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로 본 한국사
  • 한반도 신탁 통치안
  • 3.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조선에 관한 결정’
  • 2)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의 미⋅소의 한국 문제 논의와 해결 방안
  • 다. ‘조선에 관한 결정’의 채택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 타결된 ‘조선에 관한 결정’은 소련의 제안을 원안으로 하고, 여기에 사소한 내용⋅표현상의 수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 12월 28일에 발표된 최종 결정 문안은 다음과 같다.

〔사료 3-2-01〕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 타결된 ‘조선에 관한 결정’

① 조선을 독립국으로 부흥시키고 조선이 민주주의 원칙 위에서 발전하게 하며 장기간에 걸친 일본 통치의 악독한 결과를 신속히 청산할 조건들을 창조할 목적으로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창설한다. 임시 정부는 조선의 산업, 운수, 농촌 경제 및 조선 인민의 민족 문화 발전을 위하여 모든 필요한 방책을 강구할 것이다.

② 조선 임시 정부 조직에 협력하며 이에 적용할 방책들을 예비 작성하기 위하여 남조선 미군 사령부 대표와 북조선 소련군 사령부 대표로 공동 위원회를 조직한다. 위원회는 자신들의 제안을 작성할 때 조선의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들과 반드시 협의할 것이다. 위원회가 작성한 건의문은 공동 위원회 대표로 되어 있는 양국 정부의 최종적 결정이 있기 전에 미⋅소⋅영⋅중 각국 정부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③ 공동 위원회는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참가시키고 조선 민주주의 단체들을 끌어들여 조선 인민의 정치⋅경제⋅사회적 진보와 민주주의적 자치 발전, 또는 조선 국가 독립의 확립을 원조⋅협력하는 방책들도 작성할 것이다. 공동 위원회의 제안은 조선 임시 정부와의 협의 후 5년 이내를 기한으로 하는 조선 4개국 신탁 통치 (후견) 협정을 작성하기 위하여 미⋅소⋅영⋅중 각국 정부의 공동 심의를 받아야 한다.

④ 남⋅북 조선과 관련된 긴급한 제 문제를 심의하기 위하여, 또는 남조선 미군 사령부와 북조선 소련군 사령부 간의 행정⋅경제 부문의 일상적 조정을 확립하는 제 방안을 작성하기 위하여, 2주일 이내에 조선에 주둔하는 미⋅소 양군 사령부 대표로서 회의를 소집한다.

위의 모스크바 삼상 결정이 규정한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朝鮮民主主義臨時政府)’ 수립 방안은 미국의 원래 구상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국제적 처리 방식 일변도의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이, 정당⋅사회단체를 통하여 한국인들의 의지와 요구를 부분적으로 반영한 ‘선 임시 정부’ 수립안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로써 사실상 국제 민간 행정 기구안은 철회된 셈이다.

또 미⋅소 양측 점령군 사령부 대표들로 이루어진 미소 공동 위원회가 한국 문제 해결의 매개 기구가 됨으로써, 미국과 소련이 한국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부각되었다. 위 결정은 비록 4대국에 의한 신탁 통치를 상정하였지만, 한국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국과 소련임을 과시하였다. 이는 모스크바 결정이 미⋅소 양군의 분할 점령이라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미국 제안이나 위의 결정문 모두 신탁 통치를 상정하였지만 그 성격은 전혀 달랐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미국 제안은 정부 수립 이전에 국제 행정 기구 관리하의 신탁 통치를 의미하였지만, 모스크바 삼상 회의가 결정한 신탁 통치안은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와의 협의를 거친 4대국 협정에 의하여 실시되는 것을 골자로 하였다. 즉 임시 정부 수립을 전제로 한 신탁 통치의 실시는, 신탁 통치의 성격이나 통치권의 행사라는 측면에서 미국이 제안했던 신탁 통치안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 자신들의 제안을 포기하고, 내용상 현격한 차이가 있는 소련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로는, 우선 한국 내 정세가 미국으로 하여금 소련 제안을 거부할 명분이 없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 군정은 본국에 한국인들의 신탁 통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거듭 환기시켰고, 국무 차관 애치슨은 미 군정의 위와 같은 요청을 모스크바에 가 있던 번즈 국무 장관에게 전하면서, 신탁 통치는 국제 연합 기구의 후원을 받는 것이며 행정부에 관한 잠정 협정임을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였다. 미국 측 스스로 자신들의 제안을 원안 그대로 한국인들에게 납득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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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치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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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미국은 모스크바 협정의 운용 여하에 따라 미국의 이해 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모스크바 결정은 임시 정부 수립을 선결 과제로 제시하였지만, 미국의 신탁 통치 제안도 받아들인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모스크바 결정은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 미소 공동 위원회와 한국의 정당⋅사회단체가 협의하여 임시 정부 수립 권고안 제출 → 4대국의 심의 → 임시 정부 수립 → 임시 정부는 미소 공동 위원회 밑에서 구체적인 신탁 통치 협정에 참가 → 4대국의 신탁 통치 협정 공동 심의’라는 복잡한 절차를 예상하였다. 여기서 임시 정부 수립안이나 신탁 통치 협정 모두 4대국이 심의하도록 되어 있으며, 특히 임시 정부 수립은 미소 공동 위원회의 활동에 의존하였다. 미국은 이러한 다단계 수립 절차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은 ‘적당한 절차를 거쳐’ 한국에 독립을 부여한다는 1943년 카이로 선언 이래 한국 독립에 관한 국제적 합의의 애매모호한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또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은 통일 정부 수립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주권 문제 해결의 경로를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자주 독립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던 근대 이래 한국 민족 운동사(民族運動史)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이루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안이 5년간의 신탁 통치(또는 후견)를 예상하였다는 점에서 민족 역량의 전면적 개화를 통한 자주적인 정부 수립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이 안은 일정한 제한성을 가진다.

이러한 모스크바 삼상 회의의 ‘조선에 관한 결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미⋅소 양 점령군 대표들로 미소 공동 위원회(이하 미소 공위)가 구성되고, 여기서 임시 정부 수립을 위한 구체적 절차와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모스크바 결정은 한국인들에게 독립에 관한 국제적 규정성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이제 한국 내 각 정치 세력들에게는 미소 공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가 완전 독립의 실현과 통일 정부 수립에서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편 모스크바 결정은 미소 공위가 한국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하여 임시 정부를 수립하도록 규정하였다. 이것은 미⋅소 양국에게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구상과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 지지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현실적인 과제로 대두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에 따라 구성될 미소 공위는 국내 정치에 영향을 주는 기구인 동시에 역으로 국내 정치로부터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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