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1장 고대와 고려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 2. 고려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 사학
  • 공부하는 내용과 모습
이병희

사학에서는 구경(九經)과 삼사(三史)를 중심으로 공부하였다. 교육 성 과가 국자감을 능가할 정도였기 때문에 설립 초기에 학생이 많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하과에서 종종 시간을 정해 두고 그 안에 시를 짓는 놀이인 각촉부시(刻燭賦詩)를 한 예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시부를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 공부였을 것이다.

사학에서 공부하는 태도와 자세는 엄격하였다. 최원중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9재의 교도가 되었는데, 매질하는 법이 엄격하여 털끝만큼도 용서함이 없었다. 생도들은 이를 원망하여 진시황(秦始皇)이라고 불렀는데, 그가 가혹하게 벌을 내리는 것을 일러 말한 것이었다.55)이제현, 『역옹패설』 전집2. 문헌공도에 속한 학생들은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기도 하였다. 교도가 가혹할 때는 상당한 매질을 당하는 것도 감수하여야 하였다. 생활에서 문제가 있거나 정해진 공부를 철저히 이행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매질이 상당하였을 것이다. 최원중은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전체적으로 스파르타식 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매년 여름철에는 절을 빌려 하과(夏課)를 하였으며, 도중(徒衆)에서 급제하여 학문이 우수하고 재능이 많으나 아직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자를 택하여 교도로 삼아 구경과 삼사를 학습하였다. 간혹 선배가 찾아오면 촛불에 금을 그어 한정된 시간에 시를 짓게 하고, 그 차례대로 방(榜)을 내어 이름을 불러 들어오도록 하여 술자리를 베풀었다. 동자(童子)와 관자(冠子)가 좌우로 벌려 있으며 술상을 받드는데 진퇴에 예의가 있고 장유(長幼)의 질서가 있었다. 이와 같이 하면서 해가 지도록 시를 읊어 주고받으니 보는 사람마다 아름답게 여기고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56)『고려사』 권74, 지28, 선거2, 학교 사학.

여름철에는 하과라 하여 승방(僧房)을 빌려 공부하였다. 도중에서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아직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자를 교도로 택하여 경사를 학습하였다. 과거에 합격한 직후이기에 과거 합격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훌륭한 안내자의 구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학의 학생들은 때로 산사나 계곡에서 놀면서 시를 지어 주고받으면서 공부하는 일도 있었다. 또 어른과 아이가 순서를 지키며 예의 있게 생활하였음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사학에 속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이나 공부 후 돌아오는 모습을 많은 이가 보고서 경탄하였다고 한다.

여름철마다 산림에 모여서 공부하다가 가을이 되면 헤어졌는데 용흥사(龍興寺)와 귀법사 두 절에 학생들이 많이 왔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사학의 학생들은 학업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존에 공부하던 곳을 벗어나 사찰에 가서 공부하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본래의 학교로 돌아와 공부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