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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소리를 내는 성덕 대왕 신종

<성덕 대왕 신종(경북 경주시)>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여보게, 오늘 아침에 자네도 종소리를 들었는가?”

“들었네. 드디어 어렵게 봉덕사 종이 완성되었다니, 믿기지 않네. 마치 부처님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아 마음이 평화로웠다네.”

고구려‧백제‧신라는 모두 불교를 믿었어요. 절을 짓고, 종을 만들고, 탑을 세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려고 했지요. 신라에는 유명한 종이 있었어요. 바로 봉덕사에 있는 종이지요. 봉덕사의 종은 어떤 종일까요? 봉덕사의 종이 왜 유명할까요?

절에 가면 종이 왜 있을까요?

절은 승려나 불교 신자들이 머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고 전하는 곳이에요. 절에 가면 여러 가지 불교 유물과 불교용품을 볼 수 있어요. 부처님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불상이 있고, 마당에서는 석탑이나 석등도 볼 수 있어요. 이 밖에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법고, 운판, 목어, 범종 같은 소리를 내는 불교 도구들이 있어요.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란 뜻으로 쇠가죽으로 만든 북이에요.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넓은 판이에요. 목어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배 부분을 파낸 것으로 두 개의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요. 물에 사는 짐승을 깨우치기 위해 목어를 친다고 해요.

범종은 절에서 때를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또는 불교 의식을 할 때 누각에 걸어놓고 나무 막대로 치는 큰 종을 말해요. 보통 새벽 예불 때는 28번, 저녁 예불 때는 33번을 쳐요. 범종의 ‘범’은 청정하다 신성하다는 뜻을 가진 불교 용어에요. 즉 범종은 청정한 절에서 사용하는 ‘맑은 소리를 내는 종’이라는 뜻이에요.

불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로 표현한 것이고, 불상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태로 옮겨 놓은 것이에요. 범종의 소리는 곧 부처님의 목소리를 옮겨 놓은 것을 뜻해요.​ 따라서 범종을 치는 가장 큰 이유는 고통받는 중생들, 심지어 지옥에 있는 중생의 영혼까지도 종소리를 듣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지요.

  

신라, 성덕 대왕 신종을 만들다

불교를 깊게 믿었던 신라 사람들도 아름답고 순수한 종소리를 들으면 온갖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신라의 제35대 경덕왕(재위 742~765)도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왕(재위 702~737)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커다란 범종을 만들고자 하였어요.

754년 경덕왕은 많은 양의 구리를 준비하고 범종을 만들기 시작하였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종을 만드는 족족 금이 가거나 깨져 실패하고 말았어요. 안타깝게도 경덕왕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범종을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어요. 경덕왕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혜공왕(재위 765~780)이 왕위에 올랐어요. 혜공왕은 신하들에게 말했어요.

“선왕 때부터 만들다 실패한 봉덕사 범종을 빨리 완성하세요.”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봉덕사 마당에는 어느덧 많은 신라 사람들이 내놓은 10만여 근의 구리가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신하들은 종을 잘 만들기로 소문난 장인들을 모두 모아 일을 시작했어요. 온갖 정성을 기울여 노력한 끝에 마침내 종이 완성되었어요. 시험 삼아 종을 쳐도 금이 가거나 깨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종이 제소리를 내지 못했어요. 범종을 치면 긴 여운이 있는 아름다운 소리가 나야 하는데, 무슨 사발 깨지는 소리가 나서 듣기 괴로웠지요.

혜공왕은 하는 수 없이 종을 다시 만들도록 명령하였어요. 처음 만든 종을 녹이고 새롭게 만들었지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을 만들겠다는 신라 사람들의 노력 끝에 771년(혜공왕 7) 드디어 아름다운 종 소리를 내는 범종이 완성되었어요.

“이제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땅속에서라도 이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고 기뻐하실 것이다.”

혜공왕은 종소리를 듣고 감동하였어요. 그리고 지상에서 듣기 어려운 맑은소리이니 이 종을 ‘신종’이라고 부르라며 명령하였지요. 그래서 봉덕사의 종은 ‘성덕 대왕 신종’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구설수도 많았어요. 그 가운데는 종의 소리를 맑게 내기 위해 아기를 넣어 만들었다는 설화가 만들어질 정도였지요. 그래서 성덕 대왕 신종을 치면 아기가 “에밀레 에밀레”하고 우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지요.

사실일까요? 1970년대 한 연구에서 성덕 대왕 신종에서 사람의 뼈에 들어 있는 인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1998년의 조사에서는 인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아기를 넣었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많아요. 어쨌든 이런 사연으로 성덕 대왕 신종은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렸어요.

