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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외교 사절단의 유산, 통신사 기록물

<통신사 행렬도>   
국사편찬위원회

“일본에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으니 와서 축하해 달라고 합니다.”

“전쟁으로 두 나라 사이가 안 좋은데 무슨 말씀입니까?”

일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았어요. 일본은 도쿠가와 정권 수립 직후 조선에 축하 사절단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지요. 조선은 과연 사절단을 보냈을까요? 일본이 사절단을 요청한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선이 일본에 보낸 사절단, 통신사

일본의 요청에 조선은 사절단을 보냈어요. 이 사절단이 바로 통신사예요. 통신사는 ‘두 나라 간의 믿음을 나누는 사절단’이라는 뜻이지요. 1404년(태종 4) 조선은 일본에 처음으로 통신사를 파견했어요.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지요.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전 국토가 황폐해졌어요. 백성들의 생활도 말이 아니었어요. 한편,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았어요. 그는 정권을 잡고 나자 조선에 통신사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던 거예요.

통신사는 시기마다 파견 목적이 달랐어요. 사실 통신사는 1404년 태종 때 처음 일본에 파견되었고, 임진왜란 이전까지 지속되고 있었어요. 임진왜란 이전에는 주로 왜구들의 노략질을 단속하기 위해 통신사를 일본에 보냈어요.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에는 그 목적이 달라졌어요. 왜란 때 잡혀간 우리 포로를 데려오고, 전쟁을 막으려는 것이 목적이었죠. 하지만 믿음을 갖고 교류하는 ‘성신교린’은 왜란 이전이나 이후 모두 통신사들의 주요 정신이었어요.

통신사는 한양을 출발해 부산, 쓰시마,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 등을 거쳐 에도까지 먼 길을 이동했어요. 왕복하는 데 약 10개월이 걸렸다고 해요. 임진왜란 이후 1607년(선조 40)부터 1811년(순조 11)까지 12차례 통신사가 일본으로 갔어요.

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을 비롯해 역관(통역 담당), 제술관(문서 담당), 화원(그림 담당), 마상재(기마 곡예 담당) 등 해당 분야의 최고 재능을 가진 문인과 예술인으로 구성되었어요. 약 400~500명이나 되는 대규모 사절단이었지요. 이들은 왕이 내린 국서를 일본에 전하고, 문화적 교류를 했지요.

<통신사의 구성원>   

임진왜란 이후 통신사가 보내진 200여 년 동안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관계는 평화로웠어요. 더불어 동아시아 지역도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통신사를 평화 사절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통신사가 남긴 다양한 기록물들은 그들이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전해주는 중요한 유산이에요.

2017년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통신사가 남긴 외교문서, 여정에 관한 기록, 그림 등 다양한 기록물 총 111건 333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동 등재시켰어요.

매년 통신사의 뜻을 기리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는 통신사 축제가 열리기도 해요. 지금부터 한일 교류를 넘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노력한 통신사가 남긴 행적들을 살펴보아요. 또 믿음과 이해를 바탕으로 활발하게 교류한 통신사 정신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요.

  
국사편찬위원회

일본은 왜 임진왜란 직후에 통신사 파견을 요청했을까?

통신사 접대에 드는 비용은 막부 1년 치 예산에 맞먹었어요. 일본이 이렇듯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통신사 파견을 요청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에 무인 정권을 세웠지요. 이를 에도 막부라고 해요. 막부란 무사 정권을 말해요. 최고 통치자는 쇼군이라고 하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연 뒤 조선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정치를 해나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조선에 사절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거예요. 일본은 조선과 교류를 하며 정치적인 안정뿐만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인 이득도 얻고자 했어요. 조선에서는 일본의 요청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어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데, 이게 웬 말이오.”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시 침입해 올까 두렵소.”

