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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대향로[金銅大香爐]

백제 금속공예의 최고 걸작품

미상

금동대향로 대표 이미지

백제금동대향로

국가문화유산포털(문화재청)

1 개요

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사지 발굴조사 중 발견되었다. 능산리사지는 백제 사비시기의 왕릉군으로 알려진 능산리고분군과 사비도성의 외곽성인 동나성 사이의 계곡부에 위치한다. 1992년부터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능산리고분군 서쪽에 주차장을 마련하기 위한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11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백제의 최고 걸작품으로 인정되는 금동대향로와 창왕명 석조사리감 등 중요한 유물을 발굴해 냈다.

능산리사지는 중문과 목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된 가람배치가 특징적이다. 금동대향로는 능산리사지의 서회랑지 북쪽에 자리한 공방지1에서 출토되었다. 절터의 북쪽과 서쪽에서는 승방지를 비롯한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공방지1 또한 그러한 건물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공방지1이라고 부른 것은 내부에서 금동대향로를 비롯한 많은 금속 제품의 파편과 노(爐) 시설, 소토와 슬래그 등 철기 생산 관련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지는 남북 15.7m, 동서 5.2m 가량의 규모에 중앙실과 남실, 북실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앙실에서 금동대향로를 비롯한 누금장식품, 투조장식, 각종 금은장식, 쇠도끼, 연통형 토기, 유리구슬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공방지에서 수거한 소토를 고지자기법으로 연대 측정한 결과 중심 연대가 660년경으로 나와 금동대향로가 백제 멸망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었다.

금동대향로는 중앙실의 연도 남쪽 수혈 내부에서 발견되었는데, 수혈은 길이 135㎝, 너비 55㎝, 깊이 50㎝ 가량의 장방형 형태이다. 금동대향로는 황갈색점토에 모래, 부스러진 기와편과 토기편, 각종 금동제품과 금동재료, 칠기편, 옥제품 등 450여 점의 유물이 들어 있는 수혈 바닥 부근에서 몸체와 뚜껑이 분리된 채로 출토되었다. 수혈 바닥에는 길이 100㎝, 너비 9.5~13㎝, 두께 5㎜ 정도 되는 나무판자가 네 줄로 깔려 있었다. 주변에서 나무판자를 결구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철제 못이 발견되어 이 나무판자가 공방에 필요한 물을 저장해 두는 수조(水槽) 또는 공방의 담금질을 위한 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뚜껑과 몸체가 분리된 채 발견된 금동대향로는 의도적으로 뚜껑과 몸체를 분리해서 비스듬하게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향로가 놓인 곳은 금속 부스러기와 토기편, 기와편 등으로 충전하였고, 평평한 기와들을 빼곡히 쌓아서 금동대향로를 매납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백제 멸망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금동대향로를 급하게 숨겨둔 것이 극적으로 20세기말 발굴조사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2 금동대향로의 공예적 우수성

향로는 향을 피워 부정한 것을 없애는 제례용 도구이다. 능산리사지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산 모양의 뚜껑과 연꽃잎으로 장식한 몸체, 용틀임하는 받침, 그리고 뚜껑 위에 서 있는 봉황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동대향로는 뚜껑과 몸체 등을 합한 전체 높이 61.8㎝로, 각각 뚜껑에 해당하는 상부 높이 28.8㎝, 하부 몸체 높이 34.5㎝이고, 무게는 상부 4.7kg, 하부 7.1kg를 합한 11.8kg 정도에 이르는 대형 유물이다.

전체적인 모습은 밑에서 날아오르는 용이 용틀임을 하며 뿜어내는 기운을 받아 연꽃 모양이 피어나고, 그 위에 첩첩이 쌓여 있는 산봉우리를 용이 떠받치고 있고, 산꼭대기에 봉황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형상이다.

향로 뚜껑 제일 윗부분에는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 등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樂士)와 가장 높은 다섯 개의 봉우리에 앉아 있는 다섯 마리의 새가 눈에 띈다. 그리고 20여 개의 산봉우리가 3단 내지 4단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이 조각되어 있다. 산중에는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7인의 인물상과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은행잎이나 연꽃잎 같은 6종류의 풀과 소나무, 20개의 바위, 산 중턱의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의 하단에는 뚜껑의 세계를 다른 세계와 구분하기 위한 불꽃무늬가 4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봉황의 가슴 윗부분에 연기가 나올 수 있도록 2개의 작은 구멍을 뚫고, 다섯 마리의 새가 앉은 산봉우리 뒤쪽에 5개, 다섯 악사 앞에 솟은 산봉우리 뒤쪽에 5개씩 둥글게 돌아가며 연기 구멍을 배치하여 몸체에서 향 연기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게 하였다.

