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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유취[醫方類聚]

동아시아 의학 이론의 총 집성

1445년(세종 27) ~ 1477년(성종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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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유취

국가문화유산포털(문화재청)

1 개요

1445년(세종 27)에 집현전 학자들은 3년에 걸친 편찬 작업 끝에 365권의 『의방유취(醫方類聚)』를 완성하였다. 이는 당시까지 전해 오던 여러 의서를 모아 의학 이론을 정리, 수집하여 만든 문헌이다. 간행 단계에서 266권으로 축소되었지만 약 2백 종에 가까운 의서(醫書)와 의학 관련 서적이 인용되었고 중국의 당, 송, 원, 명대 초기까지의 의서와 우리나라 고려, 조선 초기까지의 의학의 성과를 담고 있다. 소략하지만 인도(천축국)의 수련법까지 소개되어 있다.

현재 국내에 전해지는 판본은 한독의약박물관(충청북도 음성)에 유일하게 1책(권201)만 있다. 한편, 일본 궁내청(宮內廳) 서릉부(書陵部)에는 1477(성종 8)년에 간행된 초간본 30질 중 한 질이 남아있다. 이 판본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총 266권 264책 중에서 일부가 산실되어 252권이 남아있다.

2 편찬과 간행까지 30여 년이 걸리다

세종대에 편찬된 의서 중 가장 중요한 두 개는 1433년(세종 15)에 간행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약 10년 후에 편찬이 시작된 『의방유취』를 들 수 있다. 『향약집성방』이 우리 향약의 약성을 중국산과 비교·연구하고 분포·생산 실태를 정리해서 향약의 쓰임을 확대시키려 했던 문헌이라면, 『의방유취』는 동아시아 중요 의서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으로 의학 이론의 총집성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의서 모두 세종의 명으로 집현전과 전의감의 관리들이 편찬하였다. 『의방유취』가 『향약집성방』(85권)에 비해 365권의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참여 인원의 수가 많았다.

『의방유취』의 편찬은 크게 자료 수집, 편집, 감수 등의 과정을 거쳤다. 우선, 집현전 부교리 김예몽(金禮蒙)·저작랑(著作郞) 유성원(柳誠源)·사직(司直) 민보화(閔普和) 등에게 명하여 의학 처방이 수록된 서적들을 수집해서 종류별로 나누고 유형별로 모아 한 책을 만들게 했다. 이어 집현전 직제학 김문(金汶)·신석조(辛碩祖), 부교리 이예(李芮), 승문원 교리 김수온(金守溫)에게 명하여 의관(醫官) 전순의(全循義)·최윤(崔閏)·김유지(金有智) 등과 함께 편집하게 했다. 그리고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도승지 이사철(李思哲)·우부승지 이사순(李師純)·첨지중추원사 노중례(盧仲禮)가 감수하였다. 그러나 책을 곧바로 간행하지는 못했다.

세조대에 양성지(梁誠之), 한계미(韓繼美), 최영린(崔永潾) 등이 교정 작업을 계속하였는데, 간혹 교정에 착오가 있어 관련자들이 처벌되기도 했다. 결국 성종대에 이르러서야 총 266권 264책으로 축소 정리되었다. 1477년(성종 8)에 한계희(韓繼禧), 임원준(任元濬) 등이 30질을 인쇄 출판하여, 내의원(內醫院)·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활인서(活人署) 등에 보급하였다.

3 『의방유취』의 구성과 내용

『의방유취』는 조선 세종대까지의 중국과 우리나라의 최신 의학 이론을 집대성한 문헌이다. 한의학의 기초이론과 응급, 임상을 91개 분야로 나누어 정리하였는데, 각 분야별로 병론(病論)을 서술한 다음에 의방(醫方, 의술)을 연대순으로 나열하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주석을 달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전체 구성은 총론이 3권이고, 각론이 263권이다. 총론에서는 한의 진찰법, 한의 처방법, 약 먹는 법, 한의 치료 원칙, 의사가 지녀야 할 품성, 개별 한약들의 성미와 효능, 법제법을 설명하고 각론에서는 오장문(五臟門)을 비롯하여 내과·외과 질병, 급성 전염병, 안과·이비인후과·구강과·피부과·부인과·소아과 질병 등을 90여 개의 질병문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각론은 오장문(五臟門) 9권, 제풍문(諸風門) 12권, 제한문(諸寒門)·제서문(諸暑門)·제습문(諸濕門) 2권, 상한문(傷寒門) 37권, 안문(眼門) 7권, 치문(齒門) 2권, 인후문(咽喉門) 4권, 구설문(口舌門) 1권, 이문(耳門) 1권, 비문(鼻門) 1권, 두면문(頭面門) 3권, 모발문(毛髮門)·신체문(身體門) 1권, 사지문(四肢門) 1권, 혈병문(血病門) 2권, 제기문(諸氣門) 3권, 제산문(諸疝門), 제비문(諸痹門) 2권, 심복통문(心腹痛門)·흉협통문(胸脇痛門) 3권, 요각문(腰脚門) 2권, 각기문(脚氣門) 2권, 비위문(脾胃門) 4권, 삼초문(三焦門)·반위문(反胃門) 1권, 구토문(嘔吐門) 2권, 격열문(膈噎門) 1권, 곽란문(霍亂門) 2권, 현운문(眩暈門)·숙체문(宿滯門) 1권, 적취문(積聚門)·해역문(咳逆門) 4권, 해수문(咳嗽門) 7권, 성음문(聲音門) 1권, 제학문(諸瘧門) 2권, 소갈문(消渴門) 3권, 수종문(水腫門) 3권, 창만문(脹滿門) 2권, 황달문(黃疸門) 1권, 제림문(諸淋門), 유정몽설문(遺精夢泄門) 1권, 백탁문(白濁門) 1권, 대소변문(大小便門) 2권, 이질문(痢疾門) 5권, 설사문(泄瀉門) 2권, 제허문(諸虛門) 11권, 노채문(勞瘵門) 2권, 고랭문(痼冷門)·적열문(積熱門) 1권, 화문(火門: 虛煩·驚悸·怔忡) 1권, 건망문(健忘門)·제한문(諸汗門) 1권, 전간문(癲癇門) 1권, 중악문(中惡門) 1권, 해독문(解毒門) 3권, 주병문(酒病門)·고독문(蠱毒門) 1권, 제충문(諸蟲門) 1권, 충상문(蟲傷門) 1권, 수상문(獸傷門)·은진문(癮疹門) 1권, 제취문(諸臭門) 1권, 옹저문(癰疽門) 9권, 정창문(疔瘡門)·단독문(丹毒門) 1권, 나력문(瘰癧門) 1권, 제루문(諸瘻門)·영류문(癭瘤門) 1권, 치루문(痔漏門) 3권, 금창문(金瘡門) 1권, 절상문(折傷門) 3권, 제창문(諸瘡門) 5권, 고약문(膏藥門)·화상문(火傷門)·칠창문(漆瘡門) 1권, 구급문(救急門) 1권, 잡병문(雜病門) 2권, 제탕문(諸湯門)·제향문(諸香門) 1권, 양성문(養性門) 7권, 부인문(婦人門) 33권, 소아문(小兒門) 28권으로 되어 있다.

