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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걸대[老乞大]

중국 여행 필수품이자 중국어 회화의 고전

미상

노걸대 대표 이미지

노걸대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규장각한국학연구원)

1 개요

『노걸대(老乞大)』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사용된 중국어 회화 학습 교재이다.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한문본 『노걸대』는 고려말에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후기에 설치된 통문관(通文館)과 그 후신인 사역원(司譯院), 이를 계승하여 조선 초부터 설치되어 운영된 사역원에서 중국어 실용 회화의 초급 교습서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까지 누차 언해, 개정되며 중국어 회화 학습을 위한 대표적 필수 학습서로 인식되었다.

2 책의 편찬 배경

이 책은 중국과의 교역이 증대되어 중국어 교육의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편찬된 역학서(譯學書)의 일종이다. 역학서란 외국어 학습용으로 편찬, 간행한 책의 통칭인데,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가 바로 본서 『노걸대』이다. 중국에서 원(元)이 중원을 통일한 후 언어의 중심지가 북경(北京)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북경 지역의 언어는 꽤 복잡한 언어이다. 북경은 요(遼) 건국 이래 금(金), 원(元) 등을 지나는 오랜 기간 동안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등 북방민족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북방 지역의 한어(漢語)가 교착적인 알타이 언어의 영향을 받고 그 문법적 특성이 추가되어 독특한 북방 한어로 형성되는데, 이는 고립적이면서 남방음(南方音)을 기본으로 하던 기존 송(宋)대의 중국어와는 매우 다른 언어로 변화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고려인들은 북경의 관화(官話, 관리들이 사용하던 공통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원나라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원나라와 교통하던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개인적 필요에 의해 한어를 학습하여 통역하곤 하다가 점차로 원과의 접촉이 많아지고 통역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국가에서 이를 전담하는 인재를 양성하게 되었다. 이들이, 처음에는 ‘역설(譯舌)’ 혹은 ‘설관(舌官)’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역관(譯官)’이라 지칭되는 통역사들이다. 외교적 필요하에, 중국어를 따로 학습하기 위한 한어도감(漢語都監)이 설치되었고 1276년(충렬왕 2) 통문관(通文館) 이 신설되면서 귀족들의 자제에게도 한어와 몽골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이 기관이 나중에 사역원으로 개칭되면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500년 넘게 존속하는 외국어 교육 기관의 전신으로, 조선 초 편찬된 법전 『경국대전』에 사역원에서 한어, 몽골어, 일본어, 여진어(또는 만주어)를 교육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컨대, 고려시대에 통문관이 설치될 때 현실적 필요 아래 통역을 담당하기 위한 구어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역관의 임무에 적합한 실용적 중국어 회화 교재가 필요하게 됨에 따라 이러한 수요에 맞추어 개발된 교재가 바로 『노걸대』이다.

3 찬자와 편찬 시기

이 책은 고려 후기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누가 언제 찬술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1761년(영조 37) 간행된 『노걸대신석(老乞大新釋)』의 홍계희(洪啟禧) 서문에서도 처음의 『노걸대』가 언제 편찬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도 이 책의 최초 편찬 연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이 책이 사료에 처음으로 그 이름을 드러낸 때는 조선 초이다. 1423년(세종 5) 세종실록 기사에 이 책을 배우는 사람들이 판본(板本)이 없어 베껴 써서 공부해야 하니 주자소(鑄字所)에 명하여 인출하도록 하라는 내용 이나, 1426년(세종 8) 사역원 취재(取才)에 『노걸대』를 외우는 시험을 보게 하라는 내용 으로 보아, 『노걸대』는 조선 초에 이미 권위 있는 중국어 학습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편찬 연대를 추정할만한 근거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노걸대』의 첫 구절만 보아도 그렇다.

“恁從那裏來? 俺從高麗王京來.(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나는 고려의 수도[고려 왕경]에서 왔습니다.)”

『노걸대』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위 내용에서, 고려의 수도에서 왔다는 내용을 보아 이 책은 고려시대에 편찬되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이 조선후기 1761년에 수정되어 『노걸대신석』으로 새로 간행될 때 ‘고려의 수도’라는 부분이 ‘조선의 수도[조선왕경(朝鮮王京)]’라고 바뀌는 것은 해당 책이 사용되는 시대적 배경이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연구 성과에 의하면, 이 책이 시기적으로 고려말에 처음 편찬되었을 것임에는 대체로 동의하나 원대에 편찬되었는가, 명(明) 건국 이후 편찬되었는가에는 논란이 있어 왔다. 다만 고려말 조선초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본 『노걸대』를 연구한 결과, 원대 한어에서 사용하던 특수한 어휘들과 몽골어 차용어가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를 근거로 명 건국 이전인 충목왕 혹은 공민왕대에 편찬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4 책이름과 저자에 대한 여러 가지 설

