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1장 조선인에게 비친 과학 기술
  • 4. 조선 지식인의 과학 기술 읽기
  •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
김태호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의 세계에서 패자가 아닌 승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이미 나라를 빼앗겼다면, 어떤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1905년 12월 1일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논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지구상의) 國土(국토)와 人民(인민)이 恒常(항상) 弱肉强食(약육강식)과 優勝劣敗(우승열패)를 不免(불면)니 現今(현금) 세계에 處(처)야 自强力(자강력)이 無(무) 자 名雖人也(명수인야)나 人類(인류)의 待遇(대우)를 不得(부득)야 奴隷(노예)와 牛馬(우마)를 作(작)야 …… 自身(자신)의 行動(행동)을 不得自由(부득자유)야 他人(타인)의 驅使(구사)를 被(피)고 宰割(재할)을 聽(청)다가 畢竟(필경) 種類(종류)가 絶滅(절멸) 境遇(경우)에 至(지)나니 …… 盖嘗(개상) 人類中(인류중) 自强力(자강력)에 緣起(연기) 바 攷察(고찰)니 無形(무형)의 自强(자강)과 有形(유형)의 自强(자강)이 有(유)니 有形(유형)의 自强(자강)은 財力(재력)과 武力(무력) 등이 是也(시야)오 無形(무형)의 自强(자강)은 信敎力(신교력)이 是也(시야)라 ……

즉 당장 나라의 힘을 키울 방도가 없더라도 신념·종교·교육과 같은 보이지 않는 힘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그 ‘무형의 자강’ 가운데서도 으뜸이었다. 비록 과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 과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1920년대가 지나야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일찍부터 널리 퍼져 있었다.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李光洙)의 소설 『무정(無情)』에서 우리는 당대 지식인들의 과학관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교육자가 되렵니다. 그리고 전문으로는 생물학을 연구할랍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 중에는 생물학의 뜻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형식도, 물론 생물학이란 뜻도 알지 못하였다. 다만 자연 과학을 중히 여기는 사상과 생물학이 자기의 성미에 맞을 듯하여 그렇게 작정한 것이다. 생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새 문명을 건설하겠다고 장담하는 그네의 신세도 불쌍하고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

주인공 이형식은 조선 민중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과학! 과학!’ 하고 부르짖으며,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물학이라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지은이 이광수는 주인공의 과학관이 관념적이고 낭만적인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 스스로도 달리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기에, 그저 자신과 자신의 시대를 한탄할 따름이다.

이광수와 같은 지식인들이 이처럼 나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에 일본은 서양 과학을 들여와 익히는 수준을 넘어 이미 서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과학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영국·독일·미국 등의 각종 국제 과학 학술지에 일본 학자들이 독일어와 영어로 발표한 논문들은 양과 질 모두 이탈리아·벨기에·스위스 등 유럽의 유서 깊은 과학 강국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일본의 발전상을 보고 들은 이들은 낙후된 조국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 기술의 기반을 일시에 갖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과학 기술을 익혀 나라가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목표인지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이런 무력감 때문이었을까? 이광수와 최남선 등은 뒷날 자력에 의한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과의 동화(同化)를 주장하는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는 이광수 자신의 글귀를 떠올리게 하는, 당대의 책임 있는 지식인으로서는 보여 주지 말았어야 할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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