이상에서 몇 가지 주목되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체적으로 5만여 종에 달하는 치료 처방이 담겨져 있다고 하는데, 가장 비중이 큰 질병은 중풍과 상한(傷寒, 감기)이다. 이 중에서 상한의 경우는 당대 자주 발생하던 전염병과 열병 등의 예방을 염두에 둔 것으로 기존 연구에서 파악하였다. 또한 지금의 예방의학과 비슷한 개념의 양생(養生)은 양성문(총 7권)에서 많이 거론되었는데, 손바닥을 비벼 발열시킨 다음 양쪽 눈에 대주는 눈병 예방법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훗날 퇴계 이황(李滉)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도 서술되어 있다. 이외에 각종 수련법이 설명과 그림으로 함께 소개되었다.

음식의 중요성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식치(食治)로서 섭양(攝養)을 잘하면 굳이 복약(服藥)할 필요가 없다.”, “질병을 지료할 때도 식이치료를 먼저 행하고 나서 약을 사용하라.”는 등 음식을 통한 질방 예방의 중요성이 노인과 소아, 임신 전후의 여성들에게 특히 강조되었다. 그리고 금기해야 하는 사항도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술에 취해 자는 동안 바람을 맞는 것, 취해서 길에서 자는 것,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 소변이나 대변을 억지로 참는 것 등 많은 금기 사항이 있다.

4 『의방유취』의 의의와 한계

『의방유취』는 세종대에 처음 완성하였으나, 이후 세조대의 교정 작업과 성종대의 간행 작업까지 포괄하면 약 30여 년 동안 편찬·간행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 기간 동안 2백 종에 가까운 문헌을 재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의방유취』에 담긴 문헌들 중 지금 남아있지 않은 것도 상당히 많다. 중국 문헌이 중국에서 없어져서 『의방유취』를 참고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의방유취』에서 고려 이전의 의학서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한다. 일례로 고려 중기 최종준(崔宗峻)의 『신집어의촬요방(新集御醫撮要方)』과 같은 문헌은 『의방유취』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어느 정도 복원이 가능하다.

다만 내용이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각 의학 이론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까닭에 『의방유취』의 간행을 전후하여 처방을 단순화하거나 언해한 문헌들이 만들어졌다. 『구급방(救急方)』(언해본), 『창진집(瘡疹集)』,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구급이해방(救急易解方)』, 『속벽온방(續辟瘟方)』,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 『의문정요(醫門精要)』 『태산집요(胎産集要)』 등 문헌의 수도 많다. 이 중에서 『구급방』과 같은 의서는 간행 사실만 전해지고 있고, 중국 절강성 도서관에 판본이 남아있는 『창진집』은 『의방유취』의 진두(疹痘, 천연두와 홍역을 포함하는 발진성 질병) 부분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한편, 중종은 『의방유취』를 열람하다가 염병 물리치는 방법[辟瘟方]을 초록(抄錄)하여 책으로 만들어 반포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간이벽온방』이다.

조선은 중국이 중심에 있던 동아시아 의학에 크게 의존했던 만큼 『의방유취』의 편찬은 필수적인 과업이었다. 그러나 『의방유취』가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존 의학이론과 처방을 집적한 작업인 만큼, 편찬자 개인의 독창적인 견해가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후 의학이 발달하면서 변화하는 환경에 부응하는 새로운 의술이 필요했다. 조선의 독자적인 힘으로 의학서적을 완성하는 발전적인 단계가 이루어져야 했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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