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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東文選]

우리나라의 역대 시문을 모으다

1478년(성종 9)

동문선 대표 이미지

동문선

e뮤지엄(국립중앙박물관)

1 개요

『동문선』은 1478년(성종 9)에 서거정(徐居正), 노사신(盧思愼)을 비롯한 23인의 관료가 우리나라의 역대 시문(詩文)을 모아 만든 책이다. 모두 133권 45책으로, 550여 명의 작품 4,500여 편이 수록되었다. 약 220명은 한 편의 글을, 3백여 명은 두 편 이상의 글을 수록했다. 대부분은 문인의 글이지만, 29명의 승려와 76명의 무명씨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도교나 민간신앙적 색채를 띠는 글도 있다. 또한 『동문선』이 조선 전기인 성종대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고려시대 작가의 작품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2 『동문선』의 편찬 배경

조선 성종대는 왕조의 제도와 문물이 완성되었던 시기이다. 또한 문치(文治)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동문선』을 비롯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각종 문헌이 편찬되었다.

『동문선』의 편찬자들은 중국과 다른 우리 문학의 선집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중 서거정은 고려 말기 최해(崔瀣)의 『동인지문(東人之文)』이 소략하다는 점을 『동문선』의 편찬 이유로 들었다. 개인이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 거질의 시문선집 편찬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서거정 등은 우리나라[東]의 ‘문선’을 만들기 위해 중국의 『문선(文選)』을 참고하였다. 『문선』은 양(梁)의 소통(蕭統, 昭明太子)이 진(秦) 이후부터 당대까지의 대표 문인 127명의 시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3 『동문선』의 구성과 내용

『동문선』은 총 133권에 1,770제(2,028수)의 시(詩)와 2,534편의 문(文)이 실려있다. 각 권은 총 55종의 문체로 구분하여 작품을 수록하였다. 문체 분류상으로는 『문선』의 39종보다 상세하다.

권1∼3은 사(辭)·부(賦)이다. 권4·5는 오언고시(五言古詩), 권6∼8은 칠언고시(七言古詩), 권9·10은 오언율시(五言律詩), 권11은 오언배율(五言排律), 권12∼17은 칠언율시(七言律詩), 권18은 칠언배율(七言排律), 권19∼22는 오언절구(五言絶句)·칠언절구(七言絶句)·육언절구(六言絶句), 권23∼30은 조칙(詔勅)·교서(敎書)·제고(制誥)·책문(冊文)·비답(批答), 권31∼45는 표전(表箋),, 권46∼48은 계(啓)·장(狀), 권49∼51은 노포(露布)·격서(檄書)·잠(箴)·명(銘)·송(頌)·찬(贊), 권52∼56은 주의(奏議)·차자(箚子)·잡문, 권57∼63은 서독(書牘), 권64∼95는 기(記)와 서(序), 권96∼98은 설(說), 권99는 논(論), 권100·101은 전(傳), 권102·103은 발(跋), 권104는 치어(致語), 권105는 변(辯)·대(對)·지(志)·원(原), 권106은 첩(牒)·의(議), 권107은 잡저, 권108은 책제(策題)·상량문(上梁文), 권109∼113은 제문(祭文)·축문(祝文)·소문(疏文), 권114는 도량문(道場文)·재사(齋詞), 권115는 청사(靑詞), 권116∼121은 애사(哀詞)·뇌(誄)·행장(行狀)·비명(碑銘), 권122∼130은 묘지(墓誌) 등이다. 나머지 세 권은 목록(目錄)이다.

권1에 맨 처음 실린 글은 고려시대의 문장가 이인로(李仁老)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화답한 글[和歸去來辭]이다. 이인로는 무신집권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역임했지만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화귀거래사」는 그가 당대 문인들과 함께 ‘죽림고회(竹林高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시와 술을 즐겼던 삶이 반영되어 있다. 물론 그와 같이 「귀거래사」의 삶을 지향했던 문인들은 상당히 많았다. 고려, 조선의 문인들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화답하는 글을 많이 남기고 있다.

이인로의 글 다음으로는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등의 문장이 이어진다. 이들은 당대 문장가로 각각 개인문집을 남기고 있다. 특히, 이색의 『목은집(牧隱集)』에는 거의 평생동안 지은 시와 산문이 실려있는데, 시만 4천여 편에 달한다. 이 중 『동문선』에 꽤 많은 편수가 중복되어 실려 있다. 이숭인의 『도은집(陶隱集)』, 정몽주의 『포은집(圃隱集)』, 정도전의 『삼봉집(三峰集)』에서도 『동문선』에 수록된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동문선』에는 우리나라의 유명 문장가의 글이 실려있다. 이상의 인물 외에도 고구려의 을지문덕(乙支文德), 신라의 김인문(金仁問),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김부식(金富軾), 이규보(李奎報), 이제현(李齊賢), 조선 초기의 권근(權近), 하륜(河崙), 변계량(卞季良), 신숙주(申叔舟) 등의 글이 실려있다.

