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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

토기를 만들고 무늬를 새기다

미상

빗살무늬토기 대표 이미지

빗살무늬토기

국립중앙박물관

1 개요

빗살무늬토기는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를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선이나 점 등으로 기하학적 문양을 장식한 토기만을 가리키며, 넓은 의미로는 덧무늬(융기문)나 찔러서 도드라지게 한 무늬(자돌문), 눌러 찍은 후 끌어당긴 무늬(압인문)의 토기 등을 포함한 신석기 시대의 모든 토기를 말하기도 한다. 빗살무늬토기라는 명칭은 토기의 겉면에 빗 같은 무늬 새기개로 찍거나 그어서 만든 점, 선, 원 등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장식한 데서 붙여진 것이다. 이 밖에도 빗살무늬에 대한 다른 명칭으로는 즐문, 즐목문(櫛目文), 빗살문, 유문(有文), 기하문(幾何文), 새김무늬 등이 있다.

즐문은 원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학자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토기의 문양을 북방 유라시아의 캄케라믹(Kammkeramik)과 연결시켜 즐목문으로 번역하여 쓴 용어였다. 이를 해방 후 우리나라 학자들이 즐문토기 혹은 이것을 한글로 풀어쓴 빗살무늬토기라 부르면서부터 일반화되었다. 북한에서는 1970년대 이후 빗살무늬토기가 캄케라믹의 단순한 번역어라는 점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새김무늬토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2 빗살무늬토기의 제작과 용도

신석기인들은 주로 인접한 강이나 하천 주변에 풍부한 점토와 모래, 조개 가루 등을 섞은 바탕흙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토기를 빚고 무늬를 새긴 후, 토기 가마에서 토기를 구워 생활 용기로 이용하였다.

빗살무늬토기의 제작은 일반적으로 바탕흙 준비→성형→정면·시문→건조→소성의 순으로 진행된다. 토기 제작의 기본 원료가 되는 바탕흙은 점토와 기타 비짐을 섞어 만드는데, 점토에 비짐을 고루 섞어 다지게 되면 흙의 결집도가 높아져 성형시 작업 능률이 향상되고 건조나 소성 과정에서 갈라짐이 방지된다. 비짐으로는 모래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나, 우리나라의 중서부 지역 토기에는 활석, 제주 고산리 유적의 초창기 토기의 경우에는 풀(혹은 식물 줄기), 남해안 지역 조개더미 유적에서 출토되는 토기 중에는 조개 가루를 섞은 것도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토기를 만드는(성형) 방식은 테쌓기, 서리기, 손빚기 등이 있다. 그리고 쌓는 방향에 따라 바닥부터 쌓아 올린 방법과, 입술부터 거꾸로 쌓아 만드는 방식이 있다. 바닥부터 쌓아 올린 방법은 토기 바닥에 남아 있는 나뭇잎 흔적과 토기 제작 받침대의 존재에서 알 수 있다. 입술부터 거꾸로 쌓아 올린 방식은 비교적 큰 토기를 만드는 데 용이한 방법으로, 가장 분명한 특징은 토기의 입술 끝부분이 편평하고 입술 주위로 토기의 무게에 의해 점토가 밀려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방법에는 납작한 돌 판이나 나무판자, 고래의 척추 뼈와 같은 바닥이 편평하고 넓은 받침대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실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유물이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토기의 정면 과정은 성형 단계에서 시작되는데, 몇 단의 띠를 쌓아 올린 후 이를 결합하여 띠 사이의 빈틈을 없앰과 동시에, 토기의 두께와 곡면의 각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면이 이루어진다. 정면 도구는 손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성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곡면을 이루는 나무칼이나 조가비, 둥근 자갈돌 등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토기에 무늬를 새기는(시문) 시점은 정면 후, 토기의 표면이 어느 정도 건조된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바탕흙이 어느 정도 굳기 전에 무늬를 새기면 아직 무른 주변 흙들의 압력으로 무늬가 좁아지거나, 거의 덮어져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반면 적당히 건조된 후, 무늬를 새기면 파진 흙들은 최소 잔여물을 남기고 제거되어 뚜렷한 무늬가 남게 된다. 무늬 새기개는 대부분 끝이 뾰족하거나 둥근 것을 사용하였으며, 나무같이 만들기 편리한 것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유물로 확인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부 소형의 석기나 조가비, 뼈 등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를 굽는 작업(소성)은 토기 제작의 마지막 과정으로 만들어진 토기에 높은 열을 가하여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자연 상태의 점토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바꾸는 과정이다.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토기의 가장 큰 이점은 음식을 끓이거나 익힐 수 있는 조리 방법의 보급에 의해 식료로써 이용할 수 있는 종류가 증가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식물질 식료 자원의 개발을 진전된 것이다. 가장 좋은 예가 도토리로 그대로는 떫어서 먹을 수 없지만, 가루를 내서 물에 개어 가열해 떫은맛을 우려내면 귀중한 먹거리가 된다. 이러한 식물질 식료의 증가에 따라 육상 동물에 의존하고 있었던 칼로리원이 보다 용이하고 안전하게 획득할 수 있는 식물질 식료로 대체됨으로써, 식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새로운 메뉴가 추가되어 식생활이 풍부해진 것 외에도 살균에 의한 위생학 상의 효과와 함께 음식이 연하게 되기에 소화 기관의 부담을 덜고, 영양 흡수도 보다 용이하게 한 효과도 있었다. 덕분에 건강을 유지하고 수명을 연장시켜, 인류에게는 혁명적인 번성의 기회가 주어졌다.

