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
  • 제4장 결혼에 비친 근대
  • 2. 자유연애·자유결혼, 그 이상과 현실
  • 혼인의 난맥상
  • 정사와 도피 등 일탈 행위
신영숙

1920년대 여성 해방의 가장 확실한 지표로 제시된 자유연애와 결혼은 또한 과도기적 혼란 속에 빚어진 여러 폐해로 당시의 사기 결혼, 이중 혼인, 도피 행각 등의 사회 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음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동시에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적 권력 관계 안에서 여성의 피해는 일방적으로 가중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예컨대 초기 윤심덕의 정사는 차치하고라도 이혼을 하지 않은 채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동거하거나 도피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하였다. 구여성 부인과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은 채 사랑의 도피를 한 이화여전 성악과 교수 안기영과 그 제자 김현순의 사례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우선 “모든 조소와 비방을 뒤에 남기고 간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괴롭고 고달프랴. 영원히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는지. 현실은 저들을 용서치 않으매 저들은 달고도 쓴 꿈길에 들어 헤맨다.”303)자운영, 「눈머른 사랑이 시키는 직(直) 사제 간(師弟間)의 출분(出奔)-성악가 안기영 씨와 그의 수제자인 김현순 양의 출분-」, 『신여성』 7권 5호, 1933년 5월, 66∼71쪽.라는 동정을 받기도 하였다. “오늘날 사회에 있어서는 별로 이상한 현상도 아무것도 아니다. 현대 신문의 구석구석에서 1년에 몇 번이고 얻어들을 수 있는 것은 부르주아 청년 남녀 사이에 얽어지는 연애 비극 그리고 그의 애화! ……사제의 관계를 가진 두 사이.”304)위와 같음.라는 것이 사회의 주목을 끄는 문제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부인의 유무로 자유연애가 비판 받는 것은 전근대적이다. ……인간 생활에 있어 연애는 절대적인 것이냐? 일부일 뿐이다. ……외국(중국)으로 탈주한 것은 조선에서 일어날 비난과 공박을 두려워한 탓이다. 봉건적 잔재의 조건, 봉건적 요소의 모순과 해결을 위하여 그들은 용감히 싸워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 않은 두 사람의 탈출은 결국 두 사람의 이번 연애가 순전히 오락·향락이라는 데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생활에 있어 연애는 절대적이며, 전부였다는 것이 표현되어 있다. ……즉 현대 사회의 퇴폐의 일 현상으로 새겨진 것뿐이다.”이라는 비판도 면치 못하였다.305)이종화, 「안기영·김현순 사건과 현대 연애 사조의 비판」, 『신여성』 7권 6호, 1933년 6월, 10∼13쪽. 이 사례는 분명 당시의 연애와 결혼의 난맥상을 잘 보여 준다. 자유연애의 관념과 결혼의 낭만에 대해 일정하게 지지하면서도 당시의 사회적 도덕과 윤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지식인 남성의 ‘남성 중심적인 의식’을 잘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밖에도 친구의 남편과 동거하기 위해 지방으로 도망가 사는 예도 없지 않았다. 그 같은 자유연애가 과연 그들을 행복하게 하였을까 하는 문제 제기를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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