그런데 지금 성덕 대왕 신종은 봉덕사가 아닌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요. 왜 그럴까요? 성덕 대왕 신종은 봉덕사에 걸려 있었어요. 그러다 조선 시대 초 경주 북천가에 홍수가 나 봉덕사가 없어졌어요. 그 후 종은 길거리에서 아이들의 발에 차이고 쇠뿔에 받히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러던 것을 1460년(세조 6) 영묘사라는 절로 종을 옮기게 되었어요. 그러다 중종 때 봉황대 옆에 종각을 지어 그곳에 보관하게 되었지요. 그 뒤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가, 1973년 새로 지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져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것이에요.

  
사진출처: 문화재청

성덕 대왕 신종은 어떤 종일까요

국보 29호인 성덕 대왕 신종은 높이가 3.66m, 두께 11∼25㎝, 종 입의 지름이 2.27m에 달하는 큰 종이에요.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요?

기록에는 황동 12만 근으로 종을 만들었다고 해요. 실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해 보니 종의 무게는 18.9톤으로 확인되었지요. 어마어마하지요? 이 무게로 맑은소리를 내다니 신기하지요.

그런데 종을 만들 때 구리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은 경우에 따라 돌로 만들기도 하지만 구리를 사용하여 만드는 동종이 대부분이에요. 구리로 종을 만드는 이유는 소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예요. 오래도록 제소리를 내는 단단한 종을 만들려면 구리에 주석을 적당히 섞은 청동으로 만들어야만 해요.

성덕 대왕 신종에는 여러 가지 무늬와 글씨가 새겨져 있어요. 종의 맨 윗부분에는 종을 매어 달 수 있게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가 용머리 모양으로 웅대하게 조각되어 있어요. 두 마리가 아닌 한 마리 용이 생동감 있는 자세로 허리를 구부린 모양은 다른 나라 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요.

종의 어깨 부분에는 여덟 가지 음을 상징하는 여덟 송이의 연꽃무늬가 있어요. 이 연꽃은 보상화라고도 하는데, 보상화는 극락정토에 피는 상상 속의 꽃이에요. 종의 어깨 밑에는 네 곳에 대칭으로 네모꼴의 연곽이 있어요. 그리고 연곽 안에는 각각 9개씩 모두 36개의 연꽃이 새겨져 있지요.

연곽 아래 종의 몸체 표면에는 2쌍의 비천상이 새겨져 있어요. 꽃구름을 타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향로를 받들고 내려오는 천인상이 있고, 그들 주위로 보상화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지요. 비천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날고 있는 천인상을 의미해요. 천상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지요. 이 비천상은 그 자체로도 뛰어난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요.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연꽃 모양으로 새겨져 있어요. 종의 표면에 종을 치는 자리를 만들고, 여기를 종을 치는 나무 막대인 당목으로 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지요. 반면 서양의 종은 종 안쪽에 추를 매달고는 종 전체를 흔들어 소리를 낸답니다.

몸체 앞면, 뒷면 두 곳에는 1037자의 글이 대칭으로 새겨져 있어요. 종에 새겨진 글씨(종명)에는 종에 대한 내력이 담겨 있어요. 때문에 성덕 대왕 신종은 신라의 종교와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자 자료로도 평가받고 있어요.

종 입구는 여덟 부분으로 나뉜 ‘8능형’으로 되어 있어요. 능마다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굴곡져 있어요. 이러한 형태는 오대산 상원사 동종 같은 다른 신라 종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에요.

종 아래 바닥에 파인 구멍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리를 울리는 통, 곧 움통이라고 해요. 성덕 대왕 신종에는 웅덩이 구조의 움통이 있었을 것으로 보여요. 움통은 소리의 공명을 일으켜 종소리가 오래 울리도록 하는 동시에 땅속으로 소리가 전달하는 통로 구실을 해요. 불교적인 면에서 지하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움통을 덮었을 때는 깡통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지만, 열었을 때는 막힌 숨이 탁 트이는 듯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나니, 움통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지요.

성덕 대왕 신종이 만들어졌을 때는 통일신라 예술이 각 분야에 걸쳐 전성기를 이룰 때였어요. 종소리뿐만 아니라 화려한 문양과 조각 수법은 시대를 대표할 만하지요. 특히 형태와 조각은 현대의 금속 기술로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고 해요. 신라의 금속 기술이 무척이나 발달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성덕 대왕 신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범종이라 할 만해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신라 종

신라의 종은 ‘한국 종’이라는 학명을 가질 만큼 세계적이며 독보적이에요. 대개 중국이나 일본 종이 수평이나 수직으로 선을 처리하여 띠를 둘렀다면, 우리 종은 몸통에 천인상이나 보살상을 수놓았어요.

