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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의 남겨진 이야기, 역사에 남다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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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국가문화유산포털(문화재청)

1 개요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高麗) 후기에 편찬된 책이다. 승려 일연(一然)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조선(古朝鮮)부터 고려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한 여러 이야기를 싣고 있으며, 편찬자의 특성이 반영되어 불교적인 요소가 크게 반영되어 있다. 한반도 고대의 역사와 문화 자료를 풍부하게 담아 후세에 전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2 승려 일연, 옛 이야기들을 모아 엮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사람이 일연 혼자인가 아니면 여러 사람이었는가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제기되었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체재가 일관성이 떨어지며, 특정 부분에만 일연이 지었다는 점이 적시되어 있고, 심지어 문도였던 무극(無極)이 적었다는 표기가 된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연이 이 책을 편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점에는 널리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일연은 고려 후기였던 13세기에 살았던 승려로, 자는 회연(晦然)·일연, 호는 목암(睦庵), 시호는 보각(普覺), 탑호는 정조(靜照)였다. 1206년(희종 2)에 태어나 1289년(충렬왕 15)에 사망하였다. 『삼국유사』가 일연의 일생 중 정확히 어느 시점에 편찬되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는 아쉽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유사』 본문을 비롯해 일연의 일생을 기록한 「인각사 보각국사비」 등 어떤 관련 기록에도 이에 관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일연이 만년에 집필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일연은 승과(僧科)에 급제하여 삼중대사(三重大師)·선사(禪師)·대선사(大禪師) 등을 거쳤고, 국왕에게 불법을 강론하고 국존(國尊)으로 추대되었으며 여러 절의 주지를 역임하고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하는 등 굵직한 이력을 쌓은 선종 승려였다. 그가 지은 저서도 무려 100여 권이 되었다고 한다. 일연은 원종(元宗)과 충렬왕(忠烈王) 시기에 고려 불교계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고승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주목받는 것은 『삼국유사』이지만, 그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불교 승려라는 정체성이었다.

『삼국유사』는 총 9개의 편목이 5권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각 편목들의 이름은 왕력(王歷),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이다. 권1에 왕력과 기이 1, 권2에 기이 2, 권3에 흥법과 탑상, 권4에 의해, 권5에 나머지 네 편목이 수록되어 있다. ‘왕력’과 ‘기이’는 시간순으로 정리한 역사 서술 방식을 택했으며, 이후의 일곱 편목은 불교와 관련된 각종 일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앞에 놓인 ‘왕력’은 중국과 한국의 역대 국가들에서 일어났던 왕위 교체와 주요 사건들을 연표식으로 정리해둔 자료이다. 그러나 단순히 인물과 사건의 이름을 적어둔 것이 아니라 주석처럼 관련 내용을 정리해두어, 뒤에 나오는 ‘기이’ 등의 다른 편목과 함께 비교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기이’에서는 특히 서문과 고조선에 대한 서술이 많은 주목을 받는다. 일연은 서문에서 중국 고대 신화 속 복희(伏羲)와 염제(炎帝) 등의 탄생에 기이한 설화들을 소개한 뒤, “그런즉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가 뭇 편목들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물론 이러한 점이 이 책만의 특징은 아니다. 12세기에 국왕 인종(仁宗)의 명령에 따라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각국의 건국 등에 얽힌 신이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엄격한 역사서를 지향한 『삼국사기』보다 좀 더 자유로운 체제이며, 고승들의 이야기 위주로 편찬되는 것이 일반적인 불교계 역사서와도 다른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여러 기이한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서문에 이어 일연은 왕검조선(王儉朝鮮)과 위만조선(衛滿朝鮮), 마한(馬韓), 낙랑국(樂浪國), 대방(帶方), 말갈(靺鞨)과 발해(渤海), 이서국(伊西國), 5가야(伽耶), 북부여(北扶餘), 동부여(東扶餘)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고구려(高句麗)와 변한(卞韓) 백제(百濟)에 대해 간략히 적은 뒤 진한(辰韓)과 신라(新羅)로 넘어갔다. 이 중 왕검조선에 대한 부분에서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환웅(桓雄)의 강림과 단군(檀君)의 고조선 개국을 이야기한 부분이 중요하다.

‘기이’편의 다음 부분에서는 먼저 모두 신라의 일화들을 기록하고 있다. 역대 국왕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김유신(金庾信)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 겪었던 신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또 모죽지랑가 설화,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 수로부인(水路夫人) 설화, 처용랑 설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항복하기까지의 신라 부분이 끝나면 다시 백제로 넘어가 서동요(薯童謠) 설화 등을 이야기하고 후백제(後百濟)의 멸망과 견훤(甄萱)의 죽음까지를 다루었다. 끝으로 가야의 역사를 담은 ‘가락국기(駕洛國記)’를 실었다.