뚜껑 꼭대기에는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차게 서 있다. 뚜껑과는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 새가 무엇인가를 두고 봉황이 아닌 천계(天鷄)나 가릉빈가(迦陵頻伽), 금시조(金翅鳥) 등 다른 새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향로 정상의 봉황 같은 동물의 디자인이 삼국시대의 환두대도나 무령왕릉 출토 왕비 베개, 부여 외리 출토 문양전 등에도 등장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이 새를 봉황으로 보는 의견이 다수이다.

금동대향로의 몸체는 활짝 핀 연꽃을 연상시키는 꽃잎이 3단으로 돌아가며 음각되어 있다. 매 연꽃잎 사이와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동물 25마리와 2명의 선인(仙人)이 표현되어 있다. 몸체에 조각된 동물 중에 새는 12마리로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이 밖에도 도마뱀과 악어로 보이는 것들과 날개가 있는 신령한 짐승이나 물고기 같은 동물들이 있다. 동물들과 함께 등장하는 2명의 선인 중 한 인물은 날렵한 네발 달린 짐승의 등에 올라탄 채 뒤를 돌아보며 한 손을 들고 있다. 선인은 머리에 관을 쓰고 날개옷을 입었으며 긴 귀를 가졌다. 다른 인물 역시 날개옷과 같은 옷을 입고 높은 관을 쓰고 있다. 선인들은 하늘과 땅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신령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향로의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치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용은 몸통과 꼬리, 구름 모양의 갈기 등을 투조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용의 몸통 중간부터 꼬리까지는 휘돌아가는 연화당초문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이처럼 아름답고 섬세한 금동대향로는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어졌다. 받침의 용과 연꽃 모양의 몸체, 뚜껑의 산봉우리 등 세 부분을 따로 주조하여 만들고 꼭대기에 봉황을 붙였다. 향로의 특성상 형상이 매우 복잡해서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는 밀랍(蜜蠟)으로 모형을 만든 뒤 그것을 감싼 거푸집을 제작하고 주물을 뜬 것이다.

3 금동대향로에 담긴 백제인의 사상과 신앙

금동대향로는 연꽃으로 장식된 몸체와 신선들이 사는 세계를 표현한 뚜껑, 용 받침과 봉황 등이 어우러져 불교, 도교, 음양오행 등 당시 백제인의 사상과 신앙을 상징하고 있다.

향로의 뚜껑은 여러 겹의 산봉우리가 솟아있는 산악 세계가 형상화되어 있고, 그 꼭대기에 마치 그 세계를 내려다보기라도 하듯 봉황 한 마리가 늠름하게 서 있다. 그 아래로는 날개짓 하는 다섯 마리 새와 다섯 명의 악사, 그리고 다양한 동물과 식물, 인물상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바로 봉황과 다섯 마리의 새라고 할 수 있다. 봉황은 상서로운 새들 중 으뜸인 왕을 상징한다. 금동대향로의 뚜껑 정상에서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봉황은 태평성대를 꿈꾸었던 백제인의 정신은 물론 도교적 이상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뚜껑에 표현된 산악 세계는 신선이 사는 세계를 보여준다. 신선들이 사는 영험한 산에는 다양한 상상의 동물과 식물들이 살고 있지만 여기서는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인물, 즉 도사(道士)들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신성한 산에서 불사(不死)를 꿈꾸며 스스로 신선이 되기를 꿈꾸는데, 향로 뚜껑에 표현된 산악이 바로 그러한 신선의 세계를 표상한 것이다.

