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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베찌르개

구석기 시대의 첨단 사냥 무기

미상

슴베찌르개 대표 이미지

단양 수양개 유적 슴베찌르개

연세대학교 박물관

1 개요

슴베찌르개는 한반도의 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 사냥 도구이다. 돌날 또는 긴 격지의 아랫부분을 손질하여 자루에 끼우거나 결합할 수 있는 슴베를 만들고, 몸체는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 뾰족한 끝을 지닌 찌르개 모양으로 잔손질한 석기이다. 한반도에서는 체계적인 돌날 제작이 이루어지기 시작되는 후기 구석기 시대 초기에 등장하여 후기 구석기 시대 내내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슴베찌르개는 사냥을 위한 찌르개 용도뿐만 아니라 측면의 날을 칼로 사용하거나, 톱니날로 이용하는 기능도 있었던 도구로 보인다.

2 슴베찌르개의 정의 및 형식 분류

슴베찌르개는 돌날 또는 긴 격지를 소재로 삼아, 몸체의 윗부분은 양 가장자리에 잔손질이 베풀어져 거의 대칭을 이루는 뾰족한 끝날이 형성되어 있고, 그 반대편에 해당하는 아랫부분은 가파른 잔손질에 의해 만들어진 슴베가 있는 석기이다. 창 또는 화살촉, 칼이나 호미처럼 자루에 장착하거나 결합시킬 수 있는 슴베가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한반도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 기술 전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주목받고 있다. 박편첨두기(剝片尖頭器), 유경첨두기(有莖尖頭器)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현재 슴베찌르개라는 명칭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슴베찌르개의 기본적인 형식 분류는 석기의 윗부분인 몸체와 아랫부분에 해당하는 슴베 부분의 잔손질 여부에 따라 이루어진다. 먼저 몸체의 잔손질 여부를 살펴보면, 몸체에 잔손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잔손질이 베풀어져 있는 경우 양쪽 가장자리에 모두 있는 것과 한쪽에만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슴베찌르개 가운데 양쪽 가장자리에 잔손질이 베풀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고, 한쪽 가장자리에 잔손질이 있거나 잔손질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좌우가 비교적 대칭을 이루고 뾰족한 끝을 지닌 돌날 또는 긴 격지를 소재로 골라, 잔손질을 하지 않거나 한쪽만 잔손질을 하여 찌르개의 몸체를 만든다. 이는 슴베찌르개를 제작할 당시 소재 준비 단계에서 이미 몸체 손질이 거의 필요 없는 적절한 형태를 의도적으로 선택했음을 보여주며, 그만큼 소재 선택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다음으로 60~80° 정도의 가파른 잔손질로 형성된 슴베의 경우 길이와 형태뿐만 아니라 잔손질의 여부와 방향을 통해 분류할 수 있다. 몸체의 잔손질과 마찬가지로 양쪽에 잔손질이 있는 것과 한쪽에만 있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양쪽에 잔손질이 있는 경우 그 방향에 따라 양쪽 모두 등면 방향, 양쪽 모두 배면 방향, 한쪽이 각각 등면과 배면 방향인 것으로 세분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슴베 제작에 있어 잔손질의 여부와 방향은 소재 형태에 따른 기술적 제약성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3 슴베찌르개의 제작 기술 및 기능

슴베찌르개를 만드는 데 사용된 돌감은 주로 이암, 유문암, 혈암, 반암, 응회암 등이다. 이러한 돌감은 후기 구석기 시대에 많이 사용되었고, 대부분은 해당 유적의 주변에 있는 돌감 산지에서 획득할 수 있다. 간혹 석영제 슴베찌르개가 보고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슴베찌르개는 규암 또는 석영 돌감으로 제작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전기·중기 구석기 시대에 석영, 규암 등의 매우 단단하고 내부 입자가 거친 돌감을 이용하여 주먹도끼, 찍개, 여러면석기 등과 같은 석기를 만드는 방식과는 달리, 이암, 유문암, 혼펠스, 혈암, 반암, 응회암 등 약간 무르고 고운 입자를 지닌 돌감을 슴베찌르개의 소재로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도구에 따라 특정 돌감을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전략을 잘 반영하고 있다.

2만 5천 년 전 이후, 좀돌날석기 제작 기술이 출현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흑요석은 획득이 쉽지 않아, 슴베찌르개의 돌감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물론 광주 삼리 유적에서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슴베찌르개가 출토된 예가 있지만, 혼펠스, 응회암 등 다른 돌감으로 제작된 슴베찌르개와 형태가 다르며,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슴베찌르개의 소재가 90% 이상이 돌날 또는 긴 격지인 점을 감안하면, 돌날의 제작 기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좋은 모양의 돌날은 대칭성이 우수한 슴베찌르개를 만들 수 있어, 1차적으로 돌날이 슴베찌르개의 소재로 선택되었다. 돌날을 제작하는 가운데 부수적으로 나온 돌날 격지 또는 돌날과 형태가 유사한 긴 격지가 2차적으로 선택되었다. 슴베찌르개의 소재가 된 돌날 또는 긴 격지들은 길이 10㎝ 내외, 두께 5~10㎜ 내외로 매우 얇고, 측면에서 봤을 때 직선적인 형태가 대체로 많지만, 소재 형태에 따라 약간 휘어진 경우도 있다.