특히 우리 종은 중국이나 일본의 종과 달리 맨 위 걸이 옆에 소리통(음통 또는 융통이라고도 합니다.)이 하나 더 있어요. 그래서 중국과 일본의 종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질 수 있다고 해요.

언젠가 일본의 한 방송국에서 세계 각국의 이름난 종소리를 녹음해 경연 대회를 열었어요. 여기서 성덕 대왕 신종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지요. 또 독일의 유명한 학자가 성덕 대왕 신종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감탄하였다고 해요.

성덕 대왕 신종은 한국 제일의 종이 아니라, 세계 제일의 종이다.

성덕 대왕 신종은 겉모습으로나 종소리로나 단연 세계적으로 으뜸이에요.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성덕 대왕 신종을 만든 사람들이 바로 통일신라 사람들이에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에밀레종이라고 불리게 된 이야기

성덕 대왕 신종은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러요.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요. 신라 제36대 혜공왕 때의 일이었어요. 혜공왕은 긴 한숨을 내쉬며 크게 걱정하고 있었어요.

“정말 큰 일이로다. 벌써 7년이 지나도록 종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도다.”

그러던 어느 날 혜공왕은 당시 최고의 세력가였던 김옹과 김양상을 불러 말했어요.

“번번이 종을 만드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정성이 부족해서인 듯하다. 앞으로 백성들에게 시주를 받아 종을 만들도록 하라.”

김옹과 김양상은 왕명을 받들어 봉덕사의 주지 스님을 만났어요.

“백성들이 정성스레 내놓은 시주를 모아 종을 만든다면, 부처님의 은혜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날부터 봉덕사 스님들은 시주를 받으러 백성들의 집을 찾아다녔어요. 두메산골까지 스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그러다 어느 허름한 오두막집 마당에 들어섰어요. 그리고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웠어요. 잠시 뒤 집 안에서 젊은 여인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나왔어요.

“나무 관세음보살. 나라에서 큰 종을 만들고 있으니, 시주를 해 주세요. 쇠붙이를 내셔도 좋고, 곡식을 내셔도 좋습니다.”

“저도 시주를 하고 싶지만 보시다시피 가난해서,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 아이밖에 없습니다. 세 살짜리 아이인데, 이 아이라도 나라에서 필요하다면 시주를 하겠지만…”

“아닙니다. 말씀을 들으니 제가 미안합니다.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시주를 하도록 하세요.”

스님은 합장을 하고 그 집을 떠났어요. 그런데 그날 밤 봉덕사 주지 스님의 꿈에 낯선 노인이 나타나서 주지 스님을 꾸짖었어요.

“시주를 받으러 다니면서 어찌하여 어린아이를 받지 않았느냐? 그 아이를 펄펄 끓는 쇳물에 집어넣어야 종이 제 소리를 내거늘…”

잠이 깬 주지 스님은 새벽에 스님들을 불러 모아 물었어요.

“세 살짜리 여자아이를 시주하겠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느냐?”

“예, 제가 바닷가 마을에서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시주를 청하니 자기는 가난해서 가진 게 세 살짜리 아이밖에 없다고, 나라에서 필요하다면 그 아이를 시주하겠다고 했습니다.”

“으음, 알겠다. 날이 밝는 대로 나와 함께 그 집으로 가자. 그 여자아이를 데려오는 거야.”

날이 밝자마자 주지 스님은 바닷가 마을을 찾아갔어요.

“나라에서 종을 만드는 데 필요하니 아이를 데려가겠소.”

결국 펄펄 끓는 쇳물에 그 어린아이를 넣어 종을 만들었어요.

“댕, 댕, 댕…!”

드디어 시험 타종을 하게 되었어요. 종소리는 맑고 은은했어요. 긴 여운을 남긴 채 온 누리에 퍼졌어요. 거듭된 실패 끝에 드디어 성덕 대왕 신종이 완성된 것이에요.

그런데 종소리는 “에밀레, 에밀레…”하며 슬프게 울렸어요. 종소리가 마치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 같았지요. 사람들은 종소리를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꼈어요. 이후 사람들은 성덕 대왕 신종을 ‘에밀레종’이라 부르게 되었지요.

여러분은 절에 가서 종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요? 만약 여러분이 성덕 대왕 신종의 종소리를 듣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신라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들리지 않을까요. 이것이 문화유산에 담긴 역사의 소리임을 잊지 마세요.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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