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1장 조선인에게 비친 과학 기술
  • 4. 조선 지식인의 과학 기술 읽기
  • 식민지 백성에겐 너무나 높고 큼이여
김태호

그러나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과학 기술의 진흥이란 본질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한반도에서 군국주의가 강화되고 정치적 자유는 더욱 줄어들었다. 과학 데이 행사는 옥외 집회 금지 방침에 따라 축소되었고, 발명학회와 과학 지식 보급회는 강압적인 동화(同化) 정책을 이겨내지 못하고 차츰 어용화되었다. 1938년 경성 공전에 일부 학과가 증설되었고 1941년에는 경성 제국 대학 개교 15년 만에 비로소 이공학부가 설치되었지만, 이는 군사적 필요에 따른 전시 동원 체제 강화의 성격이 짙었다. 일례로 경성 제대 이공학부의 교수와 학생들은 우라늄광(鑛) 탐사와 같은 군수용 연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식민지라는 그늘 아래의 과학 기술은 마지막까지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한참 늦은 19세기 말엽에야 비로소 근대 과학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도 그들은 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어떻게든 그것을 익히고 가르치려 노력했으나, 야만적인 ‘제국의 시대’는 그들이 꿈을 펼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용돌이치는 세계 질서 안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망국의 서러움을 맛보아야 했고, 망국의 현실은 다시 그들의 과학 이해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도록 하는 멍에가 되었다. 그 결과 광복을 맞을 때까지 우리의 과학 기술 수준은 물론,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조차 낮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과학은 마냥 높고 큰 채 저 멀리 있었고, 막연한 경외와 감탄을 넘어 그것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우선 나라의 광복을 맞아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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