리가 단단하지 않아 큰 도구를 만들 수도 없었어요. 큰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수천 년이 지나서야 가능했지요.

지금까지 발굴된 가장 빠른 시기의 구리 유물은 장식 구술이나 송곳, 낚싯바늘 등 대부분 크기가 작은 것들이에요. 적은 양의 구리와 단순한 제조 기술로 만든 것들이죠.

청동기를 만드는 최고의 기술, 거푸집

돌로 도구를 만들 때는 주로 돌을 부딪쳐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들었어요. 이런 방법으로는 사람이 원하는 모양으로 도구를 만들기가 어려웠었어요. 갈기에 쉬운 돌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인류가 구리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면서 도구 제작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어요.

<청동검 거푸집과 청동도끼 거푸집(국립중앙박물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처음에 사람들은 가열한 구리 덩어리를 망치로 두드려 작은 도구를 만들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구리의 생산량도 늘어나면서 녹은 구리 용액을 일정한 틀에 부어 굳히면 똑같은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도구를 만들기 위해 만든 틀을 거푸집이라고 해요. 거푸집을 이용하면 똑같은 모양의 청동기 여러 개를 손쉽게 만들 수 있었어요. 또한 거푸집의 모양을 달리해서 다른 용도의 도구를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어요.

녹은 금속 액체를 거푸집에 붇고 굳혀서 물건을 만드는 것을 ‘주조’라고 해요. 청동기 시대에 개발된 주조 기술은 현재에도 많은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어요.

<거푸집을 이용한 청동기 제작>   

독특한 모양의 청동검, 비파형 동검

둥글게 배가 부른 모양이 ‘비파’라는 악기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청동검이 비파형 동검이에요. 학자들은 고조선이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만주와 한반도의 북쪽에 있었을 것으로 보아요. 그런데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의 영역에서 청동거울과 함께 많이 출토되었어요.

<비파형 동검과 손잡이를 단 비파형 동검, 그리고 중국식 동검>   
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고조선 사람이 중심이 되어 만든 청동검은 모양이나 만드는 방법이 중국에 있던 나라의 것과 달랐어요. 특히 비파형 청동검은 검날과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결합해 사용했어요.

이와는 다르게 중국검은 한 몸으로 만들었죠. 검날과 손잡이를 따로 만들면 한쪽이 망가져도 일부만 바꿔 쓸 수 있었어요. 조립식으로 만든 비파형 동검의 제작 방식은 지금도 많이 사용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비파형 동검과 고조선의 범위 비교>   

잔무늬 거울의 미스터리

청동거울은 한반도와 중국, 일본에서도 많이 출토되는 대표적인 청동기 유물이에요.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청동거울은 하늘의 태양을 의미한 것으로 보여요. 제사장은 가슴에 청동거울(태양)을 매달아 자신이 하늘을 대신한 사람임을 과시했을 거예요.

<잔무늬 거울(다뉴세문경, 문화재청)과 청동거울을 매단 제사장의 상상도>   

1960년경 충남 논산에서 특별한 청동거울 한 점이 출토되었어요. 이 청동거울을 조사한 학자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지름 21.2㎝의 청동거울 안에는 무려 1만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동심원이 새겨져 있었어요.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0.3㎜로 머리카락보다 더 가늘었어요. 정밀한 도구와 확대경도 없던 시대에 수많은 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렸다는 것에 학자들 모두 감탄하였어요.

게다가 청동거울은 주조법을 이용해 만들었어요. 청동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것은 0.3mm 간격의 수많은 선을 가진 거푸집을 만들었다는 것이에요. 학자들은 이처럼 정교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청동기를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학자들은 잔무늬 거울의 제작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어요. 그러나 작은 원 안에 수많은 선을 그리는 작업은 실패를 거듭했어요. 간신히 선을 그려 거푸집을 만들었어도 청동을 붇다가 거푸집이 깨어지거나 선 무늬가 뭉개졌어요.

수십 년 실패를 거듭하던 학자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복원에 성공했어요. 하지만 잔무늬 거울의 정교함을 완벽하게 표현해내지는 못했어요. 청동기 시대 고조선의 초정밀 주조법은 지금까지 우리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어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청동기 시대는 청동으로 만든 도구만 사용했을까?

한반도에 청동기와 제조법이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청동기를 사용했어요. 그럼 청동기 시대 일반 백성들도 청동기를 사용했을까요?

많은 수의 청동기가 한반도에 출토되면서 당시 사회 모습을 되살릴 수 있었어요. 출토된 청동기의 종류를 살펴보면, 비파형 청동검이나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 최고 제사장이 사용했을 도구가 많아요.

청동기가 더 발전하면서 세형동검이나 투겁창 등 전쟁에서 사용했던 무기 종류도 늘어났어요. 하지만 일반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했을 도구들은 많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청동기 시대 간석기(국립중앙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뜻밖에 청동기 대신 간석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어요. 간돌칼이나 간화살촉 등 무기류도 많이 출토되었지만, 반달돌칼이나 도끼 등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던 도구도 많이 출토되었어요. 신석기 시대 만들어진 간석기는 청동기 시대에 더욱 정교해지면서 생활 속에서 두루 사용된 것이지요.

청동기 시대에 간석기가 많이 사용된 까닭은 아마도 청동의 재료가 되는 구리와 주석을 넉넉하게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광산을 개발해 얻어야 하는 구리와 주석은 귀한 금속이었고, 이것을 이용해 만든 청동기는 당연히 귀한 물건이 되었지요.

청동이 귀한 청동기 시대가 지나가면서 금속 다루는 기술이 발전하였고, 청동보다 더 구하기 쉬운 철이 나타나면서 일반 백성도 금속을 이용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청동으로 시작한 금속의 시대가 백성들에게 더 많은 금속 도구를 만들어낼 기회를 가져다주었어요.

인류는 새로운 재료와 제조법을 개발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어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크게 바꿀 때는 늘 새로운 기술이 그 토대가 되었어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삶을 더욱 발전시킬 새로운 기술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아요.

[집필자] 신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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