신석기 시대 토기의 기능은 형태와 크기를 통해 추정하며, 용도는 사용의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서 ‘사용의 장면’이란 유구 내에서의 출토 상황 또는 실제로 사용된 흔적이 토기에 남아 있는 경우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저장용의 경우 실제 신석기 시대 집자리 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토기가 놓여 있거나, 또는 토기 안에 곡물이 담겨 있을 경우는 저장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입술 끝부분에 탄화된 이물질이 부착되어 있을 경우는 그 토기가 자비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토기를 형태별로 분류하면, 크게 바리, 독, 단지(항하리), 사발로 구분되며, 그 외의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리 토기는 자비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다시 크기에 따라 저장, 자비, 식기용으로 나눈다. 바리 토기 이외의 토기는 각 형태에 따른 사용 용도가 한정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입술 지름이 좁은 목이 있고 입술이 바라진 토기의 경우에는 물 등의 액체 또는 나무 열매 등 적은 양의 음식물 저장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 외에 접시 모양의 토기 또는 굽다리접시(고배) 모양의 토기는 음식을 담아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일상생활 토기 외에 특수한 사용례로써 사물의 모양을 본 떠 만든 소형 토기나 미니어처 토기가 있는데, 이들 토기는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또 진주 상촌리와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는 무덤으로 사용된 빗살무늬토기도 출토되었다.

3 빗살무늬토기의 지역별 특징과 변화 양상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토기의 형태와 문양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크게 몇 개의 지역권으로 나눌 수 있다.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서북 지역,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동북 지역, 청천강 이남에서 대동강 및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 지역, 강원 영동을 중심으로 한 중동부 지역, 충청·전라·경상도 내륙을 중심으로 한 남부 내륙 지역, 전라·제주도를 포함하여 경상도 해안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지역이다. 이 중에서도 서북과 동북 지역은 신석기 시대 전시기 동안 바닥의 형태가 납작한 바닥을 유지하지만, 그 이남 지역은 이른 시기 또는 중기에 뾰족 밑 혹은 둥근 밑의 형태를 가진 토기가 신석기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토기는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초창기의 고산리식 토기, 덧무늬나 뾰족한 도구로 기면을 누른 후 다시 끌어당겨 무늬를 새기거나(압인문) 무늬 새기개를 도장 찍듯이 눌러 무늬를 만든(압날문) 토기의 전기, 새김무늬로 대표되는 중기, 새김무늬의 퇴화, 무문양화, 겹입술토기(이중구연토기) 등으로 대표되는 후기 및 말기로 나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초창기 토기가 출토되는 유적은 현재 제주도에서만 확인되고 있으며, 고산리 유적과 김녕리, 강정동 유적 등이 있다. 초창기의 토기는 점토에 식물질 비짐을 섞어 만든 것으로 무늬를 새기지 않은 고산리식 토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토기는 곧게 뻗은 입술을 지니며, 납작 바닥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서부 지역은 뾰족밑의 빗살무늬토기가 처음 등장하여 유행한 곳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빗살무늬토기는 입술, 몸통, 바닥 부분에 서로 다른 문양 배치를 한 특징을 보인다. 이른 시기에는 문양 중에서 곡선 형태의 점이 열을 이루는 실타래무늬(점열타래문)나 반원형 무늬가 겹겹이 새겨진 무늬(중호문)가 유행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중기에는 가로 방향으로 구획을 이룬 문양(횡대구획)과 삼각형의 형태를 이루는 사선 방향의 그은 무늬의 집합 문양(삼각집선문) 등이 교대로 시문되는 금탄리1식 토기가 등장하며, 입술 부분에 짧은 빗금무늬와 몸통 부분에 가로 방향과 세로 방향의 물고기 뼈 무늬가 새겨진 토기가 유행한다. 토기의 형태도 바닥이 둥글게 되어가고, 몸통 부분이 부푸는 변화가 엿보인다. 늦은 시기에는 가로 방향의 물고기 뼈 무늬만 전체적으로 새겨진(동일문계 횡주어골문) 토기를 중심으로 일부 짧은 빗금무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로 새겨진 금탄리2식 토기가 유행한다.

