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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대외 교류

신석기인, 길을 떠나다

미상

신석기 시대 대외 교류 대표 이미지

부산 동삼동 유적 출토 흑요석과 조개팔찌

부산박물관

1 개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변 혹은 원거리의 집단과 다양한 형태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등의 사이에서 교류와 교역이 이루어졌다. 그 수단으로는 바다, 하천, 육로를 통한 다양한 루트가 있으며, 교역은 교환, 전파, 이주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고고학에서 교류나 교역의 양상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고고학 자료가 남아있어야 하는데, 동·식물 자료와 그 당시 문화·사상 등 정신세계의 산물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은 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사람들이 만들어 사용한 유물(토기·석기·뼈 도구 등)과 당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흔적(유구)에서 찾아야 한다. 선사 시대 유물 중 교류와 교역의 결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집단의 유물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과 모방한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신석기 시대의 대외 교류와 관련된 지역은 우리나라의 남해안 지역과 일본의 규슈 지역이 대표적이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바다라는 장애 요인과 서로 다른 신석기 시대의 토기 문화를 지니고 있어, 유물을 통한 교류와 교역을 양상을 파악하기가 용이하다.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을 살펴보면, 주로 외양성 어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동시기의 일본 규슈 지역에서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이후 신석기 시대 중기 이후가 되면, 일본 규슈 지역에서 활발한 외양성 어업이 행해지게 되며, 동시기 우리나라의 남해안 지역에 규슈 지역의 유물이 많이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시기의 흐름에 따라 교류의 대상에도 변화를 보이는데, 이른 시기에는 토기와 석기, 석재, 뼈 도구 등 생업 도구를 중심으로 교류와 교역이 행해진다. 그러나 중기 이후에는 조개 팔찌, 치레걸이와 같은 장식품이 중심이 된다. 두 지역은 이러한 밀접한 교류와 교역의 결과로 생업 도구뿐 아니라 조개 가면, 토우(사람·동물), 조개 팔찌 착용 등 유사한 정신적인 세계관 혹은 의례적인 면에 있어서도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2 신석기 시대 대외 교류(교역)의 시작

우리나라의 남해안 지역과 일본의 규슈 지역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문화에 있어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두 지역에서는 모두 리아스식 해안의 다도해로 이루어져 있으며, 난류와 한류가 만나 양호한 어장이 형성된다. 이러한 공통된 환경 속에 위치한 두 지역은 유사한 물고기류와 조개류, 포유류 등을 이용하는 비슷한 생업 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남해안 지역과 규슈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많은 문물 이동을 비롯한 교류가 빈번하게 행해졌던 곳이다. 그 결과 양 지역에는 서로의 문화가 유입되어 많은 고고학적인 자료로 남아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두 지역의 신석기인들이 만들어 사용한 토기는 남해안 지역의 경우 덧무늬토기이며, 일본 규슈지역에서는 도도로끼식 토기(轟式土器)라 불리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카호야 화산재로 인해 규슈 지역의 식생이 대부분 사라진 시기이기도 하다. 두 지역의 이러한 토기 문화를 통해 상호간의 교류 혹은 교역을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남해안 지역에서 도도로끼식 토기가 출토되기도 하고 이를 모방한 토기도 확인된다. 도도로끼식 토기가 출토된 유적으로는 안도, 동삼동, 연대도 유적 등이 있으며, 이러한 토기를 모방한 토기의 수량은 더 많은 편이다.

일본의 규슈 지역에서도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덧무늬토기와 관련된 토기가 확인되는데, 쓰시마(對馬島), 이키(壱岐) 등 섬 지역에서는 덧무늬토기가, 규슈 본토에서는 덧무늬토기를 모방한 토기들이 출토되고 있어, 지역에 따른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특히 대마도의 고시다카(越高) 유적의 경우 출토 토기의 대부분이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덧무늬토기이다. 더 두드러진 특징은 고시다카 유적의 덧무늬토기는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바탕흙을 사용하여 제작한 토기가 아닌 대마도의 바탕흙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석 결과를 보면 고시다카 유적의 덧무늬토기의 제작 기법과 문양 표현 방법 등이 남해안 지역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인들이 대마도로 건너가 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양 지역에서 출토되는 신석기 시대 유물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흑요석과 사누카이트(Sanukite)로 만든 석기들이다. 이 두 석재는 남해안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는 원산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두 석재로 만든 석기가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사례가 많다. 또한 우리나라의 연대도 유적에서는 돌로 만든 숟가락과 같은 일본 신석기 문화의 대표적인 석기도 출토되고 있다.

