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1장 조선인에게 비친 과학 기술
  • 2. 철도로 보는 근대의 풍경
  • 기술 문명의 상징 철도
박진희

파팽(Papin)이 대기압 원리를 이용한 기구를 처음 개발했을 당시만 해도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철도망이 발달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발명가 트레비식(Trevithick)이 증기 기관차를 레일 위에서 움직이는 데 성공한 이후, 철도는 이내 근대 과학 기술의 대명사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철도는 한 국가의 근대 문명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150여 년 동안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철도가 차지했던 사회·경제적 비중은 오늘날의 어떤 교통수단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철도는 단지 기술 문명의 이기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 시기 기술 문명의 정수(精髓)였다. 또한 철도의 건설과 운영에는 대량의 자금과 노동력 및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철도 산업은 자본·기술·회계·고용·관리 등의 여러 측면에서 다른 산업의 토대가 되었으며, 근대 기술 문명의 발전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 지표가 되었다. 대체로, 선진 산업국에서는 철도가 지닌 이러한 산업 발전의 순기능을 최대한 살려서, 철 도를 국민 경제 형성과 민족 국가 수립의 지렛대로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기술 문명을 볼 때, 19세기 유럽에서 출연한 철도는 혁명과 진보의 상징이었다. 폴 망투(Paul Mantoux)는 『산업 혁명사』에서 “증기 기관의 발명과 더불어 산업 혁명의 최종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단계가 열렸다. 증기 기관은 산업 혁명의 마지막 족쇄를 풀었고, 이로 인해 대규모 공업이 급속하게 발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증기 기관은 인간이나 동물 등 생명체의 근력이 아니라 석탄 같은 무기물에서 동력을 나오게 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의 한계를 벗어나게 하였다. 철도는 석탄과 철이 이루어낸 증기 시대의 화신이었다. 인간과 물자의 이동을 가로막던 지리적·자연적 장벽은 철도가 관통함으로써 증기 기관의 위력 앞에 무너졌다. 고립적이고 패쇄적인 지역 공동체는 해체되고 상호 작용하는 단일한 경제 체제로 묶이게 되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은 경이적인 속도로 도시와 시장으로 파고들었다. 철도는 지역과 국경의 경계선을 넘어 자본의 정신을 전 세계로 퍼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우리가 근대의 상징 철도를 접한 것은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해버린 시공 속에서였다. 막 세계에 대한 주체적인 자각이 형성되어 가던 우리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동도서기의 원리를 실현한 일본의 공세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에 의해 철도가 한반도의 이곳저곳을 가로지르게 된 현실 속에서 철도는 우리에게 다른 의미와 기능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근대 문명의 상징이라는 보편성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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