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있는 초등역사
  • 조선
  • 조선의 화폐
  • 조선 후기 널리 사용된 화폐, 상평통보

조선 후기 널리 사용된 화폐, 상평통보

<조선 시대의 화폐>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e뮤지엄)

“전하! 태종 임금 때 만들어 사용하던 저화(종이로 만든 돈)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동전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중국의 동전을 참고해 화폐를 만들도록 하시오.”

왕과 신하들이 의논을 한 지 4년 만인 1427년(세종 8) 조선통보라는 동전이 만들어졌어요. 이 동전은 중국 돈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지만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어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조선 시대에 널리 사용된 화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조선, 화폐를 만들다

조선은 나라를 건국한 후 한동안 고려 시대 사용하던 돈인 소은병과 쇄은을 사용했어요. 그런데 소은병과 쇄은은 모두 은으로 만든 고액 화폐였어요.

<소은병과 쇄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조선 시대 처음 만든 화폐는 종이돈인 저화에요. 저화는 1401년(태종 1) 처음 만들어졌어요. 재료는 닥나무 껍질로, 그 크기가 무척 컸다고 해요. 저화가 처음 만들어져 사용될 때는 저화 1장을 쌀 2말로 바꿀 수 있었어요. 나라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저화를 사용하게 하려고 관리에게 주는 급여 중 일부를 저화로 지급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종이 화폐보다 곡식이나 옷감(삼베, 모시, 명주 등)으로 물건을 교환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점차 저화는 잘 사용되지 않고 가치가 떨어졌어요.

세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통보라는 동전을 만들기로 했어요. 세종은 조선통보가 널리 사용되기 바라며 옷감을 돈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어요. 그러나 조선통보도 기대했던 것처럼 널리 사용되지 못했고, 1458년(세조 4)에는 옷감을 돈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어요. 돈으로 사용된 옷감을 포화라고 해요.

세조 때는 화살촉 모양의 화폐도 만들었어요. 화폐의 이름은 전폐에요. 전폐는 철로 만들었는데, 화살촉이 버드나무 잎 모양을 닮아 유엽전(楡葉錢)이라고도 불렸어요. 평상시에 돈으로 사용하다가 전쟁 때에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에요.

아마도 이 시기에 북쪽 국경 지방에 여진족이 자주 나타나서 그런 것 같아요. 전폐 1개로 저화 3장을 바꿀 수 있게 했어요. 전폐는 현재 전하지 않아서, 아래 그림처럼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복원품밖에 볼 수 없어요.

<전폐 복원품>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조선 전기에는 저화, 동전, 전폐 등 여러 종류의 화폐가 만들어지지만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어요.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농업을 중요시한 나라의 기본정책으로 상업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필요한 물품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물물교환했어요. 그러다 보니 화폐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어요. 또 나라에서 만든 돈보다 포화가 더 많이 사용되었지요.

화폐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때는 조선 후기에요. 조선 후기에는 벼농사에서 모내기법이 일반화되었고, 그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상업도 발전했어요.

상업의 발전으로 전국적으로 장시가 열리고 세금도 점차 화폐로 받게 되었지요. 이 무렵 만들어진 화폐가 상평통보예요. 상평통보는 숙종 때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어요. 그럼 지금부터 상평통보에 대해 살펴볼까요?

  

조선 후기에 만들어져 널리 사용된 상평통보

숙종 때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후 1908년까지 약 200년간 사용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새로 만들어져서 종류만도 무려 3천여 개나 된다고 해요.

상평통보는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둥근 원 모양에 정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어요. 앞면에는 상평통보(常平通寶)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의 위쪽에는 동전을 만든 관청의 약자가 새겨져 있어요.

오늘날의 돈은 한국조폐공사에서만 만들지만, 조선 시대에는 중앙 관청뿐만 아니라 각도의 감영에서도 만들었거든요. 그러니 돈의 품질을 책임지도록 어느 곳에서 돈을 만들었는지 밝힐 필요가 있었어요.

<상평통보의 앞면과 뒷면>   

숙종은 1678년 상평통보를 처음 만든 후 1년 만에 새로운 상평통보를 만들었어요. 새롭게 만든 것은 처음 것보다 컸어요. 이를 구별하기 위해 뒷면에 ‘이(二)’자를 새겨 넣고, 당이전(當二錢)이라 불렸어요. 상평통보는 영조 때도 다시 만들어졌어요.

이처럼 상평통보가 계속 만들어진 이유는 뭘까요? 조선 후기에 상업이 발전하면서 점차 화폐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지요. 지도를 보면 조선 후기에 상업과 무역이 활발했고, 그에 따라 화폐도 활발하게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조선 후기 상업과 무역 활동>   

상평통보의 다른 이름, 엽전과 땡전

여러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상평통보는 각기 이름은 달라도 조선 시대 일반 백성들은 보통 엽전이라 불렀어요. 엽전에서 엽(葉)은 한자로 ‘나뭇잎’이란 뜻이에요.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상평통보를 만드는 틀이 나뭇가지에 잎사귀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상평통보를 셀 때도 나뭇잎처럼 한 닢, 두 닢이라 불렀어요.

  

돈을 주고 싶어도 땡전 한 푼도 없어.

옛날 어른들은 돈이 없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여기서 ‘땡전’은 당백전을 부르는 거예요. 당백전은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만들어졌어요. 흥선 대원군은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했어요.

그런데 경복궁을 짓는 데 많은 돈이 필요했지요. 흥선 대원군은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가 되는 돈을 만들었어요. 이를 당백전이라고 불러요.

당백전은 앞면에 상평통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당백(當百)이라 글자가 새겨졌어요. 그런데 이 돈은 실제로는 상평통보의 100배가 아니라 5~6배로 교환되었어요. 당백전이 사용되면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자 화폐 가치가 떨어진 거지요. 게다가 물가까지 많이 올라갔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당백전을 땡전이라 불렀다고 해요.

<당백전의 앞면과 뒷면>   
국립중앙박물관

역사 속 작은 이야기: 특별한 날에 만들던 별전

4년에 한 번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이를 기념해서 동전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외에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기념주화를 만들지요.

조선 시대에도 국가나 개인이 특별한 일이 생기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전을 만들었어요. 이를 별전이라 해요.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시대 별전은 약 3백여 종류나 된다고 해요. 그중에는 동전 형태 이외에도 박쥐, 나비 등의 동물 모양과 수복강녕(壽福康寜) 등 글자 모양도 있어요.

아래 사진의 별전은 열쇠패라고 불리는데, 양반집에서 딸이 시집갈 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친정 엄마가 만들어 준 것으로 생각되어요. 딸은 시집가서 이 열쇠패를 장식용으로 걸어놓았을 거예요.

지금까지 조선 시대 화폐에 대해 살펴보았어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화폐 중 상평통보가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만약 조선 시대 화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부모님과 함께 화폐박물관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열쇠패>   
국립민속박물관

[집필자] 김현숙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