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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상[鄭知常]

불우한 천재 시인

미상 ~ 1135년(인종 13)

정지상 대표 이미지

동문선(대동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 머리말

정지상(?∼1135)은 서경 출신으로 초명은 지원(之元)이고 호는 남호(南湖)이다. 고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장가로, 그의 작품들은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받지만, 현재 전하는 그의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2 불우한 어린 시절과 관직자로 살다

정지상은 『고려사』에 열전이 실리지 않아, 그의 생애 전반에 관한 사항은 제대로 알기 어렵다. 다만 인종(仁宗)이 그의 어머니에게 물건을 내려주자, 이에 감사함을 담은 「사사물모씨표(謝賜物母氏表)」를 통해 몇 가지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랐으며, 친척들이 모두 흩어질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던 듯하다. 어려서 공부는 ‘학상(學祥)’에서 했다. 학상은 국자감을 말하는 것으로 짐작되지만, 당시가 일반 사학이 한창 번성하던 때였으므로, 사학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에는 산사(山寺)에서 공부를 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학상과 산사에서 공부를 한 정지상은 1112년(예종 7)에 처음 이름인 정지원으로 과거에 합격했다. 그것도 장원급제였다. 당시 과거시험을 관장했던 이는 오연총(吳延寵)과 임언(林彦)이었다. 고려시대에는 과거시험을 관장했던 이들을 좌주, 합격한 사람들은 문생이라고 하여, 이들은 부모와 자식, 혹은 스승과 제자처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예종(睿宗)대에 과거를 통해 관직생활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정지상이 본격적인 활동을 보인 시기는 인종대였다. 예종대에는 지방에서 관리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존재가 보이는 것은 인종 5년인 1127년이었다. 그는 그 때 좌정언으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는 데에 앞장섰던 것이다. 척준경은 이자겸(李資謙)을 제거한 공을 믿고 함부로 처신하였는데, 인종은 그런 그를 꺼려하였다. 이를 안 정지상이 탄핵에 나서 암타도(嵒墮島)로 유배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같은 해 5월에는 금나라가 송나라에게 패배하여, 송나라의 군사가 금나라의 국경에 깊숙이 들어갔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정지상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송과 연합을 맺어 금 공격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 보고는 오류인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정지상의 대외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지상은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 등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와 관련해서 1134년(인종 11)에 직문하성 이중(李仲)과 시어사 문공유(文公裕) 등이 “묘청과 백수한은 모두 요망스러운 사람으로 그 말이 괴상하고 허탄하여 믿을 수 없는데도 근신인 김안(金安)·정지상·이중부(李仲孚)와 내시 유개(庾開)가 그의 심복이 되어 누차 서로 천거하여 그를 가리켜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또 대신도 따라서 같이 믿기에 주상께서 의심치 않으시지만, 올바르고 정직한 인사들은 모두 원수같이 미워하니, 원컨대, 속히 멀리 배척하소서.” 라고 한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정지상이 묘청과 백수한을 따랐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1134년(인종 12) 12월에 정지상은 묘청과 함께 우정언 황주첨(黃周瞻)을 통해, 인종에게 제(帝)를 칭할 것과 연호 제정을 청하기도 했다. 이는 묘청이 서경에서 난을 일으키면서 칭제건원을 요청한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묘청과의 밀접한 관계는 그가 죽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도 그러한 미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1135년(인종13)에 묘청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 일에 연루되어 살해되고 만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 기록을 보자.
김부식(金富軾)이 여러 재상과 상의하기를, ‘서경의 반역에 정지상·김안·백수한등이 가담하고 있으니, 이 사람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서경을 평정시킬 수 없다’ 하니, 여러 재상들이 그렇게 여기고, 지상 등 3명을 불러서 그들이 이르자 은밀히 김정순에게 말하여 무사로 하여금 3명을 끌어내어 궁문 밖에서 목을 벤 뒤에 비로소 위에 아뢰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김부식은 평소 지상과 같이 문인으로서 명성이 비슷하였는데, 문자 관계로 불평이 쌓여, 이에 이르러 정지상이 내응한다고 핑계하고 죽인 것이다’ 하였다.

