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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신라인들이 탑을 세우는 마음에 담다

미상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대표 이미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국가문화유산포털(문화재청)

1 개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8세기 초 미타산이 번역하였다. 총 1권으로 구성된 이 경은 탑을 세우고 다라니를 염송하는 공덕에 대해 설한 경전이다. 8세기 초 신라에 전해진 후 탑의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담긴 내용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미타산(彌陀山)이 한역(漢譯)한 경전이다. 미타산은 서역 출신으로 690~704년경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서 번역 활동을 하여 이 경 이외에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을 실차난타와 함께 한역하기도 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측천무후(則天武后) 때인 704년경에 한역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에 제목에서 ‘다라니’란 부처나 보살의 서원(誓願)이나 덕, 지혜를 지닌 불가사의한 힘이 있는 신비로운 주문을 말한다. 따라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란 더러움이 없이 깨끗하며 영롱한 빛과 같은 다라니에 대한 경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목에서처럼 이 경전에서는 다라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공덕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전의 첫 부분에는 왜 이 내용을 설법하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가비라성(迦毘羅城)에 계실 때, 불법을 믿지 않았던 겁비라전다(劫比羅戰茶)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7일 후 죽게 된다는 것[短命]을 알고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부처로부터 구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바라문의 질문을 듣고 부처는 성안에 있는 오래된 탑을 수리하고 최승무구청정광(最勝無垢淸淨光) 다라니를 독송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설법으로 답을 한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부처님은 근본 다라니·상륜당중(相輪橖中) 다라니·수조불탑(修造佛塔) 다라니·자심인(自心印) 다라니·대공덕취(大功德聚) 다라니·육바라밀(六波羅蜜) 다라니 등 총 6개의 다라니와 그 공덕을 차례로 설한다. 그리고 공덕을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다라니를 서사하여 작은 탑을 만들어 탑 안에 넣고 다라니를 염송하는데, 그때 단을 만들어 의식을 치를 것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겁비라전다를 위해 장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나쁜 곳에 태어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준다. 또, 살아 있는 사람들 중 아픈 사람은 회복될 뿐 아니라 장수하게 되며, 죄와 업장이 제거되고, 죽고 나서도 극락왕생·묘희세계왕생·도솔천왕생할 것이라고 하였다. 죽은 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치병, 장수, 소원성취 등도 설명함으로써 부처를 믿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바람들에 대답하고 있는 내용을 담은 경전인 것이다. 이러한 공덕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다라니의 서사(書寫)와 소탑 제작이라는 구체적인 방식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근본다라니 부분을 살펴보면, 8·13·14·15일 등 의식을 치러야 하는 특정한 날짜를 제시하면서 다라니서사 및 소탑을 77개 제작하라고 숫자를 특정 지었다. 상륜당다라니, 자심인다라니, 대공덕취다라니. 육바라밀다라니에서는 99개로 다라니 서사의 횟수를 제시한 점이 근본다라니와 다르다. 근본다라니, 상륜당다라니, 육바라밀다라니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도 그렇게 만든 탑의 그림자 안에만 들어도 같은 공덕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육바라밀다라니는 다라니를 휴대하고 다닐 것을 당부하면서 그렇게 하면 그 사람과 대화하는 다른 존재들도 같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 하였다. 또한 수조불탑다라니는 탑을 만든 사람뿐 아니라 남에게 부탁하여 탑을 조성하여도 같은 공덕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탑의 중수나 조성의 발원 주체자에 공덕의 효험이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탑과 관련된 모든 존재에게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한 의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다라니의 서사와 염송이 기반이 되는 탑의 조성이다.

3 신라에 전해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탑의 조성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서는 망자에 대한 추복(追福)과 정토왕생, 재앙을 없애고 복을 부르는 것, 병의 치료, 장수 등 다양한 공덕을 설하고, 공덕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다라니의 서사와 소탑 제작과 같은 구체적인 방식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경에서 탑 신앙과 관련한 다라니를 설하는 점 때문에, 인쇄와 필사 등을 통해 탑 안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서 8세기 초 황복사 탑 안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안치한 이후 경의 내용에 따라 석탑을 조성하는 예가 다수 나타난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다지 유행하지 않았다. 반면 신라는 이 경을 즉각적으로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확대, 발전시켰다는 특징이 있다.

신라시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탑이나 관련된 유물로는 황복사지 삼층석탑·나원리 오층석탑·불국사 삼층석탑·석남암사 영태2년명 사리호·전(傳) 인용사지 동서탑·선림원지 삼층석탑·창림사지 삼층석탑·김립지찬 성주사비·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및 민애대왕사리호·취서사 오층석탑·황룡사 구층목탑지 사리공·중화3년명 금동사리기·해인사묘길상탑지·동화사 금당 앞 탑·화엄사 서오층석탑·서동리 동삼층석탑 등이 있다.

소탑이 남아 있는 경우 대부분이 바닥 부분에 작은 구멍을 일부러 조성한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한 것은 경전의 내용에 따라 소탑 안에 다라니를 봉안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된다. 전인용사지 동서탑·선림원 삼층석탑·동화사 금당앞 서탑·서동리 동삼층석탑 등이 해당한다. 명문을 통해 소탑을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경우로는 중화3년명 금동사리기 명문에서는 소탑77기를 만들고 진언 77벌을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해인사 묘길상탑도 소탑마다 진언을 봉안했다고 하였고, 황룡사 구층목탑의 경우 발원문에 돌로 만든 소탑 99기마다 사리 하나씩을 넣었다고 하였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서 설명한 다라니를 서사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는 나원리 오층석탑·화엄사 서오층석탑은 서사한 다라니의 흔적이 현재에도 전해진다. 나원리 오층석탑의 경우 사리함 내부에서 발견된 사경편 중 자심인다라니와 대공덕취다라니가 확인되었다. 화엄사 서오층석탑에서는 종이류 뭉치가 발견되었는데 맨 앞부분에 최승무구청정광명대근본 다라니경이라는 글자가 확인되며, 여섯 개의 다라니가 한 세트가 되어 반복적으로 최소 28회 필사되었다고 한다. 다라니를 서사한 것이 남아 있지 않으나 정황상 다라니를 서사하여 탑에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다. 서동리 동삼층석탑에서는 다라니편이 발견되기도 하였고, 불국사·석남암사·황룡사·중화3년명·해인사 묘길상탑은 발원문을 통해 다라니를 서사하여 납입했다는 기록이 있어 알 수 있다.

신라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서 다양한 공덕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신라 사회 구성원들의 다채로운 요구에 부합되었고, 여러 가지 기원을 담은 무구정광탑의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국과 일본과 달리 신라에서는 큰 호응을 받았던 점은 신라에 불교가 정착하고 난 후 독자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하며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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