이후의 편목들은 기본적으로 불교적인 내용들을 담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삼국의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사회상들을 담고 있는 내용이 풍부하여, 학계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권3에 실린 ‘흥법’과 ‘탑상’은 불교를 전파한 여러 승려들과 불교를 숭상한 국왕들의 이야기, 그리고 황룡사구층탑(皇龍寺九層塔)과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등 불교 관련 축조물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권4의 ‘의해’는 원광(圓光)과 자장(慈藏), 원효(元曉), 의상(義湘) 등 고승들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권6에는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이라는 네 개의 편목이 수록되어 있다. ‘신주’에는 고승들이 귀신을 쫒아내거나 용을 몰아내고 왕의 병을 고친 이야기, 비법으로 당의 군사들을 몰아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감통’에는 타인을 위해 명복을 빌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 그에 대한 보답을 받은 이야기들이 적혔다. ‘피은’에는 수행 등을 위하여 세상을 떠나 은거한 사람들에 관한 설화들이 실렸다. 마지막으로 ‘효선’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효도의 도리를 지킨 사람들이 보답을 받았던 이야기들을 담아 두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일연이 살았던 시대까지 전해지던 고대의 이야기들이다. 이 때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며 모아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 담긴 수많은 설화와 향가(鄕歌)를 알지 못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삼국유사』는 학계뿐만 아니라 현대의 한국인 모두에게 소중한 유산이다.

3 『삼국유사』 간행 이력과 전해지는 판본

이렇게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삼국유사』가 언제 편찬되고 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제시되어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명확하게 기록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연이 생전에 이 책을 간행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모호하다. 고려 시대에 『삼국유사』가 간행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나, 실물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현재 전해지는 간행본들은 조신 시대에 간행된 판본들이다. 크게 조선 초기의 판본과 중기의 판본으로 나뉜다.

조선 초기의 판본들은 여러 종류가 전해지지만, 아쉽게도 일부만 남은 낙질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석남본(石南本)’은 필사본만 확인될 뿐 원본이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국보 제306호인 ‘송은본(松隱本)’은 일부가 누락되어 있으나 내용의 훼손이 적은 초기의 자료로서 중요도가 높다. 한편 권2의 ‘기이’만 보존된 보물 제419-2호 ‘니산본(泥山本)’도 조선 초기의 간행본이다. 보물 제419-3호로 지정된 ‘범어사본(梵魚寺本)’도 조선 초기의 판본인데, 일부 편에 구결 현토(懸吐)가 붙어 있어 주목된다. 권2만 있는 ‘조종업(趙鍾業) 소장본’도 이 시기의 판본이다. 연세대학교에 소장된 국보 제306-3호 ‘파른본’은 권1·2만 전해지나 상태가 양호한 선본이며, 조선 초기 판본 중 유일하게 권1이 담겨 있어 중요하다.

『삼국유사』는 조선 시대인 1512년(중종 7)에 중간되었다. 당시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있던 이계복(李繼福)이 경주부에 보관되어 있던 옛 목판들이 마멸이 심하여 알아보기 어려운 것을 보고, 힘들게 온전한 판본을 구하여 중간하였다. 이를 ‘중종임신본(中宗壬申本)’ 혹은 ‘정덕본(正德本)’이라 부른다. 현재 그 목판은 전해지지 않지만, 이로써 찍은 목판본은 몇 종이 전해져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등에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는 전체 권이 포함되어 있으나, 제작 과정에서 오류들이 있어서 초기 판본들과 교감이 필요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유명한 순암(順庵) 안정복(安鼎福)이 소장하며 메모를 적어둔 이른바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은 다섯 권이 온전하게 실려 있고 비교적 중간 초기에 간행된 것이다. 여기에는 안정복의 메모가 적혀 있다. 이 판본은 현재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에 소장되어 있다. 덴리대학에는 ‘호사문고(蓬左文庫) 소장본’과 ‘칸다케(神田家) 소장본’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고려대학교에 소장된 만송문고본(晩松文庫本)도 정덕본의 원형에 가까운 초기의 인쇄본이다. 보물 제419-4호로 지정된 최남선(崔南善) 소장본도 고려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국보 제306-2호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소장본도 정덕본으로, 상태가 양호하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여러 기관에 소장된 자료들을 종합 정리하여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 고대사에 관한 종합인 내용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엄정한 역사서는 아니지만, 『삼국사기』 및 다른 자료들과 함께 활용하여 고대사에 대한 이해를 보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여러 옛 역사서들의 존재와 일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유일하게 이곳에만 수록된 각종 설화와 향가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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