중동부 지역에서는 납작 밑 토기와 뾰족 밑 토기가 시기를 달리하여 나타난다. 가장 이른 시기에는 덧무늬토기와 무늬새기개를 도장 찍듯이 눌러 반복적인 무늬를 가진 납작 밑 토기(오산리식 토기)가 대표 토기이며, 양양 오산리, 고성 문암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오산리식 토기는 입술 부분을 중심으로 무늬 새기개로 토기 표면을 찔러 무늬를 표현한 방식의 무늬가 새겨진 토기이며, 바닥 부분에 비해 입술 부분이 넓게 벌어지는 형태를 지닌 특징이 있다. 이 지역의 중기는 뾰족 밑 빗살무늬토기의 출현을 특징으로 하는데, 기본적으로 중서부 지역에서 출토되는 중기의 빗살무늬토기와 형태와 문양이 동일하다. 이러한 토기에 이어 남부 지역에서는 눌러 찍은 후, 깊고 넓게 그어 새긴 무늬(태선문)토기가 출토된다. 늦은 시기에는 새김무늬가 퇴화하고 무문화가 진행되는 등 남해안 지역 빗살무늬토기의 변화와 기본적으로 같은 양상을 보인다.

남해안 지역에서는 시기별로 특징적인 토기 문화가 발달하는데, 크게 5단계로 구분된다. 가장 이른 시기에는 덧무늬토기가 대표적이다. 덧무늬토기는 중동부 해안과 남해안 지역에 분포하며, 그 중심은 남해안 지역이다. 납작 밑을 기본으로 하고 덧무늬는 주로 몸통부에 덧붙여지며, 가로나 세로 방향으로 구획을 한 후 문양을 넣은 특징이 있다. 이러한 구획의 엄격성은 덧무늬토기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약해진다. 이른 시기에는 영선동식 토기가 유행하는데, 둥근 바닥을 기본으로 문양은 주로 입술 부분에만 집중된다. 문양은 가로 방향의 물고기 뼈 무늬를 기본으로 한다. 중기는 수가리1식 토기로 대표되는데, 입술 부분과 몸통 부분에 서로 다른 문양을 새기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무늬에 두꺼운 침선이 사용되는데, 이 시기의 토기는 태선문토기로 통칭되기도 한다. 수가리1식 토기는 기본적으로 중서부 지역 계통 토기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늦은 시기는 수가리2식 토기로 대표되는데, 몸통 부분의 무늬가 없어지고 입술 부분에만 무늬가 새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양의 정연성도 퇴화되고 새긴 무늬의 굵기도 가늘어진다. 가장 늦은 시기는 율리식 토기(겹입술토기)로 대표되는데, 이제 문양이 거의 사라져 겹입술이나 입술 부분에만 간략한 무늬가 남아 있거나, 아예 무늬가 새겨지지 않은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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