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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 유적

화순 고인돌 공원과 거석문화

미상

화순 고인돌 유적 대표 이미지

화순 고인돌

세계유산 화순고인돌 유적(화순군청)

1 개요

거대한 돌을 옮겨 만들어 놓은 기념물의 우뚝 솟아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영국의 스톤핸지, 이스터섬의 모아이 등과 같이 형태를 가지든 안가지든, 하나이든 여러 개이든 간에 큰 바위는 우리를 압도한다. 이러한 것들을 거석문화라고하며, 우리나라의 고인돌도 여기에 속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고인돌이 가장 많은 곳은 한반도 남부의 화순, 고창 등의 서해안 지역이다. 특히 화순 도곡 일대에서는 보검재 계곡을 따라 약 5km에 결쳐 고인돌 6백 여기가 모여 있다. 이곳은 발견 당시부터 숲속에 위치하여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이웃한 효산리에서는 화순의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깨던 채석장도 확인되었다. 이런 이유로 화순의 고인돌은 고창, 강화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 고인돌의 구분

고인돌은 크게 보이는 외형에 따라 나뉜다. 기본적으로 고인돌은 지상이나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어 만드는 것이다. 덮개돌이 두꺼운 바둑판과 같이 네모난 직육면체인 것을 ‘바둑판식’ 혹은 ‘기반식’이라고 한다. 탁자와 같이 넓고 얇은 판석을 덮개돌로 쓴 것은 ‘탁자식’이라 한다. 여기에 무덤방의 위치나 고임돌의 형태가 합쳐져, 고임돌 없이 큰 돌만 올라가 있는 ‘개석식’과 주변에 돌을 돌린 ‘위석식’ 등으로도 나뉜다.

탁자식은 잘 다듬은 판석 3~4매를 땅 위에 고임돌로 세워 돌방을 만들고 주검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모습으로 흡사 탁자와 같이 생겼다. 고인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두 개의 판석 위에 올려진 거대한 덮개돌의 고인돌은 사실 판석의 일부가 사라져 두 개만 남은 것이다. 탁자식 고인돌로 가장 유명한 것은 강화도 고인돌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삼거리, 고천리, 오상리, 교산리 등에 위치하고 있는 강화 고인돌은 주로 고려산 북쪽 산기슭에 127기가 하나하나 흩어져 있다. 강화 고인돌은 산기슭에서 평지까지 어디에든 있는데, 주목되는 것은 모두 해발 100m 이상의 높은 곳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특히 고천리 고인돌은 해발 350m 근처에 있어 우리나라 고인돌 중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바둑판식은 땅 아래에 판석을 세우거나 깬돌을 쌓아 무덤방을 만들어 주검을 묻고 땅 위에 고임돌을 낮게 놓은 상태에서 덮개돌을 얹은 것이다. 바둑판식과 비슷하지만 고임돌 없이 덮개돌만 얹은 것이 개석식이다. 최근 조사된 400톤이 넘는 덮개돌을 가진 김해 구산동 고인돌이 여기에 속한다. 위석식은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고 여러 매의 판석이 덮개돌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려 세워진 형태로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만 보이는 특징적인 무덤이다.

3 화순의 고인돌

화순 대신리 감태바위 고인돌군에는 덮개돌이 없어지고 고임돌만 남은 것에서부터,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까지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모여있다. 이웃한 도곡의 고인돌군에는 덮개돌의 무게가 100톤 이상이 되는 것들도 여러 개인데, 이 가운데 핑매바위라고 불리는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7.3m, 폭 5m, 두께 4m로 무게는 280여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리 고인돌군의 발굴조사 결과, 과학적인 연대측정으로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전 500년 사이에 고인돌이 만들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화순 고인돌의 가장 큰 특징은 효산리의 채석장이 조사되어 당시에 어떤 방법으로 돌을 자르고, 옮겼는지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4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

화순 효산리 고인돌 채석장은 산 정상 부근에 위치하는데, 그 아래에 화순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 아무래도 큰 돌을 산 위에서 끌고 내려오는 것이 아래에서 끌고 올라가는 것보다는 쉬웠을 것이다. 이곳 채석장에서는 덮개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깨뜨렸던 흔적과 깨다만 덮개돌도 남아 있어 당시의 기술을 살필 수 있다.

덮개돌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쓸 돌을 찾아내거나 커다란 암반에서 떼어낸다. 암반에서 때어낼 때는 바위 결을 따라난 조그만 틈에 깊이 홈을 파고 마른 나무말뚝을 박아 넣어 고정시킨 후,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나무가 물을 먹어 부피가 커지게 한다. 이렇게 하면 물에 불어난 나무가 바위 결을 따라 깨어지게 된다. 떼어낸 돌은 나무 썰매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거나 통나무로 받쳐서 줄로 끌어 옮기는 방법으로 채석장에서 무덤을 만들 곳까지 옮기게 된다. 무덤을 만드는 곳에서는 땅을 파거나 편평한 돌을 짜맞추어 상자와 같이 무덤방을 만든 뒤, 주변에 흙을 쌓아 올려 경사가 완만하게 둔덕을 만든다. 그리고 내부에 돌칼 등 부장품과 시신을 안치한 뒤, 덮개돌을 둔덕으로 올려 자리를 잡고, 둔덕의 흙을 제거하여 무덤을 완성한다.