슴베찌르개의 평면 형태가 대부분 좌우 대칭적이고, 측면 형태는 직선에 가까운 이유는 이런 형태를 가지고 있는 슴베찌르개를 창끝에 장착하여 던질 때 더욱 안정적으로 날아가 목표물에 적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찌르개의 날을 제작하기 위한 몸체의 잔손질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슴베찌르개의 50% 이상이 몸체에 아무런 잔손질 없이 뾰족한 날을 형성하고 있으며, 잔손질이 베풀어진 경우 한쪽 가장자리에만 있는 경우가 약 90%에 달한다. 그리고 잔손질이 가장자리 전체에 걸쳐 베풀어지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끝부분만 뾰족하게 다듬기 위해 부분적으로 잔손질이 베풀어진다.

슴베찌르개의 제작 기술상 가장 중요한 속성은 매우 가파른 잔손질을 베풀어 슴베 부분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슴베를 만드는 작업은 날을 잔손질하는 것과 달리, 매우 섬세하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며, 종종 슴베를 제작하는 중 부러져 폐기되기도 한다. 슴베를 제작하기 위한 잔손질 방향은 대부분 배면에서 등면 방향으로 양 측면이 모두 동일하게 이루어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등면에서 배면으로, 또는 양 측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잔손질이 베풀어지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때림면의 상태와 각도에 따른 기술적 제약성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서, 잔손질이 가능한 방향으로 손질하여 슴베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슴베를 제작하는 잔손질 기술로 눌러떼기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모루 위에 놓고 직접떼기 방식으로도 이루어지기도 한다.

슴베찌르개는 형태상 기본적으로 찌르는 기능이 있는 사냥 도구 또는 무기에 해당된다. 기존의 주먹도끼, 찍개 등과 같은 대형 석기와는 달리, 동물을 먼 거리에서 안전하고 정확하게 사냥할 수 있는 획기적인 도구이다. 다시 말해 원거리에서 사냥할 수 있는 슴베찌르개는 현생 인류의 생존율과 사냥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한편, 찌르개의 기능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가장자리의 날을 칼로 이용하기도 하고, 톱니날로 손질된 경우 생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찌르개로 사용하다가 날이 손상되면, 밀개와 같은 도구로 재가공 또는 재활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4 슴베찌르개의 제작 시기 및 분포

슴베찌르개는 1970년대 초 공주 석장리 유적의 발굴 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 후 1980년대 중반 단양 수양개 유적에서 48점의 슴베찌르개가 출토된 것을 계기로 후기 구석기 시대의 주요 석기로서 주목받았고, ‘슴베찌르개’라는 명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북한을 제외한 남한의 전 지역에서 슴베찌르개가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전 용산동, 임실 하가, 진안 진그늘, 임실 하가. 장흥 신북, 남양주 호평동, 철원 장흥리, 포천 용수재울, 포천 늘거리, 포천 화대리, 대전 용호동, 순천 죽산 유적 등 현재 슴베찌르개가 출토된 유적은 약 30곳이며, 그 수량은 370여 점에 이른다. 최근에는 86점의 슴베찌르개가 단양 수양개 6지구(하진리) 유적의 3문화층과 4문화층에서 조사되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슴베찌르개는 대전 용호동 유적 3문화층으로 38,500±1,000 BP(BP는 Before Present의 약자로 ‘years before present’, 즉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을 의미한다) 이전으로 추정되며, 단양 수양개 6지구(하진리) 유적 3문화층과 4문화층은 평균 연대가 35,180±450 BP, 36,980±350 BP에 해당된다. 그리고 충주 송암동 유적에서는 33,300±160 BP, 33,190±160 BP의 연대값이 나왔고, 포천 화대리 유적은 31,200±9000 BP로 연대 측정 되었다. 이러한 연대 측정의 결과로 미루어 볼 때, 약 4만 년 전 슴베찌르개는 돌날 제작과 더불어 한반도에 등장하여 3만 5천 년 전 이래로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 전통을 주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슴베찌르개는 중기 구석기 시대 이래로 후기 구석기 시대 최말기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에 넓게 분포하여 나타나고 있다. 북아프리카 지역의 중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아테리안(Aterian) 시기에 많은 슴베찌르개가 제작되었고, 유럽 후기 구석기 시대의 말기에 해당하는 막달레니안(Magdalenian) 시기에도 퐁로베르 찌르개(Font-Robert point) 또는 테이자 찌르개(Teyjat point) 등과 같은 여러 종류의 슴베찌르개가 사용되었다.

한편,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도 슴베찌르개가 발굴 조사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러시아 우스티노브카(Ustinovka)I 유적과 우쉬키(Ushki) 유적, 중국 저우커우덴(周口店) 유적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나이프형 석기 문화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에서 슴베찌르개가 출토되고 있는데, 약 2만 5천 년 전에 분출되었다고 알려진 아이라-탄자와 화산재층(AT 화산재층)이 형성된 이후에 일본의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슴베찌르개는 기후가 추웠던 최대 빙하 극성기에 해수면이 낮아졌을 때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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