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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집성[農家集成]

양란 이후, 주요 농업 서적을 모은 확장판의 간행

1655년(효종 6)

농가집성 대표 이미지

농가집성

디지털한글박물관(국립한글박물관)

1 개요

『농가집성(農家集成)』은 1655년(효종 6)에 공주목사(公州牧使) 신속(申洬)이 기존의 주요 농업 서적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농사직설(農事直設)』, 『금양잡록(衿陽雜錄)』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가 주된 내용이고, 『구황촬요(救荒撮要)』는 부록으로 구성되었다. 판본이 여러 가지가 있어서 구성과 내용이 다른 것도 있다.

『농가집성』은 기존 『농사직설』 등의 내용을 수정 없이 그대로 합편한 것은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른 개수와 보충이 행해졌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전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농서(農書)이기 때문에 당시 농민들의 재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 책은 17세기 중반 이전의 주요 농업 서적을 모아 증보·편찬함으로써 조선 후기 농업 기술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2 지방관 신속, 농업 서적의 편찬에 노력하다

신속(1600~1661)은 17세기의 문신이다. 자는 호중(浩仲), 호는 이지당(二知堂)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7대조가 신숙주(申叔舟)이다. 신속은 1644년(인조 22)에 신숙주의 문집인 『보한재집(保閑齋集)』을 개간(改刊)하기도 했다. 부친은 승지를 지낸 신경락(申景洛)이지만, 같은 집안 신경식(申景植)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는 1624년(인조 2)에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장원서 별제, 호조 낭관, 사복시 주부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옥천현감(沃川縣監)을 시작으로 영천(榮川)·연안(延安)·양주(楊州)·공주(公州)·통천(通川)·청주(淸州) 등의 수령을 지냈다. 그의 묘지(墓誌)에는 학교를 부흥시키는 등의 치적이 매우 뛰어났다고 평가되어 있다.

1644년(인조 22)에 45세의 다소 늦은 나이로 과거에 합격한 후 춘추관 편수관, 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시강원 필선(弼善)에 제수되어 세자(훗날 효종)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양부의 처남인김자점(金自點)이 축출되면서 신속도 연루되어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다. 김자점의 친족 다수가 사형되거나 유배지로 떠났던 것에 비해, 신속은 김자점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하여 그나마 좌천으로 그쳤다. 송시열(宋時烈)은 『농가집성』의 서문에서 신속을 ‘권세의 자리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으로 표현하였다. 이후 신속은 중앙 정계에 복귀하지 못했고, 여러 곳의 지방관을 역임하는 데 그쳤다. 그래도 그는 지방 수령이라는 직분에 충실하였다. 수령의 주요 덕목인 권농(勸農)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는 농업 서적의 편찬으로 이어졌다.

신속이 『농가집성』 200질을 간행하여 효종에게 올린 시기는 1655년(효종 6) 공주목사로 재직할 때였다. 이 당시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로, 다방면으로 전후 복구 작업이 행해지고 있었다. 당시 『효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임진년 이후로 몇 차례 전란을 겪은 데다 기근이 덮치고 전염병까지 뒤따른 나머지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각종 문서들이 엉망이 되버린’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농가집성』의 편찬은 전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한 방편이 되었다. 한편, 1660년(현종 1) 서원현감이었던 신속은 『구황촬요』 1책을 올렸고, 현종은 인쇄하여 전국에 반포할 것을 명하였다.

3 『농가집성』의 구성과 내용

『농가집성』은 송시열의 서문(序文)에 이어 세종의 「권농교문(勸農敎文)」, 세종대의 『농사직설』, 주자(朱子)의 「권농문(勸農文)」, 강희맹(姜希孟)의 『금양잡록』, 중국의 『사시찬요(四時纂要)』의 내용을 간략하게 재정리한 『사시찬요초』 등으로 구성되었다. 끝에는 신속이 지은 발문(跋文)이 붙어 있다. 부록으로 『구황촬요』가 실려 있기도 하다.

세종의 「권농교문」은 1444년(세종 26) 농업 서적을 참고하여 적절한 시기에 농사를 짓도록 하라는 등의 내용을 하교한 것이다. 주자의 「권농문」은 그의 문집에서 세 편의 권농문을 발췌한 것으로, 송시열의 제안에 따라 『농가집성』에 수록되었다.