정지상이 서경(평양) 출신이고, 서경을 평정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지상을 살해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임금의 허가를 받지 않은 김부식의 단독 결정이었다. 김부식이 정지상을 죽인 실제 이유가 그가 반역에 참여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 관계로 인한 불만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문자 관계의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김부식이 정지상의 시 짓는 재주를 부러워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3 김부식이 질투한 시재(詩才)

정지상의 글 짓는 재주는 매우 빼어났던 듯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정지상이 그의 나이 7세 때에 강 위에 뜬 오리를 보고서,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乙자를 강물에 썼는가(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강부시(江鳧詩)」를 지었다고 한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모습을 그대로 글로 옮겨 적었던 것이다. 쉬운 듯 쉽지 않는 표현이다. 정지상의 천재성을 말해주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백운소설』에는 세속에서 전하는 이야기라고 전제하면서 정지상이 산사에서 공부할 때의 이야기의 하나가 전한다. 그가 달 밝은 어느 날 밤 혼자 절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시 읊는 소리가 공중에서 들렸다고 한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은 보고 절이 있나 의심하고(僧看疑有刹)
학은 보고 소나무가 없는 것을 한탄한다(鶴見恨無松)

정지상은 이 시를 귀신이 읊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지상은 그 뒤로 이 시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시험을 보러 시험장인 시원(試院)에 들어갔을 때였다. 시험을 주관하는 고관(考官)이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가 많다’라는 주제와 봉(峯)자로 운율을 맞추라는 시험문제를 냈을 때, 갑자기 옛적 산사에서 공부할 때 들었던 글귀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그 내용을 가져와 시를 지어서 올릴 수 있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해가 중천에 당하니(白日當天中)
뜬 구름이 절로 봉우리를 이루네(浮雲自作峰)
중은 보고 절이 있나 의심하고(僧看疑有寺)
학은 보고 소나무 없는 것을 한한다(鶴見恨無松)
번개 빛은 초동의 도끼요(電影樵童斧)
우레 소리는 은사의 종이리라(雷聲隱士鍾)
누가 산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는가(誰云山不動)
석양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飛去夕陽風)

시험관은 그 시를 읽어가다 함련(頷聯)에 이르러선 놀랄만한 표현이라고 극찬하고, 정지상을 시험에서 우등으로 뽑았다고 한다. 허황된 얘기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전하는 것은 정지상의 시 짓는 솜씨가 인간의 솜씨를 벗어난 것에 대한 경탄을 그리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 외에 그의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2편의 「송인(送人)」이 있다.

비 갠 뒤의 긴 둑길 풀빛이 더해지는데(雨歇長堤草色多)
그대 보내는 남포에 구슬픈 노래 울리누나(送君南浦動悲歌)
어느 때나 대동강 물마를 날이 있을까(大同江水何時盡)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하네(別淚年年添綠波)

이 「송인」은 매 행의 끝을 ‘다(多)’, ‘가(歌)’, ‘파(波)’로 운율을 맞추면서도 헤어짐의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해 냈다. 물론 3행은 ‘진(盡)’으로 운율을 맞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지만, 이 행까지 ‘ㅏ’로 맞췄다고 한다면, 너무 꽉 짜인 틀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에는 다른 「송인」을 보자.

뜰 앞에 한 잎 떨어지고(庭前一葉落)
마루 밑 온갖 벌레 슬프구나(床下百蟲悲)
홀홀이 떠남을 말릴 수 없네만(忽忽不可止)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悠悠何所之)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片心山盡處)
외로운 꿈, 달 밝을 때(孤夢月明時)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질 때(南浦春波綠)
그대는 제발 뒷기약 잊지 마시오(君休負後期)

이 시는 3행과 4행의 ‘홀홀’과 ‘유유’ 그리고 5행과 6행의 ‘한 조각 마음’과 ‘외로움 꿈’은 대구가 눈에 띈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별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상촌집』에는 이 「송인」에 대해 ‘온 세상이 다투어 전하면서 지금에 이르도록 절창(絶唱)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언급이 있는데, 절창이란 아주 뛰어나게 잘 지은 시라는 뜻이다. 그의 시를 옛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도 정지상의 시에 대해, “고려 전성기에 있어 가장 아름답다. (정지상의 시는) 전해지는 것은 극히 적지만 편편마다 모두 아주 뛰어나게 잘 지은 시이다” 라고 하였다. 그만큼 그의 글재주는 격이 달랐던 모양이다.

