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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고려 인쇄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남다

1377년(우왕 3)

직지심체요절 대표 이미지

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유네스코와 유산

1 개요

『직지심체요절』로 약칭되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은 고려 후기의 선승(禪僧)인 백운 경한(白雲 景閑, 1298~1374)이 선종(禪宗) 역대 조사(祖師)의 법맥과 어록 등을 간추려 요약한 책이다. 이 책의 판본 가운데 1377년(우왕 3)에 청주(淸州) 흥덕사(興德寺)에서 간행된 주자본(鑄字本)은 독일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본보다 앞서는,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고려시대 인쇄술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2 인쇄술의 등장, 목판 인쇄

일찍이 동아시아에서 문자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종이’라는 매체를 발명하고 ‘인쇄’ 기술을 탄생시켰다, 이는 하나를 여럿으로 ‘복제’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으로, 인간 특유의 사유를 넓고 빠르게 확산시켜 문명의 발전을 재촉한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인류의 인쇄 혁명은 15세기에 일어났다고 언급되나 동아시아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목판 인쇄술’이 사용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목판 인쇄술은 다량의 복제라는 인쇄의 개념을 처음으로 실행한 기술로, 학계에서는 대체로 7세기 중반에서 8세기 전반 사이에 개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거듭된 인쇄술의 개발과 학문의 발달로 10세기 후반 북송에서, 11세기 전반 고려에서 당시 불교 지식을 집대성하여 대장경을 목판에 새겨 인쇄하게 된다. 발달된 목판 인쇄술의 결과물로서 대장경 판각과 인쇄는 필요한 경전을 한 권씩 베끼던 사경(寫經) 단계를 넘어 광범위한 문헌을 대량으로 인쇄하여 유포함으로써 지식 유통량의 비약적 증대를 가져왔다. 고려에서 11세기 전반에 조성한 초조대장경 목판은 13세기 몽골군의 방화로 모두 타버렸으나, 곧 재조대장경 을 조성하였다. 현재 이 재조대장경 목판은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이는 지금 남아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 판목이다.

3 인쇄술의 발전, 활자 인쇄

목판 인쇄는 일단 판목을 새겨 놓으면 한 종의 문헌을 다량으로 복제하기는 편리하다. 하지만 책 한 면 한 면을 판목에 조각해야 하며 그 책만 인쇄할 수 있다는 난점이 있다. 즉 목판 인쇄는 필요한 책마다 판목을 가공하고 일일이 새기는 번거로움과 비용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문헌을 바로바로 인쇄하기 어려운 한계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목판 인쇄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고안된 기술이 바로 활자 인쇄술이다. 활자 인쇄는 찰흙이나 나무, 쇠 등을 활용하여 문자와 기호를 하나하나 볼록새김하거나 주조(鑄造)해 두었다가 필요한 책이 있으면 만들어둔 활자를 배열하여 바로 찍어내는 기술이다. 활자 인쇄는 목판 인쇄에 비해 인쇄 공정이 단순하여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는 장점을 갖는 것이다. 최초의 활자는 북송(北宋)의 필승(畢昇)이 1041∼1048년 사이에 고안하였다고 알려진 교니활자(膠泥活字)이며, 이후 금속과 나무,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 이미 주자(鑄字), 즉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책을 인쇄하고 있었음이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등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금속활자의 기원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기록상으로는 1234년 이전의 『고금상정예문』까지 소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기록으로만 나오고 실물이 확인되지 않다가 1972년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책 전시회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귀중본을 위주로 소장품을 공개하면서 『직지심체요절』을 출품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 전시에 『직지심체요절』이 나오게 된 까닭은 프랑스 유학생 박병선 박사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1955년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난 박병선 박사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보라는 대학 시절 은사 이병도 교수의 당부를 염두에 두고 프랑스 전역의 도서관과 고서점을 뒤졌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하고 고증을 통해 이 책이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73년이 앞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임을 밝혀냈던 것이다. 문자의 사용과 종이의 발명, 복제라는 개념을 실현한 인쇄술의 개발 등이 모두 이루어진 동아시아에서, 고려가 인쇄술을 선진적으로 시행, 발전시킨 나라였음이 실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4 고려의 직지심체요절 인쇄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후기 선승이던 백운 경한이 편찬한 것이다. 경한은 나옹 혜근(懶翁 慧懃) , 태고 보우(太古 普愚) 와 함께 고려 말기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평가된다. 1298년(충렬왕 24)에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출가 후 1351년(충정왕 3)에 원(元)으로 유학하여 당시 선종의 유명한 고승이었던 석옥 청공(石屋 淸珙)의 가르침을 받고 귀국하였다. 경한은 석옥 청공으로부터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전해 받았는데, 만년인 1372년(공민왕 21)에 성불사(成佛寺)에 머물며 이를 증보한 것이 바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상·하 두 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약칭된다.

