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주거 설비의 변화와 전기 기기의 보급이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가족 구성원 가운데 주부의 일상에서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장작을 패서 아궁이에 쪼그리고 앉아 끼니마다 밥을 짓고, 아궁이 불씨를 보존하면서 감내해야 했던 육체적 피로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방 안에서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는 가스보일러의 등장으로 난방을 위해 애써야 했던 고생은 사라졌다. 냉장고가 일상이 되고,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거의 매일이다시피 하던 시장 보기도 대폭 줄어들었다. 전기 취사용품들이 등장하면서 밥을 짓는 동안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밥을 짓는 동안 무료하게 지켜보며 화력을 조절하는 대신에, 이제는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릴 수가 있게 되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어 가사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기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주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장작불로 밥을 하던 시절에 가장의 역할은 땔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인을 거느릴 수 없는 가정에서 가장은 직접 숲에서 땔감을 조달하든가, 시장에서 땔감을 구입해야만 했다. 난방 설비의 발전은 이런 작업에서 가장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었다. 아이들 역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개울가나 강가에서 빨래를 하기 위해 어머니를 도와 이불짐 보따리를 나르던 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다리미질·청소 등 1960∼1970년대만 해도 가족 공동의 작업 성격이 남아 있던 집안일들이 각종 기기가 등장하면서 주부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전기 제품의 기능이 점점 자동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가사 노동이 기기로 옮아가면서, 가족의 공동 일상에 변화가 초래된 것이다. 공동 일상의 내용은 이제 가족이 함께 하는 여가 활동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가 활동 역시 과학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변화하게 된다. 1960∼1970년대에는 라디오 청취나 텔레비전 시청이 점차적으로 가족의 주요한 여가 활동이 되었다. 이는 1980년대 마이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다시 변모를 겪게 된다.
1970년대 라디오
빠른 속도로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게 된 산업 혁명이 과연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었는가를 논하기란 어렵다. 산업 혁명에 수반된 각종 사회 현상들은 육체적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주는 긍정적인 결과 못지않게 부정적이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 으로 이런 각종 설비·기기들이 도입되면서 일어난, 앞서와 같은 변화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은 단순하게 답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