고인돌의 외형을 보여주는 덮개돌은 모양이나 크기가 다양하다. 보통 10톤 미만의 돌을 덮개돌로 사용하지만 가장 큰 김해 구산동 고인돌의 경우 300톤이 넘는 초대형의 것들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 큰 돌을 옮길 수 있었을까? 돌을 옮겨 고인돌을 만드는 실험으로 알게 된 사실은 1톤의 덮개돌을 약 1.5킬로미터 옮기는 데 16~20명의 노동력이 필요하며, 32톤의 큰 돌을 둥근 통나무와 밧줄로 옮기는데 200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5 고인들의 의미

고인돌은 일종의 ‘거석문화’에 속한다. 거석문화는 큰 돌을 숭배하는 일종의 믿음인데,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확인된다. 한반도에서는 고인돌이나 선돌과 같은 것이 거석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며, 이웃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것들이 존재한다. 대체로 거석문화는 농경과 관련되는데, 고인돌의 덮개돌과 같은 거대한 돌을 옮김으로서 마을의 노동력을 과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때문에 거대한 고인돌은 거대한 권력자의 무덤이라 생각된다. 거대한 돌을 옮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하고, 더 많은 노동력을 가진 사람의 무덤이 당연하게 더 큰 무덤이 된다. 즉 고인돌의 크기를 통해 당시 농경사회의 노동력을 평가할 수 있고 그 노동력은 생산력과도 비례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거대한 고인돌은 거대한 권력을 나타낸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거대한 고인돌에서도 이렇다 할 만큼 권력을 상징하는 부장품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인돌은 개인적인 지배자가 아닌 거대한 돌을 옮길 수 있는 노동력을 가진 마을 공동체의 무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마을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마을의 성원이 모여서 만들어낸 기념물인 것이다. 그리고 계층이 분화되고 권력이 집중되면서 집단의 힘은 개인에게로 집중되게 된다. 그런 과정 속에서 거대한 외형을 가진 고인돌은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의 나무널무덤으로 바뀌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6 세계 속의 고인돌

거석(Megalith)이란 구조물이나 기념물 자체 혹은 그 일부로 사용된 돌을 말하며, 거석문화는 돌을 이용한 구조물을 총칭한다. 한반도에서는 큰 돌을 이용한 고인돌이나 선돌이 이에 해당되고, 작은 돌을 이용한 돌널무덤이나 돌무지무덤도 포함된다.

큰 돌로 무덤을 만드는 것은 인류사에서 일반적인 현상이고, 당연히 전 세계 어디서나 고인돌과 유사한 무덤이 확인된다. 유럽에서는 대서양 동안을 따라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는데, 북유럽의 발트해 연안인 스웨덴 남부부터 덴마크, 네델란드 북부, 독일 등지에서 발견된다. 서유럽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남으로 포르투칼과 스페인, 서로 영국과 아일랜드에 이른다. 흑해연안의 러시아 까프까즈 지역에서도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중해의 이탈리아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화가 분포하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폴리네시아지역에서도 한반도와 유사한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이웃한 중국과 일본에서 많이 발견되어 동북아시아 지역은 고인돌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동북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석붕(石棚)이나 대석개묘(大石蓋墓)라고도 한다. 주로 높은 언덕에 이정표처럼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경우 한반도 남부의 영향으로 고인돌이 만들어지는데, 형태는 고인돌이지만 그 아래 묻혀있는 것은 독무덤인 경우도 있어, 토착 문화와 외래 문화가 섞이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동남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의 고인돌와 유사한 것들이 많이 보이며, 유럽에서도 고인돌이나 선돌이 자주 발견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이라고 할 정도로 그 수가 많은데 한반도 남부에 약 3만여 기, 북부에 1만5천여 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여 세계 고인돌의 40퍼센트 이상에 해당한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거의 대부분이 무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돌을 만들 수 있는 지배자나 권력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의 고인돌은 농경 공동체의 풍년에 대한 기원과 수확에 대한 감사를 하늘에 표현하기 위한 농경기념물의 성격이나 주변 집단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전쟁기념물과 같은 것들도 많이 확인된다. 물론 존경하는 지도자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추모기념물로서의 무덤도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만들어진다. 또한 거석기념물 자체가 태양숭배와 관련되었거나, 고인돌과 같은 유적이 폴리네시아를 비롯한 대양 인근에 분포하는 점에서 해양문화의 소산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거대한 돌을 이용한다는 것은 인류 보편의 행위이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각 지역, 각 시기마다 조금씩 차이를 나타낸다. 그리고 한반도의 고인돌 역시 시간에 따라 권력자의 무덤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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