『직지심체요절』은 경한의 사후인 1377년(우왕 3)에 문도 석찬(釋璨) 등이 청주목 교외의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하였다. 책 간기에 의하면 1377년 흥덕사에서 석찬, 달잠(達湛)의 주도하에 비구니 묘덕(妙德)의 시주로 간행되었다고 한다. 석찬과 달잠은 경한의 제자이며, 이 중 석찬은 경한의 시자(侍者)로 『백운화상어록』을 기록한 사람이다. 이어서 다음 해인 1378년(우왕 4)에 취암사(鷲嵓寺)에서 목판으로 다시 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활자본보다는 목판본이 앞서 제작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활자본이 먼저 만들어졌다.

5 현재 직지심체요절의 소재

흥덕사본 『직지심체요절』은 20세기 초에 이미 독일의 구텐베르크에 앞서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판명된 바 있다.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은 이 책을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eenne]』 부록 3738번으로 수록하였다. 『한국서지』는 유례없이 본격적인 한국의 서지라는 점에서 동서양의 학자들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해 보면 아래와 같다.

1책 대 8절판(하권만 존재), (C.P)
이 도서는 권말(卷末)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싣고 있다 : 1377년 청주목 밖에 있던 흥덕사에서 주자(鑄字)로 인쇄되었다. 만일 이 내용이 정확한 것이라면 주자, 즉 활자는 활자의 발명을 자랑으로 삼는 태종의 명령보다 86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 밖에도 간기를 주목해야 한다 : 1371년 소종(昭宗)에 의해 채택된 원(元)의 연호인 선광(宣光) 7년이라 적혀 있다.

위에서 괄호 안의 C.P란 꾸랑이 프랑스공사관 통역서기관으로 한국에 체류하던 때 그의 상관이자 유일한 외교관 동료였던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를 말하며 당시 직지 소장자였다. 위 기록을 통해 상하권 중 상권이 결락된 채 하권만 소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태종의 명령’이란 1403년(태종 3)에 주조된 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가리킨다. 꾸랑이 한국의 고서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한국서지』를 편찬하며 위와 같이 기록한 덕에 훗날 『직지심체요절』의 소재 확인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은 조금 복잡한데, 장서가 쁠랑시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프랑스대리공사로 부임한 인물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고서 및 문화재를 다량 수집하여 귀국하였고 쁠랑시의 컬렉션은 그 목록이 작성되어 관련 분야에 유통될 만큼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에서 큰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장서는 1911년 골동품상 브베르(Henri Vever)에게 180프랑에 팔렸다가 브베르 사후 그 상속인이 관리하던 것을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 첫 장이 결락된 흥덕사 간행 주자본 『직지심체요절』 하권 1책 38장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취암사에서 간행된 목판본 『직지심체요절』은 상하권 완질의 상태로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영광 불갑사(佛甲寺)에 소장되어 있다.

6 직지심체요절의 가치

『직지심체요절』의 간행되던 시기를 살펴보았을 때 활자의 질이나 양, 기술적 측면에서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매우 우수한 것이었다. 30자가 채 되지 않는 서양의 알파벳에 비해 수 천자에 달하는 한자를 활자화하기 위해서는 인쇄 장인들의 기술적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장인이 한자를 읽고 판별하여 식자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야 했다. 동서양의 이러한 문자의 차이는 동양권 인쇄물의 정밀함과 학문적 수준을 보여주나, 역설적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빠른 속도로 인쇄물 출판을 증가시키고 독서의 저변을 넓혀갈 수 있었던 이유를 납득하게 해준다.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서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현재 책의 표지에는 “1377년이라는 연대와 함께 주조된 활자로 인쇄되었다고 알려진 가장 오래된 한국 인쇄본이다”라는 꾸랑의 프랑스어 메모가 부기되어 있다. 또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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