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3권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 제4장 개성 상인과 동래 상인
  • 4. 동래 상인이 개성 상인과 다른 점
  • 동래 상인의 상업 활동
  • 무역품의 종류와 수량 그리고 조달 방법
정성일

일본과 무역을 독점한 동래 상인들은 어떠한 물품을 취급하였을까? 이른바 왜관 출입 동래 상인들이 취급한 물품의 종류와 수량은 시기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대마도 무역 상인들이 1684∼1710년 사이에 거래한 내역을 기록한 『조선무역이윤적장(朝鮮貿易利潤積帳)』에 따르면,146)정성일, 『조선 후기 대일 무역』 제5장 「조·일 사무역 규모 논쟁」, 177∼200쪽. 그들은 대체로 수십 종의 물품을 거래하였다. 수출품으로서는 조선을 대표하는 인삼을 비롯하여 백사(白絲) 등 중국산 견직물 등이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대신에 일본의 은과 구리를 비롯하여 동남아시아에서 나가사키(長崎)를 통해 일본으로 들어온 물소뿔·후추 등이 왜관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왜관 무역 상인들이 어느 정도의 이윤을 올렸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를 찾기가 어렵다. 다만, 앞의 자료를 통해서 대마도가 조선과 무역을 통해 획득한 이윤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1695년의 경우 거래 금액이 가장 높은 것은 조선의 수출품(일본의 수입품) 중에서는 백사였으며(은으로 환산하여 2,912관), 조선의 수입품(일본의 수출품) 가운데서는 납이었다(은으로 환산하여 566관). 그리고 마진율을 계산해 보면 품질이 뛰어난 최상품 인삼(上人蔘)이 110.5%로 조선의 수출품 중에서는 가장 높았으며, 조선의 수입품 가운데서는 황련(黃連)이 300%로 가장 높았다.147)대마도의 마진율(%)은 ((판매 단가-수입 단가)/수입 단가) 100%로 정의하여 필자가 계산한 것임. 정성일, 『조선 후기 대일 무역』, 390쪽.

무역품의 조달과 판매는 국내 유통망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실제 사례를 1844∼1849년 사이에 왜관을 출입한 동래 상인 정 천 총(鄭千摠)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대마도의 왜관 무역 담당자인 일대관(一代官)이 작성한 일기에 따르면, 자범(子範, 정 천총의 字)은 서울과 전주·대구 등지를 자주 오가며 일본으로 수출할 소가죽을 조달하고 있었다. 그는 1846년 6월 현재 말린 해삼(煎海鼠)을 그해 봄철에 왜관에 입송해야 할 목표량을 초과 달성하는 등 좋은 실적을 올린 것으로 일본 측은 기록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정 오위장(鄭五衛將, 字는 允中)도 과거에 왜관을 출입하면서 일본과의 무역에 종사하였는데 당시에도 실적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일본 측은 파악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자범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본과의 무역에 종사하였으며, 동래와 전주·서울·대구 등지를 연결하는 유통망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천총과 오위장은 각각 아들인 자범과 아버지인 윤중의 과거 경력을 나타내는 것인데, 부자가 모두 동래부의 무임직(武任職) 경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148)정성일, 『조선 후기 대일 무역』, 17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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