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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청쯔[馬城子] 문화

고조선 사람들의 영혼이 머문 곳

미상

마청쯔[馬城子] 문화 대표 이미지

마청쯔 동굴 전경, 산청쯔 동굴 출토 치형기, 산청쯔 동굴 출토 미송리형 토기

『本溪文物集粹』本溪市博物館, 2011

1 개요

중국 동북지역 초기 청동기문화의 한 갈래이며 타이쯔허[太子河] 유역의 번시[本溪] 신빈[新賓] 지역에 분포하는 동굴무덤을 대표로 한다.

2 조사와 유적 분포

1979년 타이쯔허 유역의 샛강인 탕허[湯河] 중류에 위치한 먀오허우산[廟後山] B동굴(뒤에 山城子로 바뀜) 유적이 발굴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80년대 초부터 번시 마청쯔, 장자바오[張家堡], 산청쯔, 베이디엔[北甸] 진비엔스[近邊寺], 수둥[水洞] 동굴과 신빈 둥싱[東升], 샤오홍쉬라즈[小紅石砬子], 둥산[東山] 동굴 등 80여 곳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동굴무덤으로서의 독특한 구조와 묻기, 껴묻거리 등을 고려하여 처음에는 ‘먀오허우산 문화’, ‘먀오허우산 문화 유형’이라고 하였다가 ‘마청쯔 문화’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

마청쯔 문화가 조사되고 있는 공간적 범위는 랴오둥 산지의 타이쯔허를 중심으로 번시, 신빈 지역과 훈허[渾河] 유역의 푸순[撫順] 등지로 한정해 볼 수 있다.

3 동굴무덤은 어떤 구조인가?

동굴무덤은 동굴 그 자체가 무덤방 역할을 하지만 개별적으로 무덤방을 만드는 독특한 의미가 있다. 동굴무덤은 제한된 공간에서 축조하기 때문에 공간 확보와 무덤의 배치가 중요하다. 마청쯔 문화의 동굴무덤을 보면 거의가 제한된 묘역(墓域) 안에 상당히 많은 무덤이 축조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것은 한정된 공간을 지닌 동굴의 특성을 고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장자바오 A동굴과 산청쯔 C동굴은 무덤방이 겹쳐 있거나 파괴된 직후 그 자리에 축조한 것도 발굴되었다. 또한 무덤방이 자리한 모습을 보면 무덤이 지니는 일정한 정연성보다는 동굴 벽의 생김새에 따라 무덤방의 크기나 긴 방향이 결정된 것도 조사되고 있어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한다.

무덤의 구조는 맨땅을 조금 판 다음 주검을 넣고 묻은 대부분 움무덤이지만 무덤 구덩[墓壙]을 판 다음 축조한 돌널, 돌덧널, 돌무지무덤도 있다.

장자바오 A동굴에서는 52기(基)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움무덤이 대부분이지만 돌널과 돌덧널무덤도 조사되었다. 이렇게 시차를 두고 한 동굴에 여러 종류의 무덤이 축조된 것은 당시의 사회 발전 과정과 관련이 있다. 이 시기는 잉여 생산물의 증가, 직업의 전문화 등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던 때였으므로 다양한 무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특히 42호 무덤은 돌덧널 안에 나무널로 무덤방을 만든 특이한 구조로 다른 무덤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구조의 무덤은 지금까지 다른 마청쯔 문화 관련 유적에서는 조사된 예가 없지만 나무를 손질하여 판자를 만들 만큼 전문 장인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산청쯔 B동굴과 C동굴처럼 한 곳에 한 유형의 무덤방들만 축조된 것도 있다. B동굴은 돌덧널무덤만 만들어졌고 C동굴은 움무덤만 조사되었다. 이들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비슷한 시기의 동굴무덤이지만 무덤방 구조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밝혀졌는데 아마도 장례습속에 의한 차이로 해석된다.

