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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儀軌]

국가의 주요 행사를 세밀히 담다

미상

의궤 대표 이미지

화성원행의궤도(부분)

국립중앙박물관

1 개요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거행했던 공식 의례와 각종 행사에 대한 기록이다. 왕실 혼례, 상례, 궁궐 건축, 악기 제작 등 국가의 사안이 있을 때마다 그 시행 절차와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편찬했다. 즉 행사 보고서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현재 약 6백여 종이 국내외의 여러 기관에 보존되어 있다. 의궤의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2 의궤, 국가의 주요 행사를 치밀하게 기록하다

의궤란, ‘예절 의(儀)’와 ‘법식 궤(軌)’를 합쳐 만든 용어이다. 즉, ‘의례에 임하는 법식’을 수록했다는 의미가 된다. 즉 의례 행사와 관련된 내용을 수록한 책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본래 의궤란 명칭은 중국이나 고려시대 이전에도 확인할 수는 있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서 제갈량(諸葛亮)은 국가의 재상이 되어 백성을 위무하고 예의의 전범[儀軌]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의궤를 책자가 아닌 단순 명사형으로 사용한 예이다. 또한 한국 고대사회에서도 불교경전 가운데 의궤라는 명칭을 지닌 책자가 확인된다. 이는 불교 법식을 위한 서적으로 현재 남아 있는 의궤와 성격이 다르다. 고려시대에도 기록이 존재하는데, ‘전교시(典校寺)에 있던 제향의궤(祭享儀軌)를 땅에 파묻었다.’는 기록이다. 즉, 고려 후기 경전과 축문을 전담하는 전교시에서 제향과 관련된 서적으로써 의궤를 만들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한편, 고려 명종대 송에서 유입된 『좌선의궤(坐禪儀軌)』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며, 팔만대장경에도 의궤라는 명칭을 지닌 경전이 나타난다. 즉, 고려시대까지 의궤라고 하면 불교 경전의 의례집을 지칭하는 경우가 다수였던 것이다.

국가 행사 보고서의 성격을 띤 의궤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처음 확인된다. 최초의 기록은 1395년(태조 4) 『경복궁조성의궤(景福宮造成儀軌)』였다. 경복궁 건설 과정, 비용, 인력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으리라 여겨진다. 이어 1408년(태종 8)에는 『태조강헌대왕상장의궤(太祖康獻大王喪葬儀軌)』가 확인되는데, 태조의 국상을 치른 이후 작성된 보고서였다. 이처럼 조선 초기부터 의궤가 편찬되었지만, 임진왜란으로 그 이전에 편찬된 의궤가 모두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는 것이 없다. 현존하는 의궤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년(선조 34) 간행된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懿仁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이며, 이후 국가의 주요한 행사마다 항상 의궤가 편찬되었다.

당시 의궤를 남겼던 이유는 해당 행사가 이후에 반복될 경우, 차질없이 행사를 치르기 위한 참고용 전범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의궤에는 단순히 해당 사업의 전말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력과 재력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어디서 재원을 가져왔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아주 작은 물품도 상세히 기록하였다. 따라서 의궤는 해당 사업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자료인 것이다.

3 의궤, 국내외 주요 소장처에 600여 종이 현존하다

조선왕조의 의궤는 현재 어떤 의궤가 얼마나 전해지는지 명확하지 않다. 국내에 소장된 것도 종류가 많아 정확히 파악되지 못했고, 해외로 유출된 것도 다수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의궤는 약 600여 종이 국내외에 남아 있다. 국내 의궤는 대부분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그 외에 국립중앙박물관과 고궁박물관에도 다수의 의궤가 소장되어 있는데, 거의 해외에 유출되었던 의궤가 국내로 반환되며 소장하게 된 것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의궤는 모두 533종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어 장서각에는 268종이 남아 있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89종, 국립고궁박물관에는 80종이 소장되어 있다. 즉 단순 합산하면 1,070종이 되지만, 실제로는 중복된 판종이 많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면 600여 종이 된다. 의궤는 동일한 행사에 대해 여러 번 필사하거나 인쇄하기도 했기 때문에 동일 판본이 여러 기관에 중복되어 소장된 경우가 있다.

의궤는 편찬된 이후 국왕을 위한 어람용과 각 기관에 비치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여러 질을 간행하였다. 어람용 의궤는 대부분 강화도 사고에 보관하였고, 분상용 의궤는 궐내 춘추관과 오대산,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등 4대 사고에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동일한 의궤가 다양한 기관에 분산되어 현재까지 전수될 수 있었다.

규장각에 가장 많은 의궤가 소장되어 있는 이유는 궐내와 오대산·정족산·태백산 등의 사고에 보관된 의궤가 대부분 규장각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규장각에 다수의 사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어 장서각에서 많은 의궤를 소장하고 있는 이유는 조선시대의 왕실도서관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람용 의궤나 구황실 비서감, 적상산 사고의 의궤가 주로 장서각에 보관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의궤는 대부분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가 약탈해 간 강화도 사고의 어람용 의궤를 반환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립고궁박물관은 일본 궁내청에서 소장하고 있던 의궤를 반환받은 것이다. 일본 궁내청은 한일합병 이후 조선의 도서를 참고하기 위해 다수를 일본으로 유출해갔는데, 2011년에 반환하였다. 이외에도 여러 기관과 해외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의궤들이 산재해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의궤의 현황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4 왕실의 의례와 행사, 토목공역, 서적편찬 등의 사업을 세밀히 담다