『노걸대』라는 책이름의 의미에 대하여는 편찬 당시의 문헌적 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 학계에서는 다양한 추측과 가설이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다. 노걸대의 발음이 ‘Kitat’ 또는 ‘Kitai’이며 이는 ‘대지나(大支那)’ 즉 중국인을 의미하는 몽고어라고 보는 설이 있다. 또 여진어나 만주어의 ‘Nikan’, 몽고어의 ‘Kita(i)’는 모두 중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원조비사(元朝祕史)』나 명청 시기의 역서에 나타나는 ‘걸탑(乞塔)’, ‘걸탑척(乞塔惕)’, ‘기탄(起炭)’, ‘길대(吉代)’ 등은 모두 이 ‘Kita(i)’가 한역된 것이라고 보아 ‘걸대’가 중국을 가리키는 몽고어 ‘Kita(i)’이므로 노걸대란 곧 ‘노한아(老漢兒)’의 의미라고 보기도 한다.

노걸대라는 서명에 대하여 ‘노(老)’와 ‘걸대(乞大)’로 나누어 보는 경우가 다수인데 ‘노’에 대한 견해는 경칭(敬稱)이라거나 ‘진(眞)’의 의미라는 등 구구한 편이다. ‘걸대’에 대해서는 견해상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그것이 중국을 지칭하고 ‘글단(契丹)’의 음역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단, 즉 거란은 요나라를 세워 위세를 떨쳤는데 이후 북방 소수 민족들에게 ‘글단’은 곧 ‘중국’이라고 인식하게 될 정도에 이르러, ‘노걸대’란 ‘중국인’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와 관련하여는 고려인 찬술설, 고려인 교민(僑民) 찬술설, 고려 귀화인 찬술설, 중국 북방민족 찬술설, 공동 편찬설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있으나, 모두 추측에 불과할 뿐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결정적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5 책의 내용 : 장삿길에 오른 고려 상인의 중국 여행기

이 책에는 고려 상인 한 명이 중국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며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이 등장하며, 여러 직업의 중국인들을 만나 나누게 되는 대화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이 책의 큰 특징이 드러나는데, 『노걸대』에는 문어(文語)의 구어체나 대화체가 아닌, 완전한 구어(口語) 대화만으로 내용이 이루어져 책의 학습을 통해 중국인들과 실질적 대화가 가능하도록 내용이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대략 106~107개 정도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요한 내용은 고려 상인 일행 네 명, 즉 주요 화자, 그의 고종사촌형 김씨(金氏), 이종동생 이씨(李氏), 이웃 조씨(趙氏)가 고려의 말과 베, 인삼 등의 교역품을 가지고 중국 북경으로 행상하러 다녀오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고려 상인 일행이 북경으로 가는 도중 중국 상인인 요양성(遼陽城) 출신의 왕씨(王氏)를 만나게 되고 그들과 동행하게 되면서 나누는 대화가 기본 줄거리를 이루며, 목적지에 도착하여 가지고 간 물건들을 다 팔고 고려에 가져다 팔 물건들을 다시 구입한 후 중국 상인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까지 중국어 어휘 습득을 위한 여러 가지 특별한 설정들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어휘와 회화문들이 제시되어 있다.

고려 상인이 중국 행상길에서 만나게 되는 몇 가지 장면을 살펴보자.

책의 첫머리는 고려 상인이 중국 상인과 처음 만나서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서로의 목적지가 동일한 것을 확인하고 동행하기로 약속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려 왕경을 출발하여 대도(大都), 즉 북경으로 향하는 고려와 중국 상인들 여정의 출발인 셈이다. 이 장면을 통해 학습자는 중국인과 처음 만나 인사하고 통성명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고려인과 동행하게 된 중국 상인은 자신의 친척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게 된다. 친척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친족 관계에 대한 호칭이 제시되어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만 친족 관계는 민족 언어로 번역이 불가능하고 관계 또한 상이한 경우들이 있어 『노걸대』 판본에 따라 생략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서로 활쏘기 시합을 하여 진 사람이 잔치를 베풀기로 하는데, 여기서는 다양한 중국의 요리 이름과 채소, 과일 명칭이 등장한다.

