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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 생활상

사냥과 채집으로 살았던 구석기 사람들

미상

구석기 시대 생활상 대표 이미지

찍개로 뼈를 깨는 구석기 시대 사람 모습

인천광역시검단선사박물관

1 개요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긴 시대인 구석기 시대는 약 400만 년 동안 지속되었고, 인류도 지금과 달랐던 당시 기후와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였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돌을 깨뜨려 만든 연모인 뗀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했으며, 불을 이용하여 생활하였다. 식물성 식량의 채집뿐만 아니라 사냥을 통해 동물성 식량을 섭취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들판에 막집을 짓거나 동굴 또는 바위 그늘에서 거주하였지만, 한곳에 정착하여 오랫동안 살지 않고, 마치 유목민처럼 먹거리를 찾기 위해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 생활을 하였다.

2 구석기 시대의 시간적 위치와 환경

구석기 시대는 약 400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까지의 시기로, 전체 인류 역사의 99.7%에 해당한다. 그 이후 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와 현대까지의 역사는 불과 0.3% 밖에 되지 않는다. 구석기 시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제4기 갱신세(플라이스토세, 약 260만 년 ~ 1만 년 전)는 흔히 말하는 빙하 시대로서, 빙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반복되었는데, 대체적으로 지금보다 매우 추운 기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약 2만 5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 최성기에는 빙하의 증가로 현재의 해수면보다 100m 이상 내려가 있어, 한반도 서쪽 바다는 이 기간 동안 많은 부분이 육지화 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1만 년 이후 홀로세에 들어와 다시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었으며, 약 6,000년 전쯤 현재와 같은 해안선을 이루게 되었다.

3 구석기 시대의 인류들

아프리카에서는 약 700만 년 전부터 사헬란트로푸스(Sahelantropus), 오로린(Orrorin), 아르디피테쿠스(Ardipithecus) 등 인류의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초기 인류(Hominid)가 등장하게 된다. 약 400만~200만 년 전 사이에 열대 사바나 지역에서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는 두뇌 용량이 약 450~500cc 정도로 두발걷기가 가능하였고, 석기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최초의 인류(Homo)에 해당하는 손쓴사람(호모 하빌리스, Homo habilis)은 약 260만 년 전에 나타났으며, 두뇌 용량이 650~800cc 가량으로 석기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약 190만 년 전에는 현재와 같이 완벽하게 직립 보행이 가능한 인류인 곧선사람(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이 등장하는데, 이전의 인류보다 두뇌 용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약 750~1250cc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정형성과 대칭성을 이루고 있는 석기인 주먹도끼(handaxe, biface)를 제작하고, 불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해서 살아왔던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 등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네안데르탈인(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Homo neanderthalensis)는 약 30만 년 전부터 유럽, 근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나타난다. 전체적인 골격과 체구는 현대 인류에 비해 건장하였고 두뇌 용량은 약 1400~1700cc로 거의 비슷하였다. 이들의 석기는 미리 계획된 방식에 따라 의도대로 제작되었으며, 종류도 다양해졌다.

현대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크로마뇽인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은 아프리카에서 약 20만 년 전에 등장하였고, 10만 년 전 무렵부터 아프리카 밖으로 나와 4만 년 전 즈음에 전 세계로 확산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도구로서 규격화된 돌날석기와 뼈 연모를 제작하였고, 무엇보다도 동굴 벽화 등 각종 예술 작품을 남겼다.

4 석기 제작

인류는 약 330만 년 전부터 돌을 재료로 도구나 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심지어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상 공구는 석기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의 99.9%는 석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일찍부터 돌로 된 도구를 제작하기 시작하여,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돌을 주로 사용했을까? 물론 보존 문제로 현재 잘 남아 있기 힘든 나무, 뼈 또는 뿔도 이른 시기부터 연모로 많이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 재료 역시 도구 제작을 위해서는 석기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돌은 어디에나 존재하여 필요에 따라 획득하기 쉽고, 제작 시간이 짧아 쉽게 제작할 수 있으며, 내구성이 좋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류뿐만 아니라 침팬지와 보노보(피그미 침팬지) 등 다른 영장류도 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고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류와 다른 영장류와는 석기 제작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왜 그런 차이가 생기게 되었을까?

침팬지의 석기는 돌을 지속적으로 쳐서 깨뜨리는 방식으로 매우 단순한 떼기에 불과하다. 반면에 인류의 석기는 물리학적 원리와 예술적 감각으로 제작되어 규칙성과 정형성을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 대칭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인류의 석기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못하였으며, 오히려 현재 침팬지의 석기와 유사하였다. 그러나 인류는 석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시행착오로 얻어진 학습과 그러한 지식과 노하우를 후세에 전달하는 교육을 통해 석기 제작 기술을 계속해서 발달시켰고, 학습과 교육 없이 오직 본능으로만 석기를 제작했던 다른 영장류의 석기와는 차별성을 지니게 되었다.

