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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備邊司]

조선 후기 최고의 기구, 국정을 총괄하다

1510년(중종 5) ~ 1865년(고종 2)

비변사 대표 이미지

비변사등록

e뮤지엄(강화역사박물관)

1 개요

비변사는 조선후기 국방과 군사에 관한 기밀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총괄한 최고의 기구이다. 중종 대에 남북 변방에서 발생하는 국방관계의 긴급한 사안을 대처하기 위한 임시기구인 지변사재상(知邊司宰相)을 고쳐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이후 명종 대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정식기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기능이 강화되어 조선후기 국정을 처리하는 최고관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비변사는 1865년(고종 2) 3월 의정부와 통합되어 폐지되었다. 이칭으로 비국(備局), 주사(籌司), 주당(籌堂), 묘당(廟堂)이라고도 하였다.

2 조선 전기 비변사, 임시 군사 대책기관으로 설치되다

조선 초 왜구와 여진의 침입이 끊이지 않자, 국가는 이때마다 의정부, 병조, 지변사재상(知邊事宰相)과 함께 군사 및 국방 전략을 협의하여 결정하였다. 지변사재상은 변방 지역의 관찰사,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등으로 구성되어 국방상 긴급 사안을 처리하는 임시 회의기구였다. 이후 1510년(중종 5)에 삼포왜란(三浦倭亂)이 발생하자, 이의 진압을 위해 비변사를 설치하고, 고위 문관으로 비변사종사관을 맡게 하였다. 이때 설치된 비변사는 임시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곧 폐지되었다.

1517년(중종 12)에는 북방의 경비를 위해 평안도와 함경도에 체찰사와 순찰사를 차출해 군무를 분담한 축성사(築城司)를 비변사로 개칭하였다. 이때 비변사는 3의정(議政)을 도제조(都提調)로, 순찰사를 제조(提調)로, 종사관을 낭관(郞官)으로 하는 조직을 갖추었다. 이후 1520년(중종 15) 비변사는 변방의 사무뿐 아니라 병조와 함께 도성 안의 병무(兵務)도 의논해 처리하였으며, 1522년(중종 17) 전라도 추자도 어란곶(於蘭串) 등지로 왜구의 출몰이 빈번하자 비변사 도제조가 왜구 대책을 올리는 등 점차 상설 기구화 되었다.

그러나 비변사가 정식 관료기구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을묘왜변(乙卯倭變)이 발생한 1555년(명종 10)에 이르러서였다. 왜변으로 인한 제주의 방비와 호인(胡人)의 정세 등을 병조와 함께 의논하면서 권한이 커져 비변사는 정1품아문의 정식관청이 되었다.

3 임진왜란 후 최고의 정책 결정기관이 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변방의 긴급사안을 처리했던 비변사는 기능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을 맞이하였다. 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군사업무와 함께 모든 국가의 일을 비변사에서 의논하며 결정하였기 때문에 의정부의 권한은 점차 축소되었다. 임진왜란 시 비변사는 군령, 인사, 군사훈련, 외교 등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둔전(屯田), 납속사목(納粟事目), 공물 진상, 의병 격려, 군량 운반, 수령 임명, 시체 매장, 산천 제사 등 재정, 민정에 관한 사무도 통할하여 처리하였다. 왕세자의 분조(分朝)에 별도의 분비변사(分備邊司)가 설치될 정도였다.

임진왜란 이후 대신들은 비변사의 권한을 축소하고 다른 관사의 기능을 회복하자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도 비변사의 최고기구로서의 역할은 지속되었다. 그 결과 선조대 후반 이후 비변사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당상의 수도 증가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이 비변사에 참여하였다. 인조 대에 이르면 반정을 주도한 서인들이 비변사의 당상을 겸임하면서 군령, 인사, 재정을 장악하여 실질적으로 비변사를 운영하였다. 특히 인조 대 두 차례의 호란(胡亂)은 비변사의 위상을 더욱 확고하게 하였다. 서인들이 비변사를 주도하는 양상은 효종, 현종 대에도 지속되었다.

