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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패총)

신석기 시대의 보물 창고

미상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패총) 대표 이미지

연평 모이도 조개더미 유적 및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유적

국립문화재연구소, 부산대학교 박물관

1 개요

조개더미 유적은 인류가 바다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후빙기가 시작되는 약 10,000년 전, 기후가 온난해지고 점차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얕은 해안과 강어귀가 형성되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 지점에 많은 플랑크톤이 서식하면서, 조개의 성장에 적합한 생태 조건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기후와 환경의 변화는 육상에서 수렵과 채집 위주로 생계를 꾸리던 수렵채집 집단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즉, 바다에서의 어로와 해안에서의 조개류 채취가 인류의 주요 생계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인류의 생활은 더욱 안정적으로 식량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조개더미 유적은 주로 바다 자원(특히 조개류)의 소비에 의해 형성된 장소로, 현재의 관념으로 생각한다면 쓰레기 폐기 장소와 유사한 역할을 한 곳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해안과 남해안 지역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많은 섬들이 분포하고 있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자연·지리적 조건은 신석기인들에게 바다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신석기인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바로 그 흔적이 조개더미 유적으로 남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에서 확인된 자연 유물을 보면, 조개류뿐만 아니라 바다 및 육지의 동물들, 심지어 하늘을 나는 조류도 식량 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이나 물고기 뼈 등의 유기물은 산성이 강한 일반 토양에서는 부식되어 남아있지 않지만,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조개의 탄산칼슘이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유지해 주기 때문에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이처럼 조개더미 유적은 당시 신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2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의 발굴과 분포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은 전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말기가 되면 그 수가 가장 많다. 현재까지 3백여 개소가 넘는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이 확인되었다. 남해안 지역에서는 100여 개소가 넘게 확인되었는데, 발굴된 곳은 20∼30개소로 동삼동 유적을 비롯한 부산 다대포, 금곡동 율리, 범방, 북정, 수가리, 조도, 김해 농소리, 사천 구평리, 늑도, 통영 산등, 연대도, 욕지도, 상노대도, 여수 돌산 송도, 안도, 완도 여서도, 창녕 비봉리, 하동 목도 조개더미 유적 등이 있다.

서해안 지역에서도 200여 개소에 가까운 조개더미 유적이 확인되었는데, 이중 발굴 조사된 곳은 20∼30개소이다. 경기 지역의 옹진 소연평도, 모이도, 시도, 영흥도 외리, 초지리 별망, 오이도 조개더미 유적 등이다. 북한 지역에서는 온천 궁산, 해주 용당포, 정주 당산 조개더미 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그리고 충청 이남 지역의 해안과 섬 지역에서는 태안 안면도 고남리, 서산 대죽리, 군산 노래섬, 가도, 비응도, 오식도, 서천 장암 조개더미 유적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동해안 지역은 암초성의 융기 해안이 형성되어 있고 조석간만의 차가 작기 때문에 조개류의 서식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울산만과 함경북도 지역의 일부에 국한되어서 조개더미 유적이 조사되었다. 이중 발굴 조사된 유적은 나선 서포항, 청진 농포동, 울산 세죽 조개더미 유적 등이다. 제주도 역시 동해안 지역과 마찬가지로 조개가 서식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는 환경으로, 서귀포 해안 지역의 몇 개소가 확인되었을 뿐이다.

서해안 지역의 조개더미 유적은 규모가 작고, 단기간에 일시적으로 형성된 곳이 많다. 반면에 남해안 지역의 조개더미 유적은 여러 시기의 문화층이 확인되는 유적이 많고,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동해안 지역의 조개더미 유적은 남해와 서해안 지역보다 유적의 분포가 매우 적고, 조사된 유적 역시 적은 편이다.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의 발굴 조사에서는 자연 유물 및 인공 유물 이외에도 집자리와 매장 유구도 발견되었다. 집자리는 동삼동과 서포항, 궁산, 돌산 송도 조개더미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 조개더미층면을 다지고 만들거나 조개더미층이 형성되기 이전의 지표면에 만들었다. 또한 상노대도, 욕지도, 연대도 그리고 범방, 가덕도 장항 등의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인골이 남아 있는 매장 유구가 발견되었다.

3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의 입지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은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잘린 지형(단애면), 해안에 일정한 방향의 바람이나 파도, 조류 등에 의해 모래나 자갈이 쌓여서 생긴 모래톱이 계속 뻗어나가면서 만의 입구를 가로막은 해안 사주, 강이나 하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 내륙으로 들어가 있는 지역 등에 위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개더미 유적은 해안 주변의 만이 형성되어 있는 구릉 지역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와 같은 조개더미 유적의 입지는 지역과 시기에 관계없이 공통된 양상을 보인다.

