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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보물 창고, 경주 남산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경북 경주시)>   
문화재청

“산 서쪽 기슭에 있는 우물인 나정에서 빛이 비치고 있소.”

“말이 절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른 가봅시다.”

어느 날 진한 땅의 여섯 마을 촌장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서둘러 나정으로 가 보았어요. 그곳에는 커다란 자줏빛 알이 하나 있었어요. 말은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갔어요. 얼마 후 알에서 어린아이가 나왔는데, 그 아이가 바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예요.

박혁거세가 태어난 이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경주 남산의 서북쪽 자락이에요. 신라의 첫 임금이 태어난 남산은 신라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경주 남산을 야외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경주 남산은 경주시 남쪽에 있는 산이에요. 높이 500m 정도 되는 높지 않은 산으로 토함산과 함께 경주의 대표적인 산이에요. 신라 사람들은 이곳을 특별하게 여겼어요.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도, 신라 왕실의 별궁이 있던 포석정지도 경주 남산 자락에 있어요.

포석정지는 신라왕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 후삼국 시대에 신라 경애왕이 후백제의 공격으로 견훤에게 죽음을 맞게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국력이 약했던 신라 말의 상황을 보여주는 곳이에요. 남산에는 신라 건국에서부터 신라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던 순간의 유적들, 그리고 신라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지요.

<경주 나정과 포석정지>   
문화재청

남산의 유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요. 옛날 서라벌(신라)에 남녀 두 신이 찾아왔어요. 두 신은 서라벌의 경치를 둘러보며 빼어난 모습에 감탄했어요.

“경치가 멋지군요! 우리가 살 곳은 이곳인 듯합니다.”

그때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한 처녀가 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산처럼 생긴 남녀가 가까이 오고 있었어요. 깜짝 놀란 처녀는 소리를 지르며 기절했어요.

“산 봐라. 사람 살려!”

그 순간 두 신은 산으로 변했대요. 이 산이 바로 경주 남산과 망산이에요. 그런데 두 신은 왜 산으로 변했을까요? ‘산 같은 사람 봐라!’ 하고 외쳐야 하는데 ‘산 봐라!’하고 외쳤기 때문이라고 전해요.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 신라 사람들은 남산을 신이 변해 만들어진 신성한 곳으로 여겼어요. 이런 특별한 곳이니 왕이 나올 만하지요? 경주 남산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하면 모두 잘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요.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남산에 신령이 나타나 계시를 주었다는 기록도 전하지요.

한편, 경주 토함산에 세워진 석굴암과 불국사로 알 수 있듯 신라 사람들은 이 땅을 부처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어요. 신라 제23대 법흥왕부터 제28대 진덕왕까지 불교식 왕명을 쓰고 불교식 이름을 붙였어요. 수도인 금성(경주) 곳곳에 절을 세우고, 탑을 높이 올렸지요.

황룡사 9층 목탑 등 큰 규모의 탑을 세워 나라를 지키려고 했어요. 백성들에게 ‘왕이 곧 부처’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던 불교는 신라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퍼져나갔어요.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곳을 수미산이라고 해요. 신라 수도인 경주에 부처의 나라를 세우려고 했으니, 경주 남산은 수미산에 해당하는 곳이지요.

그래서일까요? 경주 남산 곳곳에서 절과 탑, 불상을 볼 수 있어요. 지금도 남산에는 100여 곳의 절터와 80여 구의 석불이 남아 있어요. 석탑도 60여 기나 남아 있지요. 한 마디로 산 전체가 야외 박물관과 같아요. 남산 주변 마을 이름도 미륵골, 탑골, 부처골 등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많아요.

지금도 경주 남산에는 불공을 드리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요. 신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왕이나 귀족은 물론 일반 백성들도 여러 이유로 경주 남산을 찾았을 거예요. 이웃 나라의 침입을 막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을 거예요. 무더운 여름에도,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도.

<남산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하는 신라인들>   

지금부터 신라인이 남긴 보물이 가득한 경주 남산을 돌아보며 그들의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까요?

  

신비로운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경주 남산을 오르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가 되면 만나는 불상이 있어요. 바로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선각육존불이에요. ‘선각’이란 선으로 새겼다는 뜻이에요. 선으로 새겨진 여섯 불상을 보는 순간 저절로 ‘와!’하는 감탄사가 나오지요.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바위 선들이 비교적 또렷해 신비로움까지 더해줘요. 조각이 섬세하고 뛰어나 바위에 선으로 새긴 불상 중 으뜸으로 꼽히는 문화유산이에요.

앞쪽 바위에는 중앙에 석가여래불이 서 있어요. 그 불상 오른쪽과 왼쪽에는 두 보살이 불상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어요. 안쪽 바위에는 중앙에 석가여래불이 어깨에만 옷을 걸치고 연꽃 의자에 앉아 있어요. 오른쪽과 왼쪽에는 목걸이를 걸고 있는 두 보살이 연꽃을 밟고 가운데 불상을 바라보고 서 있어요.

바위 위에는 빗물이 흘러가도록 파 놓은 물길과 홈이 있어요. 주변에서는 깨진 기와 조각도 발견되었지요. 학자들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지붕 흔적으로 보고 있어요.

<경주 남산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문화재청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 남산에는 햇빛 각도에 따라 인상이 바뀌는, 천진한 미소로 유명한 불상이 있어요. 바로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지요. 아기 같은 작은 키와 얼굴로도 유명해요. 지금은 세 개의 불상이 한자리에 서 있지만 원래는 남산 기슭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고 해요.

