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로 본 한국사
  • 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 2. 대한제국의 수립과정
  • 3) 독립협회와 대한제국의 상징화 작업
  • 가. 독립신문 발간 지원

1895년 12월 말, 10년 동안 미국 망명을 마치고 귀국한 서재필갑신정변 실패의 원인이 민중의 지지가 결여된 때문이라고 보고 계몽적인 신문을 내보려고 하였다. 당시 갑오개혁을 추진하던 개화파 정부도 개혁정책을 국민에게 알려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신문 창간을 서둘렀다. 이에 서재필유길준은 1896년 1월 하순에 새로운 신문사를 설립해서 3월 1일부터 국문판과 영문판 신문을 동시에 발행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1896년 2월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신문발간 계획은 중단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교체된 박정양 내각에서도 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하였으므로 정부예산에서 신문사 설립자금으로 3천원과 서재필의 개인 생계비 및 가옥임대비로 1,400원을 지원하였다.

이에 따라 서재필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독립신문사를 설립하고 1896년 4월 7일에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처음에는 가로 22센티미터, 세로 33센티미터의 타블로이드판 크기로 모두 4면이며, 1~3면까지는 국문판으로 편집하고 4면은 영문판으로 하였다. 신문은 주 3회(화,목,토)의 격일간지로 발행되었으며 처음으로 한글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고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자는 논설을 실었다.

〔사료 2-3-01〕독립신문 창간사

“우리가 독립신문을 오늘 처음으로 출판하는데 조선 속에 있는 내외국 인민에게 우리 주의를 미리 말씀하여 아시게 하노라. 우리는 첫째 편벽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 아니 하고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며 공평히 인민에게 말할 터인데, 우리가 서울 백성만 위할 게 아니라 조선 전국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신 말하여 주려고 함. 정부에서 하시는 일을 백성에게 전할 터이요,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전할 터이니 만일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만이 있을 터이요. 불평한 마음과 의심하는 생각이 없어질 터임.

우리가 이 신문을 출판하여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니므로 값을 헐하도록 하였고 모두 언문으로 쓰기는 남녀 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오. 또 구절을 떼어 쓰기는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

우리는 바른 대로만 신문을 할 터이므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폐일 터이요, 사사로운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임.

우리는 조선 대군주폐하와 조선 정부와 조선 인민을 위하는 사람들이므로 편당 있는 의논이든지 한쪽만 생각하고 하는 말은 우리 신문상에 없을 터임.

또 한쪽에 영문으로 기록하기는 외국 인민이 조선 사정을 자세히 모른즉, 혹 편벽된 말만 듣고 조선을 잘못 생각할까 보아 실상 사정을 알게 하고자 하여 영문으로 조금 기록함.

그리한 즉 이 신문은 꼭 조선만 위함을 가히 알 터이오, 이 신문을 인연하여 내외 남녀 상하 귀천이 모두 조선 일을 서로 알 터임. 우리가 또 외국사정도 조선인민을 위하여 간간히 기록할 터이니 그걸 인연하여 외국은 가지 못하더라도 조선인민이 외국 사정도 알 터임.

오늘은 처음이므로 대강 우리 주의만 세상에 고하고 우리 신문을 보면 조선인민이 소견과 지혜가 진보함을 믿노라.”

(출전 : 『독립신문』(제1권 1호) 1896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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