조개더미 유적은 해발 고도와 해안과의 거리 등에서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해발 고도 10m을 중심으로 구분된다. 남부 지역에서는 유적이 대부분 10m 이하이며, 섬의 북쪽 또는 북동·동쪽 사면에 위치하지만, 중서부 지역에서는 대부분 10m 이상이며, 섬의 남쪽 또는 남동쪽에 위치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남부 지역에서는 여름철의 태풍, 중서부 지역에서는 겨울철의 북서풍을 피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선택한 결과로 보인다.

입지에 있어 시기적인 차이는 남부 지역의 조개더미 유적에서 확인되는데, 이른 시기는 섬·해안 지역에 많이 분포하는 반면, 중기부터는 조개더미 유적 수도 감소하고 내만에 입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환경의 변화 또는 조개더미 유적을 형성한 집단들의 생업 형태, 즉 어로 형태가 외양성 어로에서 내만성 어로 중심으로 바뀌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4 조개더미 유적에서 확인되는 먹거리

일반적으로 조개더미 유적은 수십 종의 조개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식량원으로 채취한 조개류는 해당 지역의 환경을 반영한다. 조개더미 유적에서 발견되는 조개류는 당시 사람들이 인근의 해안가에서 채취한 것들로, 해안에서 밀물에 의해 바닷물이 내륙으로 들어온 곳과 썰물에 의해 가장 멀리 바다 쪽으로 나간 사이의 넓은 조간대와 암초대가 발달한 서해안의 경우 굴과 바지락, 백합조개, 피뿔고둥, 꼬막 등이 대부분인 반면, 조간대가 형성되지 않은 동해안이나 남해안 지역의 육지와 먼바다에 위치한 섬 지역의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홍합이나 소라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에서 확인된 물고기류와 조개류, 바다 포유류 등 바다 자원을 이용하는 양상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구별하는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바다와 접한 지역이 많아 이러한 양상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는 바닷가에 위치한 많은 수의 조개더미 유적과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먹었던 동물들의 뼈, 바다 자원을 이용하는 데 사용했던 다양한 도구들로 나타난다.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당시 식량으로 이용했던 각종 물고기류와 조개류, 바다 포유류들의 뼈가 발견되고 있으며, 식량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했던 낚시와 작살, 그물추 등이 조사되어, 신석기 시대에 어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생업에서 바다 자원의 비중이 컸다는 점은 바닷가에 위치한 조개더미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해안과 서해안, 남해안이 각각 다른 지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물고기의 분포 또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는 40여 종에 이르는 물고기류가 확인되었고, 농어, 방어, 대구, 넙치, 참돔, 감성돔, 가오리, 매가오리, 상어, 복어 등의 뼈가 많이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에는 식량 자원이 부족한 늦가을에서 초봄에 이르는 기간에 바닷가에서 활발하게 조개류를 채집하여 단백질을 보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시대에는 굴과 홍합, 백합, 반지락, 피뿔고둥, 눈알고둥, 대수리, 떡조개, 소라 등 다양한 종류의 조개류를 식량으로 이용하였다. 종류별 이용 양상과 비중은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굴이다. 그러나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경향과 조금 다른 양상이 확인된다. 홍합이 전체 식용 조개류의 60~80%를 차지하고, 굴이 그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늦은 시기로 가면서 홍합이 감소하고 굴이 증가하는 경향을 볼 수 있고, 우렁이나 다슬기 종류의 권패류 등 다른 조개류의 이용 비율도 높아진다. 이러한 양상은 해수면 변동 등 자연 환경의 변화에 따른 조개 서식과 채취 여건의 변화가 원인으로 보인다.

신석기 시대의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사슴 같은 육상 동물을 비롯하여 조류, 파충류, 양서류 등 다양한 종류의 동물뿐만 아니라, 물개, 강치, 바다사자, 고래 등 바다에서 서식하는 포유류가 출토되어, 바다 포유류도 신석기인들의 중요한 식료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육지와 가까운 바닷가 인근 지역보다는 외해성 해안이나 섬 지역에서 바다 포유류에 대한 사냥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유적 중 바다 포유류가 다수 확인된 곳은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유적이다. 고래 뼈의 수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강치의 뼈가 많이 출토되었다. 강치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사냥한 바다 포유류라 할 수 있으며, 시기에 상관없이 꾸준한 이용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조개더미 유적은 다른 성격의 유적과 달리, 당시 자연환경과 생업, 생산 활동을 직접 보여주는 다양한 인공 및 자연 유물이 포함되어 있어, 고고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인골이라든가, 뼈 유물, 조개류를 비롯한 각종 자연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문화와 생업 활동을 시간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층위적인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조개더미 유적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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