의궤는 분야에 따라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의궤는 왕실 의례와 관련된 내용이 많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국가 토목 사업이나 제기나 악기 등의 물건을 조성하고 수리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명이나 청의 사신을 접대한 이후에도 의궤를 작성하였고, 공신을 선정할 때에도 의궤를 통해 그 내용을 남겨두었다. 의궤는 바로 조선 국가에서 수행한 임시적 사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의 결과보고서였던 셈이다. 현존하는 의궤의 행사 내용을 왕실의 통과의례성 행사, 왕실의 특별 행사, 건축물 영건, 서적 편찬 사업, 의기 조성 사업 등의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통과의례성 행사를 치른 이후 편찬한 의궤이다. 통과의례란 일생을 살며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례를 말한다. 통과의례의 대상은 국왕과 왕비, 대비와 왕세자 등 왕실 핵심인사들이다. 책례(冊禮), 가례(嘉禮), 국장(國葬), 부묘(祔廟), 존숭(尊崇) 등 각 행사를 끝마친 이후에 의궤를 편찬하였다. 즉, 『책례도감의궤』, 『가례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부묘도감의궤』, 『존숭도감의궤』 등이다. 책례는 왕비나 왕세자로 책봉하는 행사이다. 가례는 국왕이나 왕세자의 혼례 행사이다. 국장은 국왕이나 대비, 왕비의 상례이다. 부묘는 국왕이나 대비가 죽은 이후 2년이 지나 신주를 종묘에 안치하는 행사이다. 존숭은 국왕이나 대비, 왕비에게 존호를 올리는 행사이다.

둘째, 왕실의 특별행사를 처리한 이후 편찬한 의궤이다. 여기에는 궁중 연회나 외국 사신 접대, 공신 선정, 친경이나 친잠 등의 기념비적인 행사 등이 포함되며, 행사를 마친 이후 의궤를 편찬하였다. 즉, 『진연의궤(進宴儀軌)』,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 『공신도감의궤(功臣都監儀軌)』, 『친경의궤(親耕儀軌)』,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등이 특별행사를 마치고 편찬한 의궤이다. 진연은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 행사이다. 영접이란 청이나 명의 사신이 당도했을 때 이들을 접대하는 행사이다. 친경은 왕이 직접 선농단에서 농사를 짓는 상징적 행사이다. 대사례란 국왕과 신하가 한자리에서 활을 쏘아 기념하는 행사이다.

셋째, 왕실 건축물을 영건한 이후 편찬한 의궤이다. 여기에는 태실 조성이나 궁궐의 영건, 능원묘의 조성, 종묘나 진전 등의 개수 등의 국가토목사업이 포함되며, 각 사업이 종결된 이후 의궤를 편찬하였다. 즉, 『태실수개의궤(胎室修改儀軌)』, 『영건도감의궤(營建都監儀軌)』,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 『종묘개수도감의궤(宗廟改修都監儀軌)』 등이 포함된다. 태실 조성은 왕실 주요 인사의 출산 이후 발생한 태반을 보관할 태실을 조성하는 것이다. 영건은 창덕궁이나 경복궁 등의 궁궐 건축물의 공역 사업이다. 산릉은 국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조성하는 것이다. 개수란 건축물의 수리이다.

넷째, 서적을 편찬하는 사업을 진행한 이후 편찬한 의궤이다. 여기에는 왕실 족보의 편찬이나 실록의 편찬, 『국조보감』의 편찬 등 각종 서적 편찬을 위한 국가 사업이 포함되며, 이들 사업이 종결된 이후 의궤를 편찬하였다. 즉, 『선원록교정청의궤(璿源錄校正廳儀軌)』, 『실록청의궤(實錄廳儀軌)』, 『국조보감감인청의궤(國朝寶鑑監印廳儀軌)』, 『천의소감찬수청의궤(闡義昭鑑纂修廳儀軌)』 등이 있다. 『선원록』은 왕실의 대표적인 족보로, 방대한 분량이 있기 때문에 이를 편찬하는 것은 매우 큰 공역에 해당하였다. 『실록』은 국왕이 사망한 이후 해당 왕대의 사실을 일자별로 기록한 것으로 이 역시 방대한 저술이었다. 『국조보감』은 역대 국왕의 행적 가운데 귀감이 될 것을 추려 뽑아서 만든 책으로 역시 방대한 공역을 필요로 하였다. 이처럼 국가에서 주도한 서적 편찬은 상당한 인력과 재원이 필요하였기에 사업이 종료된 이후 의궤를 편찬해 그 내역을 기록하였다.

다섯째, 의기 조성 사업이다. 의기란 왕실에서 사용하는 주요한 물건을 말하며, 이들 물건의 조성이나 수리와 관련된 사업 이후에 의궤를 편찬하였다. 여기에는 어진의 제작과 악기나 제기의 조성, 책보의 보수 등이 포함되며, 이들 사업이 종결된 이후 의궤를 편찬하였다. 즉, 『어진모사도감의궤(御眞摹寫都監儀軌)』, 『악기조성도감의궤(樂器造成都監儀軌)』, 『금보개조도감의궤(金寶改造都監儀軌)』 등이 있다. 어진은 국왕의 초상화이며, 이를 그리는데도 많은 재원이 소요되었다. 악기 조성은 종묘나 왕실 행사를 위해 연주할 다양한 악기를 제작하는 사업이다. 금보 개조는 왕실의 존엄을 상징하는 의물인 책과 보를 수리하는 사업이다.

이처럼 의궤는 국가에서 수행하는 다양하고도 핵심적인 사업을 수행하고, 그 전말을 기록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따라서 그 종류도 왕실의 행사나 국가의 토목 공역, 각종 주요 시설물의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펼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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