신속은 기존 농업 서적을 그대로 옮기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시대적 변화에 따라 증보하고 개수하였다. 우선,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대에 정초(鄭招), 변효문(卞孝文)이 우리나라의 풍토에 알맞은 농법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농사직설』의 내용 중 『농가집성』에서 증보된 것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조도앙기(早稻秧基)’라는 항목을 추가로 두어 올벼[早稻,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의 이앙을 장려하였으며, ‘화누법(火耨法)’의 조항에서는 잡초와 병충해의 제거를 위해 논에 불을 지르는 방법을 소개했다. 또한 『농사직설』에서는 지력(地力)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녹비(綠肥)로 갈아엎으면 좋다고 했는데, 『농가집성』에서는 녹비가 가장 좋지만 팥, 참깨를 쓰는 것도 효과가 괜찮다고 하였다. 이밖에 변두(藊豆, 콩과에 속하는 작물)와 같은 새로운 작물이 기술되거나 새로운 퇴비 제조법도 증보되었고, 보릿단의 건조와 통풍이 잘되도록 하는 시설이 고안되었으며, 목화재배법도 추가되었다.

『금양잡록』은 강희맹이 말년에 금양(衿陽, 지금의 경기도 시흥·광명 일대)에서 농사를 지으며 그의 체험과 금양 지역 노농(老農)들과의 대화 내용을 수록한 농서이다. 이 책 역시 『농가집성』에 수록되며 일부 수정되었지만, 『농사직설』처럼 여러 부분에서 증보되지는 않았다. 일찍 파종하는 품종을 장려하는 정도이다. 이밖에 콩의 한 품종인 흑태(黑太)가 『금양잡록』에서는 ‘껍질이 누렇고 열매는 검다.’고 설명된 반면, 『농가집성』에는 ‘껍질이 붉고 열매가 검다.’고 기술되기도 했다.

『사시찬요초』는 중국 당의 한악(韓鄂)이 쓴 월령식 농서 『사시찬요』 중에서 조선의 농업 실정에 맞는 것을 초록하였다. 월령식 농서란 농사일을 월별로 기록한 농서를 이르는데, 『사시찬요』 외에 여러 농서도 참고되었다. 『사시찬요초』는 강희맹이 저술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편찬자는 곳곳에 한글로 토를 달거나 당시의 우리 농법을 속방(俗方)이라는 이름으로 부기(附記)하였다. 책의 내용은 각종 작물의 재배법, 양잠·양봉·식품가공, 식수(植樹)와 꺾꽂이법에 의한 번식 등이 수록되어 있다. 더불어 계절에 따라 술이나 장(醬)을 담그고, 게장 만들고, 김장 하는[沉汁葅] 등의 방법도 실려 있다. 『농가집성』에서는 곡류보다는 채소류, 무명[木棉], 삼[麻] 등의 상업적 작물이 더 부각되어 있다.

부록으로 구성된 『구황촬요』는 일부 판본에만 수록되어 있다. ‘구황’은 흉년에 사람들의 굶주림을 도와준다는 의미이고, ‘촬요’는 요점을 간추렸다는 뜻이다. 『구황촬요』는 경상·전라 지역에 기근이 극심하던 1554년(명종 9)에 진휼청(賑恤廳)에서 한글로 흉년 대비 방법을 담아 간행·반포한 서적이다. 『농가집성』에는 『구황촬요』에 신속이 지은 『구황보유방(救荒補遺方)』도 합편되어 있다. 『구황보유방』은 신속이 발문을 쓴 시기가 1660년(현종 1)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농가집성』 편찬 5년 전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신속은 『구황보유방』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대용식량이 될 수 있는 식품을 소개하였다.

4 『농가집성』의 사료적 가치

『농가집성』은 기존의 여러 농업 서적을 한 책에 모아 편찬한 것이다. 그리하여 체계적이고 정연한 구성을 갖지 못했다는 평도 있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기존 농서가 많이 소실되었던 상황에서 신속이 기존 농서의 증보 합편과 보급에 노력했던 점은 매우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조선 전기의 농업 서적을 토대로 하면서도 전란 이후의 실정에 맞는 농법을 보충하였기 때문에 17세기의 농법 변화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농사직설』과 『금양잡록』이 곡식류에 중점을 둔 것과 대조적으로 원예작물, 특용작물, 양잠, 나무 심기 등에 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였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상업적 농법의 확산을 장려하였던 것이다. 또한 노동력 부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이앙법의 적극 보급을 강조하였다.

『농가집성』은 전국으로 보급되었고, 필요에 따라 증보·간행되었다. 어떤 판본은 『산림경제(山林經濟)』가 일부 필사되어 있는데, 한자와 한글로 당시 생활도구와 농기구 등이 기록되어 있다. 『농가집성』은 조선시대 농업기술의 변화, 당시 농가의 실태 등을 알 수 있는 사료로, 농업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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