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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도끼

구석기 시대 다목적 석기

미상

주먹도끼 대표 이미지

파주 가월리(23.5cm), 연천 원당리(18.5cm), 파주 금파리(18.1cm) 유적 주먹도끼

연세대학교 박물관

1 개요

주먹도끼는 전기 및 중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이다. 대체로 끝이 뾰족한 아몬드형 또는 타원형을 띠고 있으며, 가장자리는 양면으로 엇갈려 손질되어 구불구불한 날을 이루고 있다. 다목적·다기능을 지닌 석기로서 좌우대칭을 이루는 정형적인 형태는 초기 인류의 인지능력 진화와 예술성을 반영해 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특히 연천 전곡리 유적을 중심으로 한 임진-한탄강 유역의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2 주먹도끼의 정의 및 형식 분류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 가운데 가장 일찍 알려진 석기이다. 18세기 말 이미 학계에 보고되었고, 19세기 중엽 프랑스 솜므강 유역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를 통해 신석기시대 이전의 인류가 존재하였음이 밝혀지게 됨으로써, 구석기 시대라는 시기를 인지하게 되었다.

주먹도끼는 프랑스어의 ‘coup de poing’이라는 용어에서 처음 유래하여, 영어로 ‘handaxe’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주먹도끼의 기능적인 요소보다는 제작 기술의 특성을 고려하여 양면석기(biface)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주먹도끼라는 석기는 몸체의 양면이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손질되어, 윗부분은 대체적으로 뾰족하고, 양옆 가장자리는 날카로운 날을 이루며, 아랫부분은 둥근 형태를 띠고 있다. 모양은 대부분 아몬드형, 타원형이며, 크기는 20cm 내외이다.

19세기 중엽부터 많은 고고학자들이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주먹도끼의 분류법을 제시하였다.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를 남긴 사람은 프랑스 고고학자 프랑수아 보르드(Francois Bordes)이다. 그는 주먹도끼의 크기 계측값과,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지수(index)가 주먹도끼를 객관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길이와 최대 너비의 지수를 납작한 주먹도끼와 두터운 주먹도끼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아, 21개 형식으로 분류하고, 크게 전형적인 유형과 비전형적인 유형으로 나누었다. 전형적인 주먹도끼로는 삼각형 주먹도끼, 심장형 주먹도끼, 타원형, 원반형, 창끝형, 아몬드형 등이 있다. 비전형적인 주먹도끼는 양면 전체가 잔손질되지 않은 것들을 일컫는데, 몸돌형 주먹도끼, 부분손질 주먹도끼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보르드의 형태학적 형식 분류 방법에 따라 국내에서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대량으로 확인된 주먹도끼들에 대한 분류가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3 주먹도끼의 제작 기술 및 기능

주먹도끼를 제작하는 데 사용된 돌감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유럽과 아프리카의 주먹도끼는 대부분 플린트와 응회암으로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규암이나 석영이 주로 사용되었고, 간혹 응회암과 유문암이 이용되기도 하였다. 규암과 석영은 매우 단단하고 입자가 균일하지 못해, 정교한 손질이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주먹도끼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에 비해 대체로 투박하고 두터운 형태를 띠고 있다.

주먹도끼의 제작에는 자갈돌, 덩어리, 판자돌, 대형 격지원석 또는 몸돌에서 떨어져 나온 돌조각을 말한다.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된다. 소재의 원래 형태가 제작하려는 주먹도끼의 최종 형태에 가까울수록 초벌 떼기와 마름질하는 데 시간과 노동이 덜 소비된다. 두터운 자갈돌을 소재로 주먹도끼를 제작하려면, 자연면부터 제거하는 초벌 떼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원하는 주먹도끼와 유사한 형태를 가진 대형 격지를 소재로 선택한다면, 초벌 떼기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간단히 마름질을 한 후, 날세우기 잔손질로 주먹도끼를 제작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 지역의 경우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제작에 사용될 몸체를 얻기 위해서 넓고 두터운 대형 격지를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예가 확인되었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주먹도끼의 소재로 자갈돌과 함께 대형 격지 등이 종종 사용되었다.

주먹도끼의 제작 과정과 방법은 시공간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칭되는 형태와 날카로운 날을 만드는 기본적인 개념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재의 종류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주먹도끼의 성형은 크게 마름질과 마감질의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마름질은 몸체가 자갈돌이든 격지이든 원재료의 형태를 완전히 변형시켜 제작할 석기의 전체적인 모양을 형성하는 과정이고, 마감질은 잔손질이나 날세우기로 마름질된 몸체의 형태가 변형되지 않는 선에서 사용할 날을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주먹도끼 제작에는 이 두 과정이 모두 나타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마감질 과정 없이 마름질로만 이루어지기도 한다.

