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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상징으로 새롭게 태어날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

<판문점(경기 파주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드디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 분계선을 넘어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군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감격스럽습니다!”

2018년 4월 27일, 남한과 북한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았어요. 북한 최고 통치자가 판문점 군사 분계선을 넘어 온 것은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을 맺은 이후 65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역사적인 장소인 판문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또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분단의 상징인 곳을 돌아보며 평화를 꿈꿔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몰고 38도선을 넘어 남한으로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났어요. 6·25 전쟁은 3년간 지속되었어요. 남한은 한때 낙동강 일대까지 밀려 내려갔어요. 평양을 점령해 두만강까지 밀고 올라간 적도 있지요. 하지만 어느 한 편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북한과 남한은 밀고 밀리는 전쟁을 이어갔어요.

1953년 7월 27일, 전쟁을 멈추는 정전 협정이 맺어지고, 군사분계선인 휴전선이 그어졌어요. 당시 정전 협정을 맺은 곳이 판문점이에요. 그곳은 현재의 판문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지만, 그곳 역시 판문점이라고 불렀어요.

전쟁은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어요. 군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어요. 부상자 또한 셀 수 없이 많았어요. 건물, 철도, 도로는 파괴되고, 공장과 학교도 폭격을 맞아 무너져 내렸지요. 여기저기서 들리는 폭음 속에 부모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전쟁을 끝내는 정전 협정이 맺어지자 더 이상 포탄이 터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한반도는 온통 상처투성이었어요. 휴전선이 한반도를 가르고, 수많은 남북의 이산가족은 더 이상 가족을 만날 수 없었어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경기 파주시)
녹슬고 부식된 채로 비무장 지대 안에 방치되어 있던 증기기관차>   
문화재청

남북을 달리던 기관차는 멈춘 채로 녹슬어 오랜 세월이 흘렀어요. 철로 또한 끊겼어요.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설치된 비무장지대(DMZ)에는 풀들이 무성하게 뒤덮였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곳에서는 무성한 풀들이 전쟁의 흔적을 덮고, 새로운 동식물이 살게 되었어요. 그리고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요.

지금부터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을 돌아보며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그려볼까요?

  

  

비무장지대(DMZ)가 뭐예요?

정전 협정 당시 군사 분계선(휴전선)을 어디로 할 것인가를 놓고, 공산군과 유엔군 사이에 의견이 팽팽히 맞섰어요. 유엔군측은 현재 점령지를 기준으로 군사 분계선을 주장했고, 북측은 전쟁 이전의 38도선을 군사 분계선으로 하자고 주장했어요. 결국 유엔군측의 주장대로 지금의 군사 분계선으로 결정되었어요.

군사 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각각 2㎞씩 총 4km 구간이 비무장지대(DMZ)로 설정되어 있어요. 동서로는 250km의 길이이고요. 이곳에는 군대를 주둔시킬 수 없고, 군사 시설을 설치할 수 없고, 무기도 배치할 수 없어요.

다시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구역이었기 때문이죠. 이 구역은 ‘군사정전위원회’라는 곳의 감독을 받아요. 이 위원회는 정전 협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독하는 공동 기구로, 남측과 북측이 각각 5명씩 임명해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비무장 지대는 민간인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통제 구역이에요. 군인도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군사 분계선도 함부로 넘을 수 없어요.

비무장지대에도 마을이 있다고요?

비무장지대에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바로 남한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북한의 기정동 마을이지요. 정전 협정이 맺어질 당시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에 마을 하나씩을 두기로 했어요. 남과 북의 체제를 선전하려는 의도에서였지요.

남쪽에 있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건물들이 대부분 북쪽을 향해 지어졌어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세금을 낼 의무도, 국방의 의무도 지지 않아요.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사는데, 최근에는 마을 공동 사업인 청국장 사업 등을 하고 있지요.

기정동 마을은 북한의 선전 마을로 남쪽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에요.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불과 800여m의 떨어진 거리에 있어요. 남쪽을 향해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들이 모여 있는 마을로 북한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해요.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는 태극기가 높이 매달려 있어요. 맞은편에 자리한 북한 기정동 마을에는 북한의 인공기가 하늘 높이 매달려 있고요. 마주보며 펄럭이는 태극기와 인공기를 보고 있으면, 70여 년 가까이 분단된 상태가 이어진 남과 북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질 거예요.

