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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경북 군위군)>   
문화재청

“오늘날 학자들이 중국의 역사는 두루 통달하여 자세히 알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도리어 잘 알지 못하니 한탄스럽다.”

“왕께서 신에게 명하시니, 신은 우리나라 삼국의 역사를 기록하여 책으로 만들어 바치옵니다.”

우리나라 삼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해요. 신은 고려의 이름난 유학자 김부식이에요. 김부식은 고려 인종 임금의 명에 따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를 지었어요. 『삼국사기』는 어떤 책일까요? 또 『삼국유사』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 삼국사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무엇일까요? 고려 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요. 그런데 기원전에 이미 고조선과 부여,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있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는데 그전까지 역사책은 정말 없었던 것일까요?

『삼국사기』 이전에도 역사책이 만들어졌지만, 아쉽게도 모두 사라졌어요.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각 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역사책을 만들었음을 전하고 있어요.

고구려 영양왕 11년, 태학박사 이문진에게 명령하여 『신집』 5권을 만들었다. 건국 초기에 역사를 기록한 100권의 책자가 있어서 『유기』라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글을 다듬고 정리하였다.
백제 근초고왕 30년 박사 고흥이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여 『서기』를 만들었다.
신라 진흥왕 6년 대아찬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였다.

고구려에는 『유기』와 『신집』 이 있었고, 백제에는 『서기』가, 그리고 신라에는 『국사』라는 역사책이 있었어요. 고려 시대에 들어와 이를 바탕으로 삼국 시대 역사책이 편찬되었지만, 이 책들 모두 없어지고 현재 전하지 않아요. 그래서 『삼국사기』는 우리나라에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역사책 중 가장 오래되었어요.

삼국사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요?

『삼국사기』의 구성에 대해 알아볼까요? 『삼국사기』는 전체적으로 「본기」, 「열전」, 「잡지」, 「연표」 등으로 나뉘어 서술되고 있어요. 「본기」는 삼국의 왕에 대한 기록이고, 「열전」은 임금을 제외한 사람들의 기록이에요.

또 제사, 음악, 복식, 지리 등을 담고 있는 「잡지」, 「연표」 등 총 50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렇게 「본기」, 「세가」, 「열전」, 「지」, 「표」로 구성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기전체라고 해요. 중국의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서 비롯되었지요.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왕의 활동을 기록한 부분에 ‘본기’라는 제목을 달았어요. 『사기』에서 「본기」는 황제의 업적, 「세가」는 제후(황제의 지위보다 한 단계 낮은 왕)에 대한 기록이에요.

또 김부식은 글마다 사마천처럼 역사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해 자신의 평가를 붙임으로써 역사란 객관적인 사실과 함께 역사가의 해석이 포함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요.

삼국사기, 신라의 정통을 내세우다

『삼국사기』는 책 제목대로 ‘삼국의 역사’를 쓴 책이에요. 삼국을 통일한 신라만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까지 ‘우리’ 역사로 썼어요. 하지만 『삼국사기』 속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삼국사기』는 신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요. 신라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지요.

시조는 성이 박씨이고, 이름은 혁거세이다.
- 『삼국사기』 제1권 「신라 본기」-

김부식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 대한 서술로 『삼국사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그는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서 신라가 가장 먼저 출발한 것으로 보았어요.

인물을 다룬 「열전」 부분에서도 삼국 통일을 이끌었던 신라 장수 김유신의 기록이 가장 많아요. 「열전」의 맨 처음에 김유신이 소개되고, 열 권으로 이뤄진 「열전」 중에서 세 권이 모두 김유신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요. 이것은 신라의 삼국 통일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한 그의 역사관이 잘 드러난 부분이지요.

  
사진출처: 문화재청

승려 일연, 삼국유사를 쓰다

고려 중기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가 있다면, 고려 후기에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가 있어요. 일연은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나 무신 정권기와 원 간섭기에 활약한 승려였어요. 훗날 그는 왕에게 불교 강의를 할 정도로 나라에서도 존경받는 최고의 승려가 되었지요. 그렇다면 왜 스님이 역사책을 썼을까요?