중앙에 있는 본존불이 가장 눈에 띄는데,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이 푸근하고 넉넉한 느낌을 주지요. 오른손은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 있고, 왼손은 아래로 내린 채 손바닥을 쫙 펴 내려뜨리고 있어요. 이런 손의 모습은 부처님이 중생들의 공포와 걱정을 없애주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왼쪽 보살상은 긴 목걸이를 걸고, 불경과 비슷한 것을 쥐고 서 있어요. 뒤쪽에는 동그란 광배가 있지요. 무릎 아랫부분이 부러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어요. 오른쪽 보살상은 꼿꼿하고 다부진 모습으로 서 있어요. 두 보살상 모두 장식이 세밀하게 묘사되었어요. 신라 사람들은 아이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세 불상을 보며 세상 근심을 잠시 잊을 수 있었을 거예요.

<경주 남산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문화재청

7개의 불상이 조각된 칠불암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에 있는 대표적인 불상 중 하나는 바로 7개의 불상이 조각되어있는 칠불암 마애불상군이에요. 남산에는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 많은데, 하늘신과 땅의 신이 바위에 머물며 사람들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으로 불상을 바위 곳곳에 새겼어요. 지배층이나 왕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남산 곳곳에 숨어 있는 신들이 나타나 그들을 혼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칠불암은 통일 신라 시대(8세기 중엽으로 추정)에 만들어진 암자(큰절에 딸린 작은 절)로 암자 옆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7개의 불상이 유명해요. 바위 면에 새겨놓은 세 불상과 사각의 돌기둥 각 면에 새겨놓은 네 개의 불상으로 모두 7구의 불상이 있어요.

화강암에 새겨진 삼존불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불상이에요. 가운데 본존불이 자리하고 있고 양옆에 보살이 있어요. 가운데 있는 본존불은 햇빛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고 해요. 마치 석굴암에 있는 본존불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해요. 어떤 때는 포근한 미소를 짓는 것 같고, 어떤 때는 근엄한 표정을 짓는 듯해요.

사각 기둥 네 면에 불상이 새겨진 것을 사방불이라고 해요. 이런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어요. 사방불은 사방 어디에나 부처가 있음을 뜻해요. 이 불상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꾹 다물고 있어요. 세상의 고통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위로하는 느낌을 주지요.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문화재청

경주 남산을 받침돌 삼아 서 있는 용장사곡 3층 석탑

경주 남산 서쪽의 용장사가 있었던 골짜기 정상에 단정한 모습으로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탑이 있어요. 바로 용장사곡 3층 석탑이지요. 통일 신라 시대 만들어진 탑으로 남산 바위 위에 세웠어요. 탑머리 장식은 모두 없어져 온전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탑의 모습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어요. 통일 신라 시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3층 탑 구조예요. 자연적인 기단인 바위에 2층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탑의 몸체를 세웠어요.

아래에서 보면 남산 정상에 꼿꼿하게 서 있어 마치 남산 전체를 받침돌로 삼고 있는 것 같아요. 탑의 머리는 하늘과 맞닿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신라 사람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탑을 세워 자신들의 소망을 하늘에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또한 탑 옆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을 껴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경주 남산 용장사곡 3층 석탑>   
문화재청

역사 속 작은 이야기: 남산에 있는 목이 잘린 불상

경주 남산에는 80여 기가 넘는 불상이 남아 있어요. 그 불상 중에는 이상하게도 머리가 잘려 나간 불상이 많아요.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도 그런 불상 중 하나지요. 사람들은 목 잘린 불상을 보고 깜짝 놀라곤 했어요. 이 불상은 발견될 당시 머리는 골짜기에 떨어져 있었고, 불상 몸체와 광배(부처의 몸 주위에서 나는 빛을 부처님 몸 뒷면에 표현한 것)도 여기 저기 나뒹굴고 있었어요.

이 불상 외에도 남산 여기저기에서 목 잘린 불상들이 많이 발견되었어요. 분황사 우물에서도 목이 잘린 불상이 많이 묻혀 있었어요.

도대체 왜 불상들의 목이 잘린 것일까요? 비바람에 견뎌내지 못해 목이 떨어져 나간 것일까요?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파괴한 것일까요? 이런 의문을 품고 자세히 살펴보니 목 부분에서 파괴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대요. 기록을 찾아보니, 『조선왕조실록』에 불상 목을 잘라 우물에 묻었다는 내용도 있었지요.

도대체 왜 조선 시대에 그 많은 불상의 목을 자른 것일까요? 유교를 중요시해서 불상 목을 잘라버린 것일까요? 정확한 기록이 없어 그 이유는 알 수 없어요. 다만 짐작할 뿐이지요.

지금도 잘려 나간 불상 머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최근에도 불상 머리 하나가 발견되었어요.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도 목과 광배를 붙여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놓았어요.

경주 남산을 돌아보니 왜 신라의 보물 창고라고 하는지 알겠지요? 수많은 절과 탑, 불상이 있던 이곳은 신라인들이 믿음으로 만든 부처의 나라였어요. 단단한 바위에 불상을 새기고, 무거운 돌을 지고 산에 올라 탑을 세우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신라 사람들은 몸이 힘든 것보다 부처와 보살이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더 컸기에 곳곳에 많은 불상과 탑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도 부모님과 함께 경주 남산을 둘러보며 신라의 보물을 만나보세요.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문화재청

[집필자] 황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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