지역에 따라 동굴무덤의 독특한 구조가 조사된 것도 있다. 타이쯔허 상류지역인 신빈 샤오홍쉬라즈, 난둔, 둥산 동굴무덤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지지 않는 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무덤이 발굴되었다. 이 무덤은 하나의 돌무지 그 자체가 무덤방 역할을 하는 것도 있지만 따로 만들어진 2개의 돌무지가 하나의 무덤방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다. 돌무지가 2개인 것은 화장을 하여 한 쪽에는 사람 뼈를 묻고 다른 곳은 일부러 깨거나 부러뜨린 껴묻거리를 묻는 딸린방[副棺] 역할을 하였다.

4 주검을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동굴무덤을 축조한 사람들은 당시 사회의 장례 습속에 따라 주검을 처리하였을 것이다. 이런 행위는 통과의례로 볼 수 있으며, 강한 전통성과 보수성을 지니면서 사회 발전 과정의 여러 문화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시기에는 농경에 따른 잉여 생산물 축적, 인구 증가, 장인의 전문화 등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묻기의 방법은 먼저 무덤방의 크기에 따라 정하여진다. 마청쯔 문화의 동굴무덤에서는 바로펴묻기[仰身直肢葬]가 가장 많아 널리 이용된 것 같으며 이밖에도 굽혀묻기[仰身屈肢葬], 두벌묻기[二次葬] 등이 있다. 굽혀묻기는 대체로 동굴 벽을 따라 있는 무덤방에서 찾아지며, 뼈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화장은 무덤의 축조 과정에 있어 주검을 가장 단순하게 처리하는 움무덤보다 많은 경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장례 의식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상당히 효율적으로 실시되었을 것이다. 화장은 당시의 장례 습속에 따라 이루어졌지만 주변 환경 때문에 실시된 경우도 있다. 주검의 보존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화장을 실시하였다는 견해가 『열자(列子)』, 『순자(荀子)』 「대략(大略)」, 『묵자(墨子)』 「절장(節葬)」, 『신당서(新唐書)』 「당항강전(黨頂羌傳)」등 중국의 옛 기록에 있다.

화장 방법으로는 제자리 화장[原地火葬]과 바깥 공간에서 화장을 한 다음 뼈를 정리하여 부위별로 무덤방에 놓는 간골화장(揀骨火葬)이 있다. 마청쯔 문화의 동굴무덤에서는 대부분 간골화장을 실시하였는데 이것은 한정된 동굴무덤의 공간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또한 이러한 간골화장은 랴오베이[遼北]나 지린 남부지역에서 조사되고 있는 특이한 묻기의 한 방법으로 다음 시기의 둥펑 자오추거우, 삼리, 두지아구 개석식 고인돌에서도 찾아져 문화의 관련성을 시사한다.

마청쯔 문화의 동굴무덤에서는 주검을 처리하는 과정에 화장이 보편적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그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비용이 필요한 화장이 절대 다수인 것은 사회적인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당시 사회는 복합사회 단계로 앞 시기에 비하여 월등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화장에 소요되는 경비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덤방에는 주검이 1구(具)인 홑무덤[單葬墓]이 보편적이지만 장자바오 A동굴과 마청쯔 C동굴에서는 어울무덤[合葬墓]이 조사되었다. 어울무덤은 보통 부부가 함께 묻히는데 반해 이곳에는 성인 여성과 어린이가 묻힌 것으로 밝혀져 묻힌 사람은 모자(母子) 관계였던 것 같다. 이것은 죽음의 원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고 예상치 못한 재난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 같다.

5 동굴무덤에는 무슨 유물이 껴묻기 되었을까?

동굴무덤에서 발굴된 껴묻거리는 드물게 명기도 있지만 일상 생활에 사용하던 것이 대부분으로 당시 사람들의 무덤에 대한 사유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동굴무덤에 껴묻기된 유물 가운데에는 죽음을 외경스럽게 여기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에서 치른 제의와 관련 있는 것들도 조사되었다.