『삼국유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쓴 일연이 살았던 시대 배경을 먼저 살펴봐야 해요. 일연이 승려로 활동하였던 시기는 고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나라 곳곳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에요. 고려는 몽골과의 항전에 돌입하였지만, 일반 백성들의 삶은 더욱더 고통스러워졌지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원의 간섭으로 고려는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어요. 일연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써 말년에 『삼국유사』를 펴내게 되지요.

일연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우리 전통에 관한 일들이 많이 빠져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책의 제목도 『삼국사기』에서 빠진 이야기를 썼다는 뜻으로 ‘유사(遺事)’라 이름 지었어요.

그러다 보니 『삼국유사』에는 신비하고 기이한 설화들과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어요. 우리 역사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보여 주는 게 『삼국유사』의 장점이라 할 수 있지요.

일연은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전쟁으로 고통받던 고려 후기에 중국 문화와 대등하면서도 독자적인 우리 문화에 자부심과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삼국유사』라는 역사책을 집필한 것이지요.

삼국유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요?

『삼국유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삼국유사』는 모두 아홉 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첫 번째 「왕력」 편은 왕들을 중심으로 쓴 연대기에요. 여기에는 가락국, 즉 가야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어요.

「기이」 편은 말 그대로 이상하고 신비로운 일에 관한 내용이에요. 우리가 동화책에서 볼 수 있던 이야기들도 실려 있지요. 대표적으로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가 그래요.

동해에 살고 있던 연오랑과 그의 아내 세오녀가 일본으로 가서 왕과 왕비가 되자 신라에서 해와 달의 빛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이지요. 이 밖에 처용의 얼굴 모습을 그려 놓으면 무시무시한 질병의 신인 역신이 물러나게 된다는 ‘처용가’ 이야기도 있어요.

「흥법」 편은 삼국에 불교가 처음 들어오게 된 과정과 불교의 발전에 대한 내용을 담았어요. 「탑상」 편은 불교의 사찰, 탑, 경전 등에 대한 내용인데, 삼국의 불교의 성격을 알 수 있지요.

대표적으로 몽골의 침입 때 불에 타 버려 지금은 그 온전한 모습을 알 수 없는 황룡사 9층 목탑 이야기가 있어요. 「의해」 편은 뛰어난 승려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원효와 의상을 비롯하여 화랑도에게 세속오계를 알려 준 원광법사의 생애와 일화 등이 나오지요.

「신주」 편은 귀신을 쫓아낸 이야기와 같이 신비스러운 주문에 대한 내용이에요. 「감통」 편은 불교적인 신비한 체험을 통해 일어난 기적적인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여기에 ‘도솔가’, ‘제망매가’ 등 유명한 향가가 등장하지요. 그래서 『삼국유사』를 통해 고대 문학에 대한 연구도 할 수 있지요. 「피은」 편은 세상을 떠나 숨어서 산 사람들의 생활을 다룬 내용이에요. 마지막으로 「효선」 편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에요.

이렇게 「왕력」에서 「효선」까지 『삼국유사』는 고대의 신화와 설화를 많이 싣고 있어요. 그리고 불상‧탑 등 불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도 담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삼국유사』는 민속‧예술‧문학‧종교 등 고대 우리 민족문화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로도 높이 평가 받고 있지요.

삼국유사,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를 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삼국사기』는 나라에서 만든 역사책이에요. 왕명으로 김부식을 대표로 여러 명의 관리가 참여하여 만들었지요. 기본적으로 유교적 시각과 강한 나라를 받들어 섬기는 사대주의적 태도가 깔린 데다 형식과 내용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에 반해 『삼국유사』는 승려인 일연과 그의 제자들이 썼기 때문에 불교적 색채가 짙고 형식과 내용이 비교적 자유로웠어요. 그래서 『삼국유사』에는 고대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불교와 민간 신앙, 그리고 신화와 전설 등의 이야기를 두루 담을 수 있었어요.

더구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서 빠진 고조선, 부여, 삼한, 가야, 발해까지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 고대사를 아는 데 매우 중요한 역사책이에요. 특히 고조선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로 기록했고, 단군 신화도 담고 있어요. 이것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큰 차이를 보여 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어요.