5 불의 사용

구석기 시대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두려워서, 불 앞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을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인류에게 있어 불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최상의 동반자가 되게 된다.

불의 제어와 사용은 인류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인류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불에 의한 열 덕분에 추위를 견딜 수 있었고, 이전에는 갈 수 없었던 추운 지역에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불빛으로 인해 해가 저문 후에도 화덕 주위에서 작업을 계속해서 할 수 있었고, 어두운 동굴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불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냄새로 사나운 짐승과 해로운 곤충들을 멀리 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무로 된 창을 곧게 만들고, 창끝을 뾰족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가열한 돌을 사용해 석기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으며, 불로 녹인 천연 접착제로 결합식 도구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깊숙한 동굴 안에 등잔을 가지고 들어가 숯으로 동굴 벽화를 그리는 예술 활동도 가능하였다. 무엇보다도 저녁에는 화덕 주변에 함께 모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대에서 후대로 역사 전통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고기와 같은 음식을 불에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어 음식의 맛을 향상시키고, 소화와 영양 흡수를 쉽게 만들었으며, 기생충도 예방하게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의 경우 치아와 턱의 크기가 작아진 반면에, 뇌의 용량은 현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런 질적 변화는 턱과 치아의 운동량의 감소를 의미하고, 음식을 씹기 쉽도록 불을 사용하여 익혀 먹은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구석기 시대 인류는 처음에 번개에 의해 우연하게 자연 발화거나 화산으로 인한 화재로부터 불을 채취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호모 에렉투스 이후 불을 인위적으로 생성시키고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불을 발생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불을 정성스럽게 유지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6 사냥 활동

사냥은 식물 채집과 함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주된 생계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동물성 식량을 공급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냥을 통해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게 시작하면서, 인류는 아프리카와 다른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고, 인류 진화의 바탕이 되는 뇌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처음부터 사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맹수가 남긴 동물의 사체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다가, 중기 구석기 시대에 이르러 전문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냥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유럽의 중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사슴, 말, 들소, 야생 염소를 집중적으로 사냥했으며, 함정으로 동물을 몰아가는 몰이사냥이 가장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후기 구석기 시대에 들어와 현생 인류는 석기 제작 기술 발달과 더불어 뛰어난 사냥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돌날 석기 또는 좀돌날 석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정교하고 획기적인 사냥 무기를 제작하였고, 사냥감이 되는 동물들의 습관이나 생태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하여 본격적인 사냥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후기 구석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사냥감은 사슴이었다. 이 시기의 동물 화석이 출토되는 제천 점말, 청원 두루봉, 단양 구낭굴 동굴 유적에서 제일 많이 발굴된 화석이 사슴 뼈인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7 주거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는 막집의 형태로 들판과 같은 야외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 주거지가 발견된 사례는 많지 않다. 이런 현상은 집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던 재료가 나무나 가죽 등 썩기 쉬운 유기질이었고, 집이 폐기된 이후에 퇴적이나 침수 등 다양한 작용을 받아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굴 조사를 통해 기둥을 세웠던 구멍이나 돌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거나, 불 땐 자리가 보존되어 있을 경우 구석기 시대의 주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구석기 시대의 주거지가 발견된 유적은 공주 석장리, 제천 창내, 화순 대전, 동해 노봉 유적 등이며, 모두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에 해당된다.

오랜 기간 동안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긴 지형물 가운데 하나인 동굴은 들판에 지어진 막집과 더불어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중요한 은신처이며, 삶의 터전이었다. 또한 동굴 유적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이 바위 그늘이다. 이 바위 그늘은 절벽이나 큰 바위 벽의 움푹 파여진 공간으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에게 동굴 못지않은 좋은 주거지로 이용되었다. 동굴과 바위 그늘은 주로 석회암 지대에 형성되므로, 한반도의 경우 강원도, 충청북도, 함경남도, 황해도, 평안남도 일대의 석회암 지대에 구석기 시대 동굴 유적과 바위 그늘 유적이 주로 분포하고 있다.

한편, 구석기 시대 주거지의 기능은 사회-경제적 기능에 따라 거주 유적, 집결 유적, 물자보급 유적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거주 유적은 일상적인 생산과 소비 활동의 전체가 이루어지고, 최소한 한 계절 동안 정착하여 거주하는 유적이다. 집결 유적은 거주 유적보다 생산과 소비 활동이 훨씬 집중되어 있고, 예술 행위와 장신구 제작 등 상징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이 수반된 유적이다. 물자 보급 유적은 먹거리를 획득하고 필요한 자원을 충족시키기 위해 거주 유적 또는 집결 유적에서 파견된 곳으로 야영지, 사냥 캠프, 석기 제작장, 돌감 채취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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