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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성 전투

흙으로 쌓은 성에서 주민들이 거둔 기적 같은 승리

미상

처인성 전투 대표 이미지

처인성

국가문화유산포털(문화재청)

1 개요

처인성(處仁城) 전투는 13세기 전반에 고려가 겪었던 몽골의 2차 침입 때 벌어졌던 전투 중 하나였다. 현재의 용인 지역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몽골군의 총지휘관 살례탑(撒禮塔)이 화살에 맞아 사망하였고, 그 결과 몽골군이 고려에서 철군하고 2차 침입이 종결되었다.

2 대몽항쟁의 시작과 고려의 강화 천도

13세기 초반에 대륙 북방의 초원에서 칭기스칸의 지휘 아래 세력을 키워 일어선 몽골은 무서운 기세로 유라시아 대륙 각지로 세력을 뻗쳐 나갔다. 몽골의 급격한 세력 확장은 우선 인접한 금(金)과 남송(南宋), 그리고 고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가장 먼저 금이 타격을 입었다. 몽골의 맹렬한 공세에 1214년(고종 1)에 지금의 베이징 지역에 있었던 금의 중도(中都)까지 함락되었다. 혼란한 틈을 타 옛날 금에게 멸망 당했던 요(遼), 즉 거란의 후예들이 봉기하여 독자 세력으로 서려다 몽골군과 금군에게 공격당하여 한반도로 밀려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사에서 ‘거란 유종(遺種)의 침입’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고려는 1219년(고종 6)에 이들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몽골군과 연합작전을 펼치게 되었고, ‘강동성(江東城) 전투’에서 거란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어 고려와 몽골은 형제의 맹약을 맺었으나, 몽골의 과도한 공물 요구로 점차 관계가 악화되었다. 결국 1231년(고종 18)에 양국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발발한 1차 침입을 시작으로 이후 1259년(고종 46)에 강화가 맺어질 때까지 기나긴 전란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1차 침입 때 몽골군은 고려의 방어망을 뚫고 개경 코앞까지 내려왔다. 고려 조정은 그해 12월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화친을 맺었고, 몽골은 북계 지역을 관리하겠다는 명목으로 72인의 달로화적(達魯花赤)을 남겨두고 이듬해 1월에 철군하였다. 당장의 전쟁은 멈췄지만, 양국 간의 갈등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몽골의 막대한 공물과 인질 요구는 여전했고, 달로화적 증파와 고려 사신 압송 등 정치적 압박도 더욱 심해졌다. 몽골이 정복지역에 대해 요구하던 ‘6사(6事)’ 중 일부에 해당하는 군사 징발과 국왕 친조(親朝), 호구조사 등도 요구되기 시작했다.

대응 방안을 모색하던 고려는 강화도(江華島)로 천도하여 몽골이 다시 침입해도 수도가 함락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초원 출신의 몽골이 바다를 건너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물론 수도를 옮긴다는 계획에 조정에서는 논란이 분분했다. 그러나 당시의 무신집권자였던 최우(崔瑀)는 이를 힘으로 누르고 1232년(고종 19) 7월에 천도를 단행하였다. 또한 몽골이 남겨두고 간 달로화적들을 모두 살해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하였다. 양국 사이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3 2차 침입의 발발과 살례탑의 진격

몽골은 이를 ‘반란’이라 인식하며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천도 바로 다음 달인 8월에 몽골의 칸은 살례탑에게 고려를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도중에 몽골은 여러 차례 고려에 서신을 보내 외교적으로 압박하였다. 살례탑은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와 투항할 것을 요구하였다. 고려는 몽골이 다시 침입한다는 소문에 강화도로 피했던 것일 뿐 반역한 것이 아니라며 상황을 무마하려 하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환도, 즉 개경으로 다시 천도하는 사안에 대해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었기에, 협상은 쉽게 진전되지 못하였다. 몽골이 국왕이나 무신집정 최우가 직접 강화도에서 나오도록 요구한 것도 고려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요구였다.고려는 공물을 조금 늘리는 선에서 타협하고자 시도했으나, 몽골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당시의 사료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상황을 복원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10월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몽골군의 군사적 공격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구에 있는 부인사(符仁寺)에 소장되어 있던 고려의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목판이 안타깝게도 이때 몽골군에 의해 불타버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를 근거로 살례탑이 별동대 혹은 선발대를 먼저 깊숙이까지 침투시켰다고 여겨진다.