또한 일연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여자의 몸으로 변한 곰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를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 하고 있어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아무리 신화적인 요소가 있더라도 엄연한 우리의 역사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앞서 김부식은 박혁거세와 같은 영웅들이 알에서 태어난 것을 “괴이하고 믿을 수 없다.”고 했지요. 합리적이고 예법을 따지는 유학자인 김부식의 눈에 이러한 기이한 일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지요.

이에 반해 일연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나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모두 알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왕들의 탄생과 역사는 당연히 신비로운 것에서 시작한다며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있어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중국에서 제왕이 나올 때는 반드시 남과는 다른 큰 변화가 있었다면서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신비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어째서 괴이한 것이냐고 오히려 되묻고 있지요.

어쩌면 신화가 없는 민족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당성은 우리 민족의 독자성과 주체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건국 신화가 있는 고조선, 고구려, 신라 등은 중국에 뒤지지 않는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몽골의 지배에서 괴로워하는 백성에게 우리 고대사를 되찾아 주는 것은 민족의 주체성과 자부심을 일깨워 주는데 큰 의미를 주지요. 12세기의 김부식이 중국 중심의 세계관과 유교를 바탕으로 『삼국사기』를 지었다면, 13세기의 지식인 일연은 불교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우리 역사의 주체성과 독자성을 강조하는 『삼국유사』를 지었지요.

살펴본 바와 같이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는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고 있어요. 때문에 고려 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역사책은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어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잇금으로 왕을 정하다

신라에는 왕을 부르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었어요. 중국에서 쓰는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6세기 초인 제22대 지증왕 때부터였어요. 삼국의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늦었지요. 지증왕 전에는 ‘왕’이라는 말 대신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과 같은 말을 썼어요.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도 “지금 신라의 일을 기록함에 있어, 그 방언을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며, 「신라 본기」에서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을 기록하고 있어요. 거서간은 부족장, 차차웅은 제사장, 이사금은 연장자, 마립간은 우두머리를 뜻해요.

『삼국유사』에서도 남해 차차웅과 노례 이사금 이야기를 사례로 들며, 신라 왕의 호칭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신라 제2대왕은 남해 거서간 또는 남해 차차웅이라고도 하였어요. 신라 왕 중 오직 남해왕만이 이렇게 불렀어요.

“신라에서는 왕을 거서간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진한 말로 왕이란 말이다. 이는 귀인을 부르는 칭호라고 하며, 차차웅이라고도 한다.”

“차차웅이란 방언으로 무당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고 공경한다.”

또 신라에서는 왕을 이사금이라고도 불렀어요. 이사금이란 잇금이란 말로 이로 무엇을 물었을 때 생기는 자국을 말해요. 잇금을 재서 정한다는 것은 치아의 수가 많다는 즉 나이 순서를 뜻하지요. 남해왕이 죽자 그 아들 박노례가 석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 하였어요. 그러자 탈해가 왕위를 사양하며 말하였어요.

“내가 들으니 성스럽고 지혜 있는 사람은 이(치齒)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잇금으로 시험해 보자.”

이에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떡을 깨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노례의 잇자국이 더 많이 나왔어요. 때문에 치아의 수가 더 많은 노례가 먼저 왕위에 올랐지요. 잇금을 헤아려 왕을 정했다고 해서 이때부터 왕을 이사금이라 하였어요.

이분이 신라 제3대왕인 유리 이사금이에요. 이사금이란 칭호는 제18대 실성 이사금까지 계속 되었지요. 또 신라는 내물 마립간처럼 왕을 마립간이라고도 불렀어요.

“마립이란 방언으로 서열을 말한다. 서열은 직위에 따라 정해진다. 임금의 서열은 주가 되고 신하의 서열은 아래가 되어 이렇게 이름 지었다.”

어때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읽고 싶지 않나요? 역사를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당시에 역사를 기록했던 책을 읽어 보아야 해요. 그 책 속에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이번에 우리 교실 학급 문고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꽂아 놓으면 어떨까요?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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