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 제2장 상장례의 역사와 죽음관
  • 1. 죽음과 혼백, 그리고 귀신
정종수

귀신은 정말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또 혼백(魂魄)은 무엇이고 넋은 무엇인가? 귀신이나 혼백이나 넋은 모두 죽음이란 단어를 떠나 생각하기 어렵다. 이들은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혼(魂)은 넋과 얼이라 할 수 있다. 넋은 생명의 원리와 같은 것이다. 넋이 있다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을 뜻한다. “넋이야 있건 없건,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한 정몽주의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엇인지 알려 준다.

넋이 나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하지만 넋이 빠졌다고, 넋이 나갔다고 모두 죽었다는 것은 아니다. 넋이 나가 정신이 몽롱하거나 정신이 나가 혼절(昏絶)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넋이 잠깐이라도 나갔다면 죽은 것이 되지만, 이런 죽음은 넋이 다시 육신으로 되돌아와 살아난다. 죽음은 넋이 완전히 탈출한 것으로 다시 육신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태이다. 곧 육신에서 넋이 영원히 탈출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는 굿에서 많이 나타난다. 물에 빠져 죽으면 시체를 건졌더라도 넋건지기굿, 혼건지기굿을 하는 경우를 이따금 본다. 만일 물에 빠진 넋을 건져 올리지 않으면 넋이 승천하지 못하고 차가운 물속에 계속 머물기 때문이다. 또한 망자(亡子)의 넋을 깨끗이 씻겨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꾀하는 전라도 지방의 씻김굿도 육신과 넋의 분리를 잘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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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김굿(전남 벌교)
씻김굿(전남 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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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나감과 비슷한 것 가운데 ‘얼빠짐’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보통 표정이 멍하거나 정신이 나간 상태를 ‘얼빠진 사람’, ‘넋 나간 사람’이라고 한다. 얼굴은 ‘얼’이 집합되어 있는 ‘굴’이란 뜻이다. 그러나 얼이 빠졌다고 하여 죽은 것은 아니라 잠시 정신이 혼미할 뿐이다. 그렇지만 넋은 산 사람의 것이면서 또한 죽은 이의 것이기도 하다. 넋은 살아 있을 때는 육신과 함께하지만, 죽으면 육신을 완전히 떠나는 것으로, 생(生)과 사(死)라는 두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얼은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기는 하나, 완전히 탈출하지 않고 육신의 삭아짐과 운명을 함께한다.

이렇게 본다면 넋과 얼을 함께 어우른 것이 ‘혼’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은 혼백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혼이 정신적인 것이라면 백은 물질적인 것으로, 우리 몸에 비유하면 정신은 혼이고 육체는 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증명하기란 실로 어렵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멍 해진 사람을 보고 “저 친구 혼 나갔나 봐” 하지, “백 나갔어” 하지 않는다. 또 갑자기 놀라 자빠진 상태를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고 한다.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졌으니 마땅히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말은 우리의 몸이 정신인 혼과 육체인 백으로 이루어졌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예라 할 수 있다.

과연 옛사람들은 혼백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기(禮記)』에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여기서 혼이란 기(氣), 즉 정신을 말하고, 백은 이목구비를 갖춘 육체를 일컫는 것으로서, 죽음으로 혼과 백이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32)『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 죽음이란 곧 양기(魂)가 떠서 흐트러짐을 뜻하며, 흩어진 양기는 둘로 분화하여 하나는 승천하여 양으로서 신(神)이 되고, 하나는 지계(地界)로 강하하여 음으로 귀(鬼)가 된다. 결국 사람은 죽으면 혼백이 분리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도 “무릇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기(氣)가 아닌 것이 없고, 그것이 뭉쳐 물(物)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백이다. 그리고 혼과 백이 합하여 이목의 총명과 구비의 호흡과 인생의 허다한 정신과 근력이 되는 것이고, 급기야 늙어서 죽으면 양기가 떠서 흩어지며, 흩어진 양기는 둘로 분화하여 하나는 승천하여 양으로서 신이 되고, 하나는 땅으로 강하하여 음으로서 귀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33)『성호사설(星湖僿說)』 권25, 경사문(經史門), 귀신 혼백.

조선 헌종 때의 학자 이규경(李圭景)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양기가 혼이 되어 사람 몸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육이 썩으면 그 혼이 의지할 데가 없으므로 곧 위로 흩어지거나 환하게 밝은 기운이 되거나 후끈한 냄새의 기운이 되거나 무서운 기운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밝은 기운이란 혼으로 신(神)이고, 후끈한 냄새의 기원과 무서운 기운이란 백으로 귀신이다.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성현(成俔)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혼백이 신 또는 귀신이 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음양설에 따르면 천지간의 만물에 기가 있다. 기란 정령을 말하며, 양기(陽氣)의 정령을 혼이라 하고 음기(陰氣)의 정령을 백이라 한다. 죽음이란 양기의 부산(浮散) 승천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고, 승천하는 것은 신명(神明)이 되지만 생전의 원한이나 미련을 놓지 못할 때는 사후에 양기가 승천하지 못하고 공간에 떠 있다가 음기가 되어 자의로 행동한다. 이것이 소위 귀신이다.34)『용재총화』.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35)임동권, 「민속상으로 본 색채관-적청색을 중심으로-」, 『한국 민속학』, 집문당,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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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백이 귀신이 되는 과정
혼백이 귀신이 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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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혼(魂) 자나 백(魄) 자에 모두 귀신 귀(鬼) 자가 들어간다는 점이다. 따라서 혼백도 귀신의 일종임을 알 수 있다. 그럼 혼백으로 구성된 사람도 귀신이라는 가정이 성립한다. 즉, 사람도 귀신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죽었을 때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는다. 죽으면 혼백이 분리되고, 백은 음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 흙이 된다. 반면 양기의 혼은 하늘로 승천하여 신명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중에 떠다니다 내려와 귀신이 된다.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혼이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여 임종 직후 바로 혼을 부르는 풍속이 있다. ‘넋 부르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절차를 초혼(招 魂) 또는 고복(皐復)이라 한다. 초혼은 육체를 빠져나간 혼이 다시 돌아와 살아나기를