숙종대에는 붕당 간 대립이 심화되는 과정 속에서 서인과 남인이 비변사에 참여하였다. 비변사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왕이 비변사 도제조와 당상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보고되었다. 그러나 특정 붕당이 비변사를 장악하면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고자 비변사에서 국정 논의가 거의 중단되었으며, 이는 경종대 더욱 심화되었다. 영조와 정조대에는 탕평정치를 표방하고 붕당간의 갈등을 해소하며 국정을 주도하는 방편으로 비변사의 고위관료들과 만나는 자리인 차대(次對)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세도정치기에 이르면 비변사는 소수 벌열세력에 의해 독점되어 정치와 행정통제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4 비변사의 운영과 조직은 어떠했나

비변사는 도제조, 제조, 부제조, 낭청 등으로 조직되었다. 도제조는 현임 의정인 시임대신과 의정을 역임한 원임대신이 모두 겸임하였다. 시임대신은 비변사를 주관해서 운영하여 비변사 공사(公事)의 결정과 계사(啓辭)의 마감을 하였으며, 원임대신은 왕의 지시나 비변사가 요구하는 특별사안에 대한 자문을 맡았다.

제조는 변경의 사정에 능통한 재신(宰臣)으로 차출되었다. 대체로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의 판서, 훈련도감과 어영청의 대장, 개성(開城)과 강화(江華)의 유수(留守), 대제학(大提學)이 겸임했다. 1646년(인조 24)에 대제학이 제조를 상례적으로 겸임하였고, 1675년(숙종 1)에는 형조판서가, 1691년(숙종 17)에는 개성유수가, 1699년(숙종 25)에는 어영대장이 모두 상례적으로 제조를 겸임하였다. 이후 영조대에 수어사(守禦使), 총융사(摠戎使), 금위대장이, 정조대에는 수원유수, 광주유수가 상례적으로 제조를 겸임하였다.

부제조는 1592년(선조 25)에 처음 두었다. 정3품 가운데 군사업무를 아는 사람으로 임명하여 상주하도록 하였다. 도제조, 제조, 부제조는 모두 정3품 이상의 당상관(堂上官)이므로 비변사당상이라 불렀다.

비변사당상의 차대(次對)는 초기에는 1개월에 3일, 13일, 23일 3차씩 시행했다. 그러나 1698년(숙종 24)에 다시 그 규례를 정하여 매월 5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에 여섯 번씩 빈청(賓廳)에서 이루어졌다. 차대하는 날짜가 재계하는 날이거나 사고(事故)가 있는 날이면 사유를 상세히 적어 제출해야 했다.

실무를 맡아보는 종6품의 낭청(郞廳)은 모두 12명으로 구성되었다. 그 가운데 문관 낭청은 4명이다. 1명은 병조 무비사(武備司)의 낭관이 겸하고, 3명은 시종(侍從)으로 왕에게 아뢰어 차출하였다. 무관 낭청은 8명으로 간혹 참외관(參外官)이 겸임하되 참외관은 근무일수가 15개월이 되면 6품으로 승진시켰다. 이 밖에 서리(書吏) 16명, 서사(書寫) 1명, 고지기[庫直] 2명, 사령 16명, 대청지기 1명, 문서지기 1명, 수직군(守直軍) 3명, 발군(撥軍) 3명이 있었다.

이러한 비변사는 국가통치를 위한 제반 업무를 관장하였다. 먼저, 국가의 모든 군사력을 통제하는 기구로 기능하였다. 국경지역을 비롯해 각 도에서 유사시에 행해지는 군사조치와 군사시설의 설치 및 이전, 여기에 소용되는 비용과 인력의 동원, 군사배치, 대외정세 파악 등은 반드시 비변사에 보고해야 했고, 비변사의 결정에 따라 시행되었다.

전정, 군역, 환곡 등 국가재정의 처리는 비변사의 중심 업무이다. 여러 도의 재해 상황의 등급별 보고인 재실분등(灾實分等)은 매년 해당 도의 구관당상이 검토한 후 비변사에서 회의를 거쳐 왕에게 보고되었다. 사행은(使行銀), 공명첩(空名帖)도 비변사가 관장하였다.

비변사는 주요 관직의 인사권도 가지고 있었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4도 유수, 양계(兩界)감사, 통제사와 북병사, 평안병사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의주, 동래, 제주 등지로 파견되는 수령의 인사에 대한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국내외에 파견되는 각종 사행과 선혜청(宣惠廳), 주전소(鑄錢所) 당상, 암행어사나 안핵사 등의 선임도 비변사에서 행사하였다. 비변사의 인사권 장악은 기능 강화 뿐 아니라 정치 세력의 집중에도 기여하였다.

5 비변사의 폐지

조선 후기 비변사의 역할 강화는 의정부와 6조의 기능을 약화시킨 것으로, 비변사의 폐지를 주장하는 논의가 여러 차례 대신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미 설치된 기관의 폐지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865년(고종 2) 3월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의정부의 실권을 회복하고 행정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국정 의결권을 의정부로 이관하였다. 그 과정에서 비변사는 종부시(宗簿寺)와 종친부(宗親府)를 합친 전례에 따라 의정부와 통합되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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