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4권 근현대 과학 기술과 삶의 변화
  • 제2장 다른 길로 들어선 남·북한 과학 기술
  • 4. 과학 기술자이자 시민으로
  • 전문가와 시민의 조화를 향해
김태호

그동안 우리는 과학 기술자의 사회적 활동에 대해 다소 비뚤어진 시각을 가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연구실에 파묻혀 문을 걸어 잠근 채, 바깥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랑곳 않고 연구에만 몰두해야 ‘훌륭한’ 또는 ‘진짜’ 과학 기술자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심지어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하는 과학 기술자에 대해 뒤에서 ‘얼굴만 팔러 다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수군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과학 기술자의 본업이 연구이며, 좋은 연구 업적을 많이 내는 사람이 훌륭한 과학 기술자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자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여력을 과학 기술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은 일터에서는 과학 기술자이고, 집에서는 가족의 일원이고, 사회에서는 권리와 의무를 지닌 한 사람의 시민이다. 그러니 사회 활동이 왕성한 과학 기술자들이 입방아에 오른다면 그것은 대단히 억울한 일이다. 그들은 단지 ‘훌륭한 시민’으로서 할 일을 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모든 나라의 과학 기술이 덩달아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 노화의 비밀을 담은 유전자의 구조를 해독했다는 낭보가 들려오는 그 순간, 지구 반대편 어디선가는 아스피린과 같은 기초적 의약품을 구하지 못해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세계 과학 기술의 최전선이 제아무리 확장되어 간다고 해도, 한 나라의 과학 기술은 그 나라 사정에 맞게 발전시키지 않으면 저절로 발전하지 않는다.

우리 과학 기술자들이 선진국에 가서 선진 과학 기술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훌륭한 업적을 내는 것만으로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이 발전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이 발전하려면 우리 현실에 맞는 정책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길러낸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좋은 일터가 갖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그런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자들 스스로도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

앞 세대의 선배 과학 기술자들은 전문 지식의 연구가 어려웠던 척박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전문가로서의 포부를 접어가면서까지 후배들을 위해 과학 기술 연구의 터전을 닦았다. 오늘날의 과학 기술자들도 선배들의 역사를 되새겨 기억하면서, 다시 다음 세대를 위해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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