정지상과 동시대인이었던 김부식 또한 글 짓는 재주가 있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많은 비교가 되었던 듯하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는 “김부식과 정지상은 시로 당대에 이름이 났다. 김부식의 시는 엄격하고 바르고 일상생활의 법도를 잘 지키며 성실하여 정말 덕 있는 사람의 말 같고, 정지상의 시는 말과 운(韻)이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격조가 호탕하고 빼어나서 만당(晩唐)의 시체(詩體)를 깊이 터득하였으니 두 사람은 기상이 다르다.”라고 평하였다. 정지상에 대해 만당의 시체를 깊이 터득했다고 하는데, 만당은 중국 당나라의 마지막 시기를 지로, 당나라 문종(文宗) 이후 당나라 후기에 이르는 약 70년 간(836∼907)에 해당된다. 그 당시는 당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였지만, 두목(杜牧)·이상은(李商隱)·온정균(溫庭筠) 등 유명한 문인들이 활동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동인시화』의 평은 김부식과 정지상에 대한 내용이 대조적이다. 김부식은 엄격하고 바르고 성실하다고 한 반면, 정지상은 운이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격조가 호탕하다고 한 것이다. 김부식은 이성적인 반면, 정지상은 감성적인 면을 언급하였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시의 세계에서 김부식의 성실함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듯도 하다. 김부식의 입장에서는 정지상의 재주가 부러웠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백운소설』에 전한다. 그들의 악연의 시작을 보여준다. 정지상이 “임궁(琳宮)에서 범어를 파하니(琳宮梵語罷) 하늘빛이 유리처럼 깨끗하구나(天色凈琉璃)”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는데, 김부식이 이 시를 좋아하여 자기의 시로 삼고자 정지상에게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지상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앙금이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 사이가 불편했다는 것은 명확한 듯하다. 아마도 『고려사』에 보이는 문자 관계로 인한 불평도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들의 악연이 매우 컸음은 『백운소설』에 김부식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 정지상이 귀신이 되어 그에게 복수를 했다는 내용이 전하는 것을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부식이 어느 날 봄을 두고 시를 짓기를, “버들 빛은 일천 실이 푸르고(柳色千絲綠) 복사꽃은 일만 점이 붉구나(桃花萬點紅)”라고 하였더니, 갑자기 공중에 귀신이 된 정지상이 김부식의 뺨을 치면서, “일천 실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 보았느냐? 왜, 버들 빛은 실실이 푸르고 (柳色絲絲綠) 복사꽃은 점점이 붉구나(桃花點點紅)라고 하지 않는가?”라고 하자, 김부식은 마음속으로 매우 그를 미워하였다고 한다. 또 뒤에 김부식이 어느 절에 가서 화장실에 올라앉았더니, 정지상의 귀신이 뒤쫓아 와서 남자의 급소인 음낭을 쥐고 묻기를,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왜 낯이 붉은가?”라고 하자, 부식은 서서히 대답하기를, “언덕에 있는 단풍이 낯에 비쳐 붉다.”라고 하니, 정지상 귀신이 음낭을 더욱 죄며, “이놈의 가죽주머니는 왜 이리 무르냐?”고 하자, 김부식은,“네 아비 음낭은 무쇠였더냐?” 하고 얼굴빛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정지상의 귀신이 더욱 힘차게 음낭을 죄자, 결국 김부식은 화장실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긍익(李肯翊)은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서 “김부식은 풍부하면서도 화려하지는 못하였고, 정지상은 화려하였으나 떨치지는 못하였다.” 라고 하여 두 사람을 비교하였다. 김부식은 공부를 통해 많은 지식을 소유하였지만 이를 감각적으로 펼치지 못했고, 정지상은 감각적인 글솜씨를 지녔으나, 인생은 화령하게 꽃피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을 적절하게 평가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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