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2장 시전 상인의 조직과 도성 문화
  • 4. 시전의 조직과 영업 구조
  • 도중의 재정
고동환

도중은 자체 재정을 마련하여 이를 기초로 각종 국역을 부담하거나 도 중 내부의 상호 부조(相互扶助), 치성, 기타 다양한 행사 비용을 충당하였다. 시전 도중의 수입은 도원들이 새로 도중에 가입할 때나 승진할 때 납부하는 예전과 벌금, 방세, 분세 그리고 도원에게 도중의 자금을 대여하여 받는 이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도원들이 영업 대가로 도중에 납부하는 방세와 분세가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예전과 벌금은 앞서 보았듯이 시전에 따라 차등이 있었고, 그 수입 규모는 일정하지 않았다.

방세는 방에 소속된 시전 상인 개개인에게 징수한 일종의 전방 사용료였다. 시전 상인이 영업하는 시전 행랑은 크게 간(間)으로 구분되었고, 각 간은 다시 열 개 내외의 방으로 나뉘었는데, 개별 시전 상인은 이들 방에 소속되어 영업하였다. 방세는 봄가을 두 번에 나누어 거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일부 시전에서는 매달 월세 형태로 걷는 경우도 있었다. 방세는 포전에서는 6개월에 2냥 5전, 면주전에서는 6개월에 2∼2냥 5전을 징수하였다. 19세기 후반 상황을 기록한 『면주전방세책(綿紬廛房稅冊)』에 따르면 면주전의 수주계(水紬契) 일소(一所)의 6개월 방세 수입 규모는 70냥에서 100냥 내외였다. 이처럼 방세 수입이 해마다 다른 것은 방의 구성원이 시기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분세는 판매를 담당하는 도원뿐 아니라 도원들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개성 상인, 평양 상인, 의주 상인이나 객주들에게도 부과하였다. 그러므로 분세는 도원들에게는 상품 판매량에 의거하여 걷는 영업세의 성격이었으나, 개성 상인 등 상품을 공급하는 자들에게는 유통세와 비슷한 성격을 띠었다.

분세의 양은 물종에 따라 달랐다. 예컨대 입전에서는 원래 도원에게는 엽단(葉緞) 매필 3분, 통단(桶緞) 매필 1전 5분씩을 징수한 반면, 객주와 의주 상인에게는 엽단 매필당 1전 5분, 통단 매필당 5전씩 징수하였다. 도원에 비해 객주와 의주 상인에게 3∼5배의 무거운 세금을 거둔 것은 객주와 의주 상인은 한양 도성 내에서 이런 물종을 판매할 수 있는 영업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객주나 의주 상인이 분세 납부를 거부할 경우 에는 입전 도중에서는 이들을 난전율(亂廛律)로 처벌하였다. 분세를 납부하지 않은 도원도 처벌했는데, 처벌 내용은 1870년 이전에는 1년 동안 판신래인으로 강등한 뒤 삼분벌(三盆罰)을 부과하였고, 1870년 이후에는 오분벌(五盆罰) 부과로 강화하였다.

시전 도중에서는 예전, 벌금, 방세, 분세 수입을 기초로 조성된 자금을 도원들에게 대여하여 이자를 받음으로써 자금을 늘려 갔다. 면주전에서 각종 비용의 지출 내용을 5일마다 기록한 『면주전차하책(綿紬廛上下冊)』의 내용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380냥의 자금으로 76명의 도원들에게 월 5%의 이자율로 대여하여 1년 이자로 228냥을 받았고, 이자를 합한 금액 608냥을 다시 대출하여 총 995냥 6전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이식(利殖) 활동은 전체 도중 차원은 물론 도중의 산하 조직인 계(契) 단위에서도 운영되었다. 이자율의 경우 면주전 도중 차원에서 자금을 대여할 경우는 월 5%였으나, 도중 차원이 아닌 그 산하 계 단위 조직 내부에서의 이자율은 월 1%로 매우 낮았다. 면주전 도중의 경우 공식적인 성격의 대출이어서 당시의 일반적 이자율이 적용되었지만, 그 산하의 계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친족 등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였으므로 이자율이 면주전 도소에 비해 훨씬 낮았다.35)『면주전차하책(綿紬廛上下冊)』(京都大學 河合弘民文庫 소장 자료)은 1878년 정월 1일부터 그해 말까지 1년분의 기록으로서, 면주전의 상품 거래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면주전 도중의 조합 자금 운영 상황을 기록한 장부이다.

도중의 경비 지출은 도중의 운영 경비, 부조 비용, 국가에 대한 의무 부담, 요역, 기타 각종 행사나 예물 등에 지출하였다. 수지 잉여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회의나 집회할 때 비용으로 지출한 것으로 보인다. 포전의 경우는 건물의 수선비, 경조금, 잡비, 도가의 경비, 집회의 비용, 각종 국역 부담금으로 지출하였다.

시전 도중이 활용하는 전체 재정 규모를 파악할 만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면주전 회계 장부를 통해 면주전 도중의 전체 재정 규모를 짐작해 보면, 대략 1만 냥 규모였다. 물론 이 1만 냥은 상인들의 총자본은 아니며, 동업 조합 조직으로서 도중에서 활용하는 조합 비의 규모이다. 도중의 자금은 조합의 공유 재산이었으므로 공동으로 관리하였다. 도원은 도중을 탈퇴할 때 도중의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대신 도중의 부채에 대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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