첫 번째 단계인 마름질은 몸체의 양면을 동시에 번갈아 크게 떼어냄으로써 일반적으로 볼록하고 균형이 잡히도록 만듦으로써 석기의 종단면의 형태가 대칭이 되게 한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주먹도끼의 대략적인 형태와 크기가 결정된다. 두 번째 단계인 마감질은 마름질된 주먹도끼의 가장자리를 잔손질로 조정하여, 평면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대칭을 이루는 최종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기능적인 면에서는 사용날이 될 윗끝날과 옆날, 장착 또는 손잡이가 되는 등부분이 완전히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제작에 있어,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나무와 뿔과 같은 무른 망치의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무른 망치 떼기는 아슐리앙 시기에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등장한 새로운 떼기 기술로서, 이전에 사용되었던 단단한 돌망치(hard hammer) 떼기 기술과 비교할 때, 당시 선사 인류의 인지-행동의 변화를 말해주는 주요한 기술 혁신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무른 망치를 사용하여 주먹도끼를 제작하게 되면서, 직선날과 대칭 형태 등 기하학에 대한 개념이 발전되었고, 돌망치와 다르게 정확한 지점을 때리기 위한 몸짓과 자세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주먹도끼의 대부분은 단단한 돌망치 떼기 기술로 제작된 석기로 보인다. 이는 주먹도끼의 돌감이 주로 규암과 같은 매우 단단한 암석이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입자가 균일하고 유리질 성분이 많은 응회암 또는 유문암으로 제작된 주먹도끼의 경우는 무른 망치 떼기 기술이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주먹도끼는 사용흔 분석 결과 사냥, 도살 행위, 나무 가공, 가죽 가공, 뼈 가공 등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먹도끼의 기능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살펴보면, 영국 혹슨(Hoxne) 유적의 주먹도끼 2점에서 짐승 해체 흔적이 확인되었고, 클락톤(Clacton-on-Sea) 유적의 주먹도끼 1점에서는 나무 작업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최근 프랑스 남서부 샤랑트(Charente)와 도르도뉴(Dordogne) 지방 중기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에서는 드물게 나무를 자르거나 다듬은 흔적이 나왔으나, 대부분의 주먹도끼에서는 짐승 해체 작업에 사용된 흔적이 조사되었다. 이와 같이 주먹도끼는 각 부분마다 적절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다목적·다기능 석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4 주먹도끼의 제작 시기 및 분포

전기 구석기 시대에 등장한 석기로 중기 구석기 시대까지 존재하다가, 후기 구석기 시대에 이르러 사라지게 된다. 주먹도끼의 제작자는 인류의 직계 조상인 곧선사람, 즉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이다. ‘곧선사람’이라는 학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완벽하게 두 발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워진 그들의 두 손은 더욱 정교하게 진화되었고, 그로 인해 석기 제작 기술도 그 이전의 고인류보다도 월등히 뛰어나게 되었다. 주먹도끼는 이러한 인류의 진화를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도구이다.

주먹도끼는 약 180만 년 전을 전후하여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데, 이후 유라시아 대륙으로 점차 퍼져나가, 지역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유럽의 주먹도끼 문화는 100만 년 전 무렵에 시작되는데, 아슐리안 문화가 대표적이다. 아프리카 및 유럽, 인도에서도 주먹도끼는 중요한 문화 단계를 이루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비교적 드물게 나타났다. 이 때문에 인도를 기준으로 그보다 동쪽 지역에서는 주먹도끼 문화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모비우스 라인(Movius Line)’이라는 학설이 1940년대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의 여러 유적에서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주먹도끼 문화는 인류의 문화 발달 과정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했던 것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 주먹도끼의 전반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양면 손질이 이루어진 주먹도끼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프리카 및 유럽의 주먹도끼에 비해 수량적으로나 질적으로 미약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주로 단면 손질을 하였으며, 양면 손질을 한 경우라도 전면적인 손질이 아닌 대부분 부분 손질에 그치고 있다. 형태상으로 전면적인 격지떼기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자연면이 많이 남아 있고, 기하학적으로 대칭을 이루지 못한 채 중심축이 다소 뒤틀려 있다. 두께는 상당히 두터우며, 단면의 형태는 아프리카 및 유럽의 경우와 같이 렌즈형이기 보다 소재의 형태에 많이 좌우된다. 손질을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날이 형성된 부분에는 뚜렷한 추가 손질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측면의 날 부분이 직선상을 이루지 않고, 상당히 구불구불한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날 끝각에서 알 수 있듯이, 예리한 정도는 서구의 주먹도끼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 무른 망치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돌망치에 의해 손질되어, 표면에 격지 흔적의 크기가 매우 크며 깊게 패여 있다. 날 부분에 세밀한 잔손질이 베풀어진 흔적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주먹도끼는 처음에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확인되었으며,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발견된 이후 임진-한탄강 유역의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등 현재 우리나라의 거의 전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5 주먹도끼의 출현 의의

주먹도끼는 인류가 제작한 최초의 규격화된 도구로서, 미리 계획하고 설계한 모양대로 구현하였던 석기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주먹도끼는 크든 작든 형태상으로 좌우와 앞뒷면이 대칭을 이루며, 끝부분이 뾰족한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주먹도끼의 이와 같은 형태적 정형성(定型性)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주먹도끼를 좌우대칭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인지 능력이 이전 시기에 비해 월등히 향상되었음을 보여주며, 서로 크기가 다른 주먹도끼들도 일정한 길이/너비의 비율이 유지하고 있는 기하학적 요소는 인류가 지니고 있는 독자적인 예술성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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