결국 신석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양 지역의 교류는 남해안 지역 사람들이 흑요석과 사누카이트 등의 석재 구입 목적 또는 먼 바다를 통한 어로 활동 결과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양상은 우리나라의 비봉리 유적에서 출토한 신석기 시대의 배와 삿대, 동삼동 유적의 배모양 토기의 존재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교류 형태는 도도로끼식 토기와 흑요석과 사누카이트제 석기가 많이 출토되는 동삼동과 연대도 유적을 중심으로, 남해안 지역의 특정 집단이 교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3 신석기 시대 대외 교류(교역)의 변화

신석기 시대 늦은 시기에는 양 지역의 교류 형태가 우리나라의 동삼동 유적과 일본의 사가(佐賀) 조개더미 유적에서 잘 드러난다. 동삼동 유적에서는 바다 포유류의 비율이 육상 동물보다 적어지며, 조개류 채집에 있어서도 특정 조개류만 채집하는 등 생활 무대가 육지로 옮겨진다. 반면, 다른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유적과 비교해 다량의 죠몬 토기(일본의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토기)와 투박조개를 이용한 조개 팔찌가 출토되었다. 이와 같이 동삼동 유적은 교류의 중심지였던 이른 시기와 비교해 생업 형태가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교류의 흔적은 여전히 많이 나타난다.

사가(佐賀)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작은 석회질 껍질을 지닌 우렁이나 다슬기와 전복, 소라, 매끈이고둥 등 수심 5~80m 정도에 서식하는 조개류가 많고, 상어류, 참돔, 돌돔, 혹돔 등 대형의 물고기류가 많이 확인된다. 포유류로는 돌고래, 고래, 강치 등의 바다 포유류와 멧돼지를 비롯한 사슴, 토끼, 개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석기와 뼈 도구를 통해 보면, 생업 형태는 외양성 어업이 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토기는 전혀 출토되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되는 유물은 사가(佐賀) 조개더미 유적에서 출토된 고라니 이빨의 치레걸이와 뿔럭지삿갓조개, 흰삿갓조개, 투박조개로 만든 조개 팔찌이다. 고라니와 조개 팔찌의 재료인 조개류는 규슈 지역 주변에서는 서식하지 않으며, 그 서식지가 한반도 해역과 일본열도의 동북 지방 이북 지역이다. 결국 지리적 인접성이나 문물 교류의 양상 등으로 볼 때, 남해안 지역에서 제작된 완제품 혹은 조개가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신석기 시대 늦은 시기에는 앞선 시기와 다른 형태의 교역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많다. 즉,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는 동삼동과 같이 생산과 교역이 중심인 유적과 수가리와 구평리 유적과 같은 수렵 또는 교역의 중심인 유적 등 유적별로 성격의 변화가 나타난다. 일본의 규슈 지역에서도 이른 시기의 동삼동 유적의 성격과 같은 사가(佐賀) 조개더미 유적이 나타나, 교역 또는 교류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주된 교역품이 생업 도구(토기, 석재, 뼈 도구 등)에서 장식품(조개 팔찌, 치레걸이 등)으로 변화한다.

4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 내부의 교류와 교역

우리나라의 신석기 문화는 크게 5개 혹은 6개의 지역권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내에서의 교류와 교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권의 두드러진 특징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떠한 변화 과정을 겪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각 지역권 간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정보와 함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유물이 확인될 때, 지역 간의 교류와 교역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유물 중, 가장 많은 양이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도 각 지역 간 유사점이나 다른 점을 통해 교류와 교역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중서부 지역의 바닥이 뾰족하고 포탄형으로 생긴 빗살무늬토기가 신석기 시대 중기에 이르면 초보적인 농경 기술과 함께 중부 동해안 지역과 남부 지역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내에서 지역 간 교류와 교역의 현상이 명확하게 확인되는 유물로는 동물 유체와 석재가 있는데, 이들 중 특정 종류는 그 서식지와 산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조개 팔찌를 들 수 있다. 충청북도에 위치하는 상시 유적과 금굴 유적, 경상북도에 위치하는 오진리 유적에서 출토된 조개 팔찌는 투박조개로 제작한 것이다. 투박조개의 서식지는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과 일본 동북 지역이다. 그리고 남해안 지역의 동삼동 유적에서는 투박조개로 제작한 조개 팔찌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결국 상시 유적을 비롯한 앞의 세 유적에서 출토된 투박조개로 제작한 조개 팔찌는 동삼동 유적의 것과 제작 방법도 일치해, 동삼동 유적을 비롯한 남해안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의 산지가 백두산이며, 제주도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도 석기 중 제주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석재로 제작한 석기가 종종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내륙과 해안, 해안과 섬 지역의 교류와 교역이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에는 각 지역 간의 교류와 교역은 신석기 시대의 문화 형성에 많은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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