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 한국사
  • Ⅵ 조선 후기 사회 변화와 민중의 성장
  • ③ 민중의 성장과 항쟁
  • 마. 농민 봉기 -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다

간간히 발생하던 농민 봉기는 철종 때에 이르러 전국 각지로 확대되었다. 1862년 진주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는 그 시발점이 된 사건이었다. 경상 우병사의 수탈과 횡포에 맞서 몰락 양반 1)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농민들이 대거 가담하면서 약 1 주일에 걸쳐 수만 명의 농민이 참여하는 격렬한 항쟁이 일어났다. 농민들은 관아를 습격하여 병사를 잡아 가두고 아전2)의 집을 불태운 다음, 관리의 횡포를 규탄하고 세금을 내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같은 해 경상도 개령에서 수천 명이 가담한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며, 이듬해 제주도에서도 수만 명이 가담한 농민 봉기가 일어나는 등 진주 농민 봉기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 봉기가 잇달았다. 조정에서도 농민들의 민심을 달래지 않으면 더 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위험을 깨달았다.

그 결과, 삼정을 바로잡기 위한 관청을 설치하고, 탐관오리를 적발하기 위한 암행어사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책은 나오지 않았으며, 삼정의 개혁도 권력층의 반발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농민들의 불만은 계속되었다.

탐구활동

신분증에 대하여 알아보자.

ㆍ조선 시대의 호패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것은 무엇인가 알아보자.
ㆍ대한 민국에서 사용하는 신분증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ㆍ각 나라에는 어떤 신분증이 있는지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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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농민 봉기의 상황
조선 말기 농민 봉기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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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국사 1708 대동법 실시 1712 백두산에 정계비 세움 1725 영조, 탕평책 실시 1750 균역법 실시 1776 정조 즉위, 규장각 설치 1796 수원 화성 완성 1811 홍경래의 난 1832 서양 배가 처음 통상 요구 1860 최제우, 동학 창시 세계사 1688 영국, 명예 혁명 1729 청, 아편 판매 금지 1765 제임스 와트, 증기 기관 완성 1776 미국 독립 1789 프랑스 대혁명 1840 아편 전쟁 1854 일본, 미국에 개항 1857 인도, 세포이 항쟁 1861 미국, 남북 전쟁(~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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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요약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의 정치, 사회는 변하였다. 붕당들 사이의 대립이 심해지고, 하나의 붕당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정치적 폐단도 커져 갔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에는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인 실학이 일어났다. 또한, 민간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력이 중시되면서 신분 제도가 흔들린 한편, 서민적 사상과 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도 혼란한 사회와 어려운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힘썼다. 정치·군사·조세 제도를 바꾸어 나라를 새롭게 하고,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붕당들 사이의 대립을 줄이기 위한 탕평책을 실시하기도 하였으나, 개혁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오히려 왕실 외척이 권력을 장악한 세도 정치가 진행되어, 정치 기강이 흔들리고 부정 부패가 크게 퍼졌다. 그 결과 정치가 더욱 혼란해지고, 농민에 대한 착취와 폭정이 심해졌다. 이에 맞서 농민들의 저항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어 국가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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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Following the two major wars of the Japanese and the Manchu invasion(Byeongja Horan), the politics and society of Joseon underwent significant changes. Factional strife deepened and as one single faction began to monopolize power, political abuses increased. This resulted in the emergence of Silhak, the School of Practical Learning, which advocated social reforms during the latter period of Joseon. Also, with the development of civilian commerce, greater importance was placed on economic power, which led to the crumbling of the social status system. The doctrines and cultures centered on the general populace also emerged. The government, for its part, exerted efforts to reinvigorate the society and the economy that had undergone many hardships. The government also strived to stabilize the livelihood of the peasants by revamping the political, military and tax systems. The government engaged in the‘ policy of impartiality’, known as tangpyeongchaek, to resolve confrontations among the differing factions, but to no avail. Rather, Sedo politics, a unique, abnormal style of politics, where the power was manipulated by members of the queen’s family, unfolded during this period, which led to the tumbling of the political hierarchy and widespread corruption. This resulted in further political disturbances, and the exploitation and tyrannic acts against the peasants worsened. The peasant rose in defiance and the state experienced further chaos nation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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