또 말이나 비단, 잡화 등을 구입하는 장면에서는 값을 흥정하는 대화문과 더불어 당시 교역에서 반드시 알아야 했던 여러 종류의 말과 비단, 수십 종의 물품과 문서 명칭을 나열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중국에서 팔리던 고려의 대표적 물품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말과 모시, 인삼과 같은 유명한 품목 외에도 고려의 종이, 붓, 먹이나 식재료인 미역, 건어, 육포 등이 귀한 선물용 상품으로 유통되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들 고려 상인은 고려 수도를 출발하여 의주, 요양(遼陽)을 거쳐 북경에 도착하는데, 그 사이에 탁주(涿州, 현 하북성 탁현, 웅현, 고안현 일대), 고당(高唐, 현 산동성), 동창(東昌, 현 산동성 료성, 관현, 치평 일대) 등지와 항구도시인 직고(直沽, 현 천진시 경내) 등을 지나가며 해당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각 지역에서 들르는 여관, 음식점, 인가(人家) 등에서 그들을 대하는 주인들의 태도와 인심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당시의 세태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일행이 처음 묵게 되는 와점(瓦店)이라는 여관에서는, 주인이 중국 상인 왕씨와 안면이 있으면서도 말 사료 값에 바가지를 씌워 왕씨와 시비를 벌이는가 하면 식사도 제공하지 않아 손님들이 식재료를 사다 음식을 만들어 먹게 하고 잠자리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불만을 산다. 반면 이튿날에는 점심 지어 먹을 쌀을 사려고 길가의 인가에 들렀는데, 집 주인이 먹으려고 지어놓은 밥을 선뜻 내주고 친절하게 대접하는 인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북경에 도착하여서는 순성문(順城門) 관점(官店)이라는 여관에 묵었는데, 이곳 주인은 방 안내도 하지 않고 밥도 직접 지어먹으라며 불친절한 모습을 보여 도시의 각박한 인심을 드러내고 있다.

책은 이처럼 고려인들의 중국 행상 여정이 주요 내용인지라 중국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어휘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당시 고려에 대한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상인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것은 ‘한아학당(漢兒學堂)’에서 중국인 선생 아래에서 공부하였기 때문이라거나, 고려 학생들이 중국 학생들보다 말썽을 덜 부린다거나, 고려인들은 고기볶음 요리를 만들 줄 모른다는 이야기, 또 고려의 우물 모양은 중국과 다른데 고려에서는 여자들이 물을 긷고 머리로 이어 나른다거나 고려인들은 탕면을 즐기지 않고 마른 음식을 즐겨먹는다는 이야기, 고려의 신라삼(新羅蔘)이 중국에서 인기가 많고, 고려에서는 중국의 값비싼 진품보다 값싼 가짜 물품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고려의 사정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인이 고려에서 팔고자 귀국할 때 구입한 중국의 물품은 다양하고 흥미롭다. 주로 비단 종류인 깁과 능, 굵은 무명과 금실을 섞어 짠 비단, 무늬 없는 비단, 솜, 장신구인 마노 갓끈, 호박 갓끈, 일용품인 바늘, 족집게, 얼레빗, 참빗, 칼, 머리 깎는 칼, 가위, 송곳, 저울, 화장품인 분, 연지, 오락 용품인 장기, 바둑 등 50여 종에 달하는 품목을 구매하고 있다. 이들 품목은 어휘 학습을 위한 정보 제공의 의미도 있겠으나, 실제로 중국에서 고려로 들어오는 물품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책의 마지막은 고려와 중국의 상인들이 여정 동안 숙식을 함께 하면서 사용한 비용을 결산하고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며 후일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장면으로 맺는다.

곧 『노걸대』는 고려 상인의 북경행 여정을 따라 중국인을 만나고 헤어질 때의 인사말, 여관에서 투숙할 때 유용한 말, 물건을 사고 팔 때 벌이는 흥정의 대화, 갖가지 식재료나 물품, 문서의 어휘 등을 제시하여, 중국으로의 여행과 교역에 필수적인 구어들이 내용의 주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 책의 자료적 가치와 영향

이 책은 중국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한 고려인을 위해 실용 회화를 학습할 수 있는 교재로 편찬되었던 만큼, 중국 무역행의 실상과 그에 필요한 어휘를 그들이 겪게 될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이를 통해 고려 말 고려 상인의 교역상은 물론이고, 중국의 생활, 문화와 사회, 각종 물품, 풍속, 교역의 실제 등에 대해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철저히 구어로만 구성된 이 책은 고려 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본, 조선전기 언해본, 조선 후기 개정본, 중간본 등, 시기에 따라 지속적인 수정 간행이 이루어 졌음이 확인된다. 그런데 개정할 때 기존 책의 대화 내용은 그대로 두고 해당 표현만 당시의 언어 현실에 맞게 수정하였다. 이 때문에 『노걸대』는 앞뒤 시기 판본간의 비교를 통해 우리말은 물론 중국어 구어의 변천상까지 관찰 가능한 특이한 책으로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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