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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창시

서학(천주교)에 반대하여 창시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신흥종교

1860년(철종 11)

동학의 창시 대표 이미지

동경대전부궁을경

e뮤지엄(국립중앙박물관)

1 동학창시의 배경

동학은 1860년(철종 11) 4월 최제우가 도(道)를 깨치면서 시작되었다. 1824년(순조 24)에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난 최제우는 1844년(헌종 10)부터 1854년(철종 5)까지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당시의 혼란한 사회상을 목도하였다. 1854년 유랑생활을 청산한 최제우는 자신이 체험한 혼란한 세상을 구하기 위한 새로운 종교와 사상을 창조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마침내 1860년 4월 일종의 ‘종교체험’을 통해 도를 깨치게 되었다. 이후 자신이 깨달은 것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였으며, 사람들에게 전파하였다.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한 19세기 중엽의 조선사회는 정치의 문란, 관리의 부패, 각지의 반란 등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본래 신분제적 토지소유를 기반으로 하여 운영되고 있던 지주제는 조선 후기로 내려가면서 생산력이 발전하고 신분제적 질서가 붕괴되어감으로써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토지소유의 양극분해와 함께 신분제적 토지소유 원리도 무너져 간 것이다. 이에 따라 양반층 내부에서도 극심한 경제력의 격차가 나타나 양반 소작농이 출현하는가 하면, 양인층으로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주나 부농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사회를 지탱하는 양대 기둥이었던 신분제와 이에 기반한 지주제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한편, 조선의 부세제도(賦稅制度)는 기본적으로 신분제 및 지방제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 등 삼정의 합리적인 운영이 수반되지 않은 채 진행된 사회경제 변동은 부세불균(賦稅不均)과 부세수탈(賦稅收奪)을 가중시켜 소위 ‘삼정의 문란’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부세문제를 둘러싸고 제 계층의 대립, 갈등이 심화되었다. 결국 삼정의 문란은 상품화폐경제의 발전과 지주제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조선정부가 종전의 부세제도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나타난 폐단이었고, 이것이 다시 영세빈농층의 몰락을 촉진하여 농민층의 분화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또한 『정감록(鄭鑑錄)』과 같이 종전의 성리학적 질서를 위협하는 다양한 예언서들이 등장하였으며, 서양의 천주교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사상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동과 다양한 사상들이 제시되면서 조선 왕조의 통치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작변, 민란 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2 동학의 사상

이와 같은 불안한 사회 상황을 목도한 최제우가 깨달은 것은 조선왕조의 질서가 붕괴되고 있으며,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도덕·종교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최제우는 ‘유도(儒道) 불도(佛道) 누천년(累千年)에 운(運)이 역시 다했다’(『용담유사』 교훈가)라고 하였다. 즉, 최제우는 조선왕조의 지배이념인 유교(성리학)와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불교는 이미 그 운이 다했기 때문에, 당시의 현실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특히 서양의 천주교가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사회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서학의 침투에 대항하는 한편, 새로운 이상세계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사상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가 동학(東學)의 탄생이었다. 이를 최제우는 『동경대전(東經大全)』 논학문(論學文) 편에서 “내가 또한 동(東)에서 태어나서 동에서 도(道)를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天道)이지만 학(學)은 곧 동학(東學)이라. 하물며 땅이 동과 서로 나뉘어져 있으니 서를 어찌 동이라 이르며 동을 어찌 서라고 이르겠는가. 공자는 노나라에 태어났고 추나라에 도를 폈기 때문에 추로(鄒魯)의 학풍이 이 세상에까지 전해 온 것이거늘 나의 도는 이 땅에서 받아 이 땅에서 폈으니 어찌 가히 서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라고 표현하였다. 즉, 서학(천주교)과 달리 자신이 세운 새로운 사상 학문을 ‘동학’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나의 도는 지금도 듣지 못하고 옛적에도 듣지 못하던 일이요, 지금도 비교하지 못하고 옛적에도 비교하지 못하는 법이라(吾道今不聞古不聞之事 今不比古不比之法也)”고 하여(『동경대전』 논학문), 동학이 유교, 불교 등 종래의 종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을 갖춘 사상 혹은 종교라고 자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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