살례탑이 이끄는 본대도 공격을 시작했다. 몽골군은 텅 빈 개경을 지나 한양산성(漢陽山城)을 함락시킨 후 계속 남쪽으로 진격하였다. 교통의 요지였던 광주(廣州)를 지켰던 이세화(李世華)라는 인물의 묘지명에서 당시 전쟁 상황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11월에 광주에 도달한 몽골군은 성을 수십 겹으로 포위하고 온갖 계략을 동원하여 공격하였다고 한다. 몽골군은 치열한 방어를 뚫지 못하고 광주성 공략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12월경, 몽골군은 처인성 인근에 모습을 드러냈다.

4 처인성 전투의 발발과 살례탑 사살

처인성은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산43번지에 유적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에 처인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전해지지 않는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흙으로 쌓은 성이나 지금은 다 무너졌다’라고 기록하였다. 지금은 성곽 일부 등 그 흔적만을 찾을 수 있다. 시굴 조사에 따르면 전체적인 성벽의 길이가 350m 정도인 작은 토성이었다고 한다. 구릉 지형을 활용하여 쌓은 이 성은 아마 적어도 통일신라 후기에는 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인근 주민들이 입보(入保), 즉 피난을 위해 들어온 곳이었다. 당시 무신정권은 본토의 백성들에게 몽골군이 접근하면 산성이나 섬으로 피하도록 지침을 내렸기에, 빈약한 성이지만 이곳으로 대피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주로 처인부곡(處仁部曲)의 사람들이 들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에는 모든 지역이 동등한 지위로 설치되지 않았다. 일반민들이 거주하는 군현(郡縣)과 달리, 향(鄕)․소(所)․부곡은 구별되는 영역으로 관리되었다. 부곡의 주민들은 대체로 일반 백성보다 낮은 대우를 받았다. 한편, 이곳에는 인근 백현원(白峴院)의 승려였던 김윤후(金允侯)라는 사람도 피난 와있었다. 이 작은 토성에 의지하여 흉포한 몽골군이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처인성 사람들의 심경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을 것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절망 속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처인성을 공격하던 총사령관 살례탑이 성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처인성 인근에는 당시 살례탑이 화살에 맞아 죽은 장소라는 전승이 담긴 ‘사장(死將)터’ 혹은 ‘살장(殺將)터’가 전해진다. 일개 장수가 아닌 몽골군의 총사령관이 작은 토성을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 자세한 전황이 전해지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다.

조정에서는 김윤후가 살례탑을 쏘아 죽였다 하여 상장군(上將軍)으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포상을 내려주려 하였다. 고려 무반의 최고위 관직이었다. 하지만 김윤후는 “저는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며 이는 자신의 공이 아니라고 사양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를 섭낭장(攝郞將)에 임명하였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이후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승격이 되었다. 아마도 이 승전의 포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사실 화살이 수없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누구의 화살이 누구를 맞췄는지를 명확히 판가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고려사(高麗史)』 열전에 실린 김윤후의 이후 활약상을 보면, 아마도 처인성 전투에서 김윤후가 주민들을 독려하여 농성전의 지휘를 하였던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곳에 모인 고려인들이 악착같이 저항하는 모습, 그 도중에 기적처럼 화살 하나가 적의 총사령관인 살례탑에게 적중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아마 너무나 작위적인 전개라고 비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이렇게 현실은 영화보다 극적이다.

총사령관이 갑작스럽게 전사한 몽골군은 철군을 단행하였다. 몽골의 2차 침입은 이렇게 하여 갑작스럽게 종결되었다. 사회적으로 천대받았던 부곡의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작은 토성에서 거둔 기적적인 승리가 거대한 몽골의 침입을 한 번 끝나게 했던 것이다. 압도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맞서 싸워 역사의 한 장면을 만들어낸 김윤후와 처인성의 사람들의 모습은 후세에 큰 울림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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