석기는 거의가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날카로운 날을 지녔으며, 상당히 규격화된 것으로 전문 장인이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종류는 도끼, 자귀, 끌, 삽, 칼, 화살촉, 가락바퀴 등으로 나누어지며 잉여 생산에 의하여 사회가 다원화 되면서 쓰임새에 따라 석기가 세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마청쯔 문화에서 찾아진 석기 가운데 특이한 것은 치형기(齒形器)가 있다. 모양은 비행접시와 비슷하며 가운데 원통형의 구멍이 뚫려 있고 양쪽의 원통은 높게 자리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톱니날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구멍 안쪽 면의 가장자리에는 타래무늬 모양으로 닳은 흔적이 있어 많이 사용한 것 같다. 이 석기의 쓰임새는 회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옥(玉) 가공에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토기는 대부분 홍갈색이며, 외형적인 특징으로는 겹입술, 밑부분의 굽, 몸통에 있는 꼭지 등을 들 수 있다. 무덤방에 껴묻기된 모습을 보면 단지·사발·바리와 단지·동이·사발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두 종류의 묶음 형태로 구분된다.

타이쯔허 상류의 신빈 지역 동굴무덤에서는 가지무늬 토기[茄子形彩紋壺]가 출토되었다. 단지의 겉면에 가지무늬가 새겨진 것으로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이러한 토기는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남강 유역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찾아지고 있어 좀더 많은 비교 자료가 모아지면 기원과 전파 과정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동굴무덤에서는 또 고조선 시기의 표지 유물인 미송리형 토기가 찾아져 주목된다. 이 토기는 짧은 목이 있는 단지로 몸과 몸통에는 묶음 줄무늬[弦紋]가 있고 몸통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주로 대동강 이북과 랴오둥지역에서 조사되고 있어 고조선 강역이나 중심지 규명에 중요한 고고학 자료이다. 특히 장자바오 A동굴에서 출토된 토기는 북 모양의 목단지이고 입술이 바깥으로 바라진 점, 손잡이가 없는 점 등으로 보아 아주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여 미송리형 토기가 마청쯔 문화에서 기원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이한 점으로는 토기를 의도적으로 깨뜨려 무덤방의 가장자리에 뿌렸던 흔적이 찾아졌다. 이것은 죽음을 사회적으로 공인시키는 의례 과정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같은 시기의 고인돌 무덤방에서도 많이 조사되고 있어 당시 사회의 장례 습속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무덤방에서 발굴된 토기를 보면 대체로 부드러운 찰흙으로 만들고 겉면을 매끄럽게 간 흔적이 있는 것 가운데 크기가 매우 작고 살림살이에 사용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러한 토기는 무덤에 껴묻기 위하여 일부러 만든 명기(冥器)일 가능성이 많다. 또한 토기의 몸통에 구멍이 뚫린 것이 껴묻기된 경우도 있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 통용된 상징적인 제의와 관련된 행위로 보이며 랴오둥지역의 돌덧널무덤이나 고인돌에서도 조사되고 있다.

청동기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서 만들어진 귀걸이, 둥근꼴의 치레걸이 등이 있다.

짐승 뼈가 많이 껴묻기 되어 있는데 당시의 장례 습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무덤방을 유택으로 여겨 묻힌 사람의 영생을 바라는 세계관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가장 많은 뼈는 돼지와 사슴이고 개, 노루, 닭 등 상당히 다양하다.

이밖에도 옥이나 짐승 뿔과 뼈, 조가비로 만든 여러 종류의 치레걸이가 찾아져 당시 사람들의 심미안을 엿볼 수 있다.

6 동굴무덤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마청쯔 문화의 동굴무덤 연대는 중국 학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다. 중화(中華) 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랴오둥 또는 랴오시(遼西)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기원과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굴무덤에 대한 연대 설정을 위하여 중국의 고고연구소, 문물보호과학기술연구소, 고척추동물여고인류연구소 등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한 자료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분해 보면 3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는 4000년쯤 전으로 마청쯔 A동굴과 베이디엔 A동굴이 해당되고, 중기는 3500년 전으로 장자바오 A동굴, 산청쯔 B·C동굴이 여기에 속한다. 후기는 3000년쯤 전인데 마청쯔 A동굴과 장자바오 A동굴의 일부가 포함된다.

마청쯔 문화의 동굴무덤은 랴오베이 지역의 초기 청동기문화 계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토착문화의 성격이 강하면서 같은 시기 랴오시[遼西] 지역의 샤자덴[夏家店] 하층문화와 더불어 발전한 마청쯔 문화는 기원, 분포, 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앞으로 해결하여야 할 이러한 것들은 한국사 상의 고조선에 대한 실체를 이해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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