<대성동 자유의 마을
멀리 보이는 것이 기정동 마을 깃대 모습이다.>   
파주시청

최근에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그 주변에서 구석기 시대의 찌르개와 찍개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어요. 대성동 자유의 마을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지요.

역사학자들은 남북한이 대성동 자유의 마을뿐만 아니라 기정동 마을도 함께 공동 조사를 하면, 더 많은 유물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그동안 두 마을은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의 장으로 이용되었지만, 앞으로는 남북의 화해와 화합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녹색 지대를 평화의 지대로 만들어요

비무장지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다보니 희귀한 동식물들이 잘 자라는 등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녹색 지대가 되었어요. 총 5,0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살고 있고, 100여 종의 멸종 위기 동물들이 살고 있다고 해요. 두루미, 재두루미, 저어새, 큰기러기 등이 대표적이죠.

비무장지대에는 이런 잘 보존된 생태계뿐만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자원도 많이 남아 있어요.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의 궁궐터도 철원의 비무장지대에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UN) 연설에서 비무장지대는 세계가 그 가치를 공유해야 할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남북 간에 평화가 구축되면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어요. 또 비무장지대를 국제적인 평화 지대로 만들자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지요.

<비무장지대로 소풍가는 모습>   

판문점이 품고 있는 우리의 현대사

우리가 알고 있는 ‘판문점’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비무장지대 군사 분계선 상에 있는 공동경비구역(JSA)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 유엔(UN)과 북한 측이 공동으로 경비하고 있는 구역이지요.

공동경비구역은 원래 전쟁 당시 유엔군과 중국군 및 북한군이 정전 협정 체결을 위한 회의를 하고자 만든 구역이었어요. 이 당시 판문점은 지금의 공동경비구역의 북서쪽에 있었지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공동경비구역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북한 측의 ‘판문각’, 유엔 측의 ‘자유의 집’이 세워져 있어요. 1980년대에 들어서 남북대화를 위해 사용하고자 ‘평화의 집’이 남쪽에, ‘통일각’이 북쪽에 세워졌지요.

예전에 판문점 양측 경비병은 군사 분계선을 넘나들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바뀌었지요. 이후 양측 경비병은 군사 분계선을 넘어갈 수 없게 되었고, 예전처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지요.

2018년 4월 27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 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건너온 것은 특별한 장면이었어요. 이 당시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요. 이어 2019년 6월 30일에는 자유의 집에서 남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판문점에 한반도에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판문점>   

역사 속 작은 이야기: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철원 노동당사

남한 측 비무장지대에는 6·25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예요. 노동당사가 있는 곳은 지금은 남한 땅이지만 6·25 전쟁 당시에는 북한 땅이었어요. 즉 38선 이북에 있던 땅이었지요.

노동당사는 남한 땅에 남은 북한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이야기되는 곳이에요. 원래 노동당사 주변은 4만여 명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옛 철원으로 불려요. 옛 철원은 5개의 학교, 은행, 도립병원 등 다양한 행정 기관이 들어서 있는 큰 규모의 도시였어요.

노동당사는 철원, 포천, 평강 일대를 관리하며, 주민을 통제하고 북한의 여러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었어요. 북한 공산 정권이 다스리던 시기 지역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모금을 해서 지은 건물이에요.

전쟁 때 옛 철원 시가지는 모두 파괴되고 노동당사 건물도 뼈대만 남았어요. 뼈대만 남은 건물 군데군데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노동당사 계단에는 미군 탱크가 밀고 올라간 흔적도 남아 있어요. 당시 이곳에서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당시 북한은 공산당 활동에 뜻을 같이 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을 당사로 끌고 와 취조하고 여러 가지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고 전해요.

분단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비무장지대와 판문점 등을 살펴보니 어떤 생각이 드나요? 분단의 상징을 넘어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요.

남북한이 화해와 교류를 바탕으로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바람대로 비무장지대는 평화의 상징으로 새롭게 태어날 거예요.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대하며 우리도 평화의 싹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아요.

<철원 노동당사(강원 철원군)>   

<총탄의 흔적이 남은 철원노동당사(강원 철원군)>   

[집필자] 황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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