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2권 배움과 가르침의 끝없는 열정
  • 제2장 조선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 2. 향교
  • 향교의 교육 활동
  • 교육 방법과 평가
이승준

교생들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에 기숙하면서 강의실인 명륜당에 모여 교관에게서 강의를 받거나 토론을 하며 공부하였다. 향교의 주요 교과인 『소학』, 사서오경 등을 공부하였는데, 교과 학습은 연령별로 단계가 나누어져 있지 않았다. 향교에서는 철저하게 개별 학습을 하였기 때문에 교생 개인의 능력에 따라 학습의 순서와 진도가 달랐다. 단지 경전을 공부하는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 명종 때 『경외학교절목(京外學校節目)』을 보면 “먼저 『소학』을 깨우쳐 그 뜻을 잘 알고 이해한 뒤에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공부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학령』에는 사서오경을 공부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대체적으로 정하여 놓고 있었다. 사서오경을 모두 공부하는 데는 대개 3년 7개월 정도가 필요하였다.

교생들은 스승에게 배운 내용을 다시 혼자 읽으면서 내용을 암기하고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독서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도 하고 나누어 읽기도 하는데, 책을 읽을 때마다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을 그 이름 아래 기록하였다. 교생은 독서한 것을 스승 앞에서 읽고 뜻을 풀이하며 스승이 묻는 말에 대답하였다. 스승과 경전의 내용에 대하여 묻고 답하는 것을 ‘고강(考講)’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공부한 내용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글의 이치를 깨닫고 응용할 수 있게 하는 학습 방법이었다.

향교에서는 경학 교육을 중심으로 하면서 시문을 짓는 제술 교육도 함께 하였다. 특히, 과거 과목이 제술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교생들도 제술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술은 매달 세 차례 시나 문장, 대책 등을 짓는 시험을 치렀다.

교생은 하루의 학습을 마치면 매일 평가를 받았는데, 그것을 ‘일강’이라고 하였다. 일강에 통과한 교생의 점수는 교관이 기록하여 수령에게 보고하고 과거에 참조하였다. 일강을 평가할 때는 구두가 정확한지, 경전의 큰 뜻을 잘 알고 있는지, 뜻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하여 ‘대통, 통, 약통, 조통’의 네 단계로 점수를 주었다. 고강의 과목은 교생의 입학 연도에 따라 달라서 입학 첫해에는 『소학』, 『대학』, 『시전(詩傳)』, 2년째에는 『논어』, 『서전(書傳)』, 『가례(家禮)』, 3년째에는 『맹자』, 『주역』, 『심경(心經)』, 4년째에는 『중용』, 『예기』, 『근사록(近思錄)』으로 시험을 치렀다. 이것은 향교에서 일정한 교육 과정에 따라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일강과 월강의 평가 결과는 월말에 수령을 통하여 감사에게 보고되었고, 성적이 나쁘면 회초리를 맞거나 심하면 향교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성적이 우수하면 잡역을 감면 받기도 하였으며, 관찰사의 추천으로 성균관이나 사학에 진학하는 특전을 얻기도 하였다. 그리고 교생의 학업 성적은 교관의 근무를 평정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일강과 월례 제술 외에도 교생들의 학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하여 매년 실시하는 ‘도회(都會)’가 있었다. 도회는 교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각 도의 도회소(都會所)에 교생들을 모아 재능을 겨루게 하던 제도였다. 도회는 고려시대에도 실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조선에서는 1429년(세종 11)부터 공식적인 행사로 제도화하였다.122)『경국대전』 권3, 예전, 장권.

도마다 1∼2개의 도회소를 설치하여 도회소마다 15∼80명까지의 유생을 선발하여 교육하고 성적을 평가하게 하였다. 도마다 설치한 도회소의 수와 도회에 참석할 수 있는 유생의 수는 지역과 인구에 따라 다르게 정하였다.

<표> 각 도의 도회소와 참석 인원
구분 경상
우도
경상
좌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길도 합계
도회소(곳) 2 2 2 2 2 1 1 1 13
인원(명) 40×2 40×2 30×2 30×2 20×2 20 20 15 375

도회는 매년 봄가을에 두 번 실시하였는데, 봄에는 3월 15일부터 4월 말까지, 가을에는 8월 15일부터 9월 말까지 하였다. 도회가 실시되는 동안에는 주로 경서를 읽고 시험하였다. 1433년(세종 15)부터는 도회에서 성적이 우수한 교생을 선발하여 생원시의 회시에 직접 응시할 수 있는 특전을 주었다. 그리고 이때에는 도회가 실시되는 50일 동안 오로지 경서만 읽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고 3일 중 이틀은 경서를 강독하고, 하루는 제술을 익히게 하였다. 이런 도회 제도는 그 뒤 폐지와 부활을 거듭하다가 성종 때 『경국대전』에는 도회를 6월에 한 번만 실시하고, 생원시의 회시에 직접 응시할 수 있는 성적 우수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는 5명씩, 나머지 지역 은 3명씩 선발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교생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학 없이 쉬지 않고 공부하였다. 하지만 향교의 재정이 향교전과 향교 노비에게서 충당되었기 때문에 흉년이 들었을 때는 학업을 일시 중단하기도 하였다. 교생들의 학습 부담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양반들이 향교 입학을 기피하고, 군역을 회피하기 위한 양인들의 입학이 늘면서 점차 향교의 교육 기능은 약화되었고, 향교에서 공부하는 교생도 크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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