조선은 의논 끝에 통신사를 보내는 대신 몇 가지 요구 조건을 제시했어요. 그 내용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사죄하는 국서를 보낼 것, 전쟁 중에 왕릉을 파헤친 범인들을 잡아 보낼 것 등이었어요.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자 조선은 통신사를 보내기로 했어요. 조선의 입장에서도 일본에 끌려간 전쟁 포로를 데려오고, 일본의 상황을 파악해 정치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거지요.

<통신사 행렬도>   
국사편찬위원회

통신사를 문화 사절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본은 통신사를 통해 막부의 위상을 강화하고 정치적 기틀을 안정적으로 마련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일본인들을 감동시킨 것은 조선의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이었어요. 통신사로 온 문학인, 예술인들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거리마다 통신사 행렬을 보기 위해 몰려나온 사람들로 가득 찼어요. 당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오는 일이 드물었던 때라 통신사 행렬은 신기한 구경거리였어요.

당시 기록을 보면 ‘일본인들이 조선의 문화를 사모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아마도 그때 일본인들의 마음은 요즈음 우리나라 케이팝에 매력을 느끼는 외국인들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통신사가 지나가는 길목 곳곳에서는 장이 열리고, 문화 교류 행사가 펼쳐졌어요. 학자들은 글을 써 대화를 나누고, 춤과 노래 공연이 열렸어요. 조선 화원들이 그린 그림은 큰 인기였지요. 일본에 두 차례 통신사로 갔던 화원 김명국은 밀려드는 그림 요청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고 해요.

일본인들에 가장 인기 있었던 마상재

일본 쇼군과 고위 관료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바로 마상재에요. 마상재는 달리는 말에 탄 사람이 그 위에서 눕거나 서는 재주를 부리는 무예예요.

일본에서는 조선 마상재가 매우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통신사가 올 때 함께 와달라고 요청했던 거예요. 일본의 기록에 ‘조선국의 마상재는 실로 절묘하고 기묘한 기예이다’라는 내용도 있어요. 이 기록을 보면 마상재의 인기가 무척 높았던 것 같아요. 조선 마상재에 감명받은 일본 정부는 공연을 펼친 일행에게 갖가지 선물을 내렸다고 해요.

<마상재 모습>   

일본에 남아 있는 통신사의 흔적

일본에는 통신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그중 하나가 후쿠젠지예요. 후쿠젠지는 통신사 일행이 머물렀던 숙소예요. 해안가 절벽에 있는 이 사찰 앞에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펼쳐져 있어요. 이곳은 지금도 많은 여행객이 찾아오는 곳이에요.

통신사의 흔적은 일본의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도진 오도리예요. 소년들이 추는 춤이지요. 이는 악사의 연주에 맞추어 사신들의 시중을 들던 소년들이 추던 춤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하고 있어요. 지금도 일본 한 지역에서는 도진 오도리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답니다.

역사 속 작은 이야기: 개항 이후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

통신사는 1811년(순조 11)에 파견된 이후 더 이상 보내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다시 사절단을 보내게 된 것은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은 이후에요. 그 사절단이 바로 수신사예요. 개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일본뿐만 아니라 청나라와 미국에도 외교 사절단이 파견되었어요. 이들은 근대 기관 및 시설들을 살피고 돌아왔지요.

수신사는 1876년부터 188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파견되었어요. 최초로 파견된 수신사의 정사는 김기수였어요. 그는 일본의 발달한 문물을 보고 들은 것을 적은 『일동기유』를 남겼어요. 이 책에는 기차를 처음 본 김기수의 놀라움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기차를 보기 위해 복도를 따라 수십 칸 이동해도 기차가 보이지 않았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이동해 왔던 긴 건물 같은 것이 바로 기차였음을 알고 놀랐다는 내용이지요. 일본의 발달한 문물을 접하고 온 수신사는 조선이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평화 사절단으로 불리는 통신사의 행적을 살펴보니 어떤 마음이 드나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교류하며 서로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이러한 과거의 경험은 미래에도 꾸준히 이어져야 할 중요한 유산이에요. 앞으로 이웃나라 일본이 우리나라와 평화적으로 손 맞잡고 함께 도와가며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아요.

[집필자] 황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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