문체의 특징도 매우 다양하여 단순히 문학적인 관점으로만 볼 수는 없다. 특히, 문(文)의 종류는 다양하여, 조칙, 교서, 표전 등의 정치적 문서나 비문, 제문, 묘지와 같이 상제례에 관련된 문서도 많다.

4 『속동문선』, 『별본동문선』의 편찬

『동문선』은 성종대 이후 두 종이 더 편찬되었다. 첫 『동문선』이 나온 지 40년 만인 1518년(중종 13)에 신용개(申用漑), 남곤(南袞) 등이 펴냈다. 이 문헌은 『속동문선(續東文選)』이라고 불리며, 이후에는 성종대 편찬된 『동문선』을 『정편동문선(正編東文選)』으로 칭하였다.

중종대 『속동문선』은 1478년(성종 9) 이후 편찬 당시까지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속집이기는 하지만, 46명이 투입되어 총 87인의 작품 1,281편을 수록하였다. 성종대의 『동문선』에 비해 불교 계통의 작품은 대폭 줄었다. 한 연구에서는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 『속동문선』을 편찬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즉, 연산군에 의해 실추된 정치적·학문적 위상을 회복하고, 중종대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유학을 부흥시켜서 전대의 문화적 업적을 계승해나가고 있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1713년(숙종 39)에는 송상기(宋相琦) 등이 펴낸 『별본동문선(別本東文選)』이 있다. 이는 외교적 목적으로 편찬되었다. 청의 강희제(康熙帝)가 『고문연감(古文淵鑑)』을 비롯한 3백 여 권의 책을 보내주면서, 우리나라의 시문을 보여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전에도 몇 차례 청 사신이 우리나라의 시문이나 필법(筆法)에 관심을 보여 기존 『동문선』 혹은 김종직이 신라 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명현들의 시를 모아 만든 문헌인 『청구풍아(靑丘風雅)』에 나오는 내용을 등초(謄抄)하여 주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을 골라 글씨를 써서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1713년의 경우에는 조정에서 기존 『속동문선』을 보완하여 새롭게 편찬하였다. 이것이 『별본동문선』이다.

이때에는 이전 『동문선』 편찬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문 선발에 있어서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연구자도 있다. 작품의 우수성보다는 외교적으로 문제가 없거나 중국에 이미 널리 알려진 시문을 우선적으로 선정하였기 때문이다.

5 『동문선』의 사료적 가치

『동문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예 선집으로, 후대의 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문선』 수록 시문은 이후 시문 체재의 기준이 되었고, 옛일을 고증하는 자료로도 이용되었다. 지금은 삼국 이후 조선 전기까지의 문학을 연구하는 데 필수 자료이다.

『동문선』의 사료적 가치를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중국의 『문선』을 본따기는 했지만, 우리의 문학이 중국과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 하에 역대 문장가의 글을 문체별로 상세하게 구분하여 수록한 것이다. 훗날 성현(成俔)이 문장 선발방식을 두고 정밀하지 못하다고 평가하였고 이수광(李睟光)은 선발자의 기호에 따라 불공평하게 취사선택하였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였지만, 중앙 정부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대 문장가의 시문을 모아놓은 선집으로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

『동문선』 수록 시문은 지배층의 권위와 관련되는 것이 대다수다. 특히, 국왕의 명령이나 신하가 국왕에게 올리는 문서 종류가 많다. 이로 인해 『동문선』이 지배층의 봉건적 상하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그들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 하에 편찬된 전형적인 관각(官閣) 문학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한편, 도량문, 재사, 청사 등 불교, 도교적 색채가 있는 글이 포함되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는 조선 전기의 문풍을 반영한 것으로, 조선 후기 유교 일변도의 학문적 분위기와 차이가 있다.

『동문선』이 『속동문선』, 『별본동문선』으로 증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시대적 변화도 주목된다. 『동문선』은 서거정을 중심으로 한 관각 문인들이 편찬했지만, 『속동문선』은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들이 편찬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별본동문선』은 병자호란 이후 변화된 대외관계 속에서 청에 보낼 목적으로 새로이 『동문선』을 증보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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