한편 향로 뚜껑에 표현된 5개의 봉우리와 5명의 악사, 5마리의 새를 오악(五岳)의 상징물로 보기도 한다. 바로 봉황이 딛고 서 있는 보주 아래에 선각되어 있는 것을 삼산(三山)으로 보아 백제의 삼산 오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란 견해이다. 금동대향로가 제작된 왕도(王都) 사비에는 일산(日山), 부산(浮山), 오산(吳山)으로 불리는 삼산(三山)이 있었고, 백제 전성기에는 삼산 위에 신인(神人)이 거주하며 아침저녁으로 왕래하였다는 『삼국유사』 기록도 있다. 신인(神人)이 거주하고 왕래한다는 도교적 이상향이 투영된 백제의 삼산을 금동대향로에 형상화함으로써 사비도성을 더욱더 신비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금동대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으로 상징되는 불교적 세계도 형상화되어 있다. 연꽃은 재생이나 부활, 창조의 상징으로 인식되다가 삼국에 불교가 도입되면서는 불교의 상징처럼 사용되었다. 진흙 속에서 청정한 꽃을 피워내는 이치로부터 깨달음과 극락왕생을 상징하는 연꽃이 항로 몸체에 묘사된 것은 당시 불교 사상이 투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금동대향로의 받침으로 사용된 용과 뚜껑 꼭대기에 자리한 봉황은 각각 음과 양을 대표하는 신령스런 동물인데, 향로의 받침과 꼭대기에 용과 봉황이 짝을 이루는 것이 음양사상(陰陽思想)과 연결된다는 해석도 있다. 또한 신선의 세계를 뜻하는 다섯 봉우리 사이에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는 오악사까지 더해 이를 당시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이 구현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백제인이 금동대향로에 표현한 다양한 사상과 신앙의 상징으로부터 우리는 금동대향로의 공예적 우수성뿐만 아니라 당시 백제인의 세계관과 이상향 등을 유추함으로써 잊혀버린 백제 정신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4 금동대향로의 기원과 계통

백제 금동대향로는 그 형태와 도상의 특성으로 보아 중국 한대의 박산향로(博山香爐)를 모델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 이미 향이 널리 보급되었는데, 향을 처음 사용할 때는 독충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거나 의복의 냄새를 없애고 벌레를 막는 데 쓰였다. 또한 사당이나 제사 장소의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향을 피우게 되었다. 이후 불교가 유행하면서 향로는 불교 의례에서 중요한 공양구의 하나로 사용된다. 박산향로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한대까지 크게 유행하는데 바다를 상징하는 승반(承盤) 위에 한 개의 다리, 중첩된 산봉우리 형태의 몸체로 구성된다. 몸체에는 불로장생의 신선과 상서로운 동물이 살고 있다는 박산(博山)이 표현되었다. 박산은 중국의 동쪽 바다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 이상향으로 봉래산, 영주, 방장산 등 삼신산(三神山)을 말한다. 신선 세계를 형상화한 박산향로는 한대에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위진남북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국 학자들은 능산리사지 금동대향로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다수 국내 연구자들은 중국 남북조시대에 금동으로 제작된 향로가 거의 출토되지 않고 용과 봉황, 산악과 연꽃으로 장식한 독특한 모양을 한 유례가 없기 때문에 금동대향로가 백제에서 자체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중국 남북조시대의 향로와 백제 금동대향로의 도상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어서 양자 간의 영향 관계는 부인할 수 없지만, 향로를 제작한 목적이나 기능 등에서 중국의 향로와는 안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금동대향로가 백제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있다. 바로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부여 외리에서 향로의 도상들과 매우 유사한 문양과 모티브를 가진 문양전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외리 문양전은 위쪽에는 봉황과 구름이, 아래쪽에는 산이 배치되어 있는데, 중앙의 산 위에 봉황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문양 때문에 봉황산경문전이라고 볼린다. 외리 문양전에 보이는 구름이 흐르는 하늘, 날아다니는 용, 봉황, 연꽃, 도깨비 등의 도상은 금동대향로에서 형상화한 도가 사상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발견된 금동대향로는 중국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아 백제만의 창의성과 조형성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백제 미학의 정수로 평가된다. 뚜껑과 몸체, 받침을 조화롭게 분할한 비례미와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조각미는 가히 중국과 비교할 수 없는 경지이다. 금동대향로는 공예적으로 탁월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도교와 불교 사상, 음양오행 사상 등은 백제인의 자유분방한 세계관을 이상적으로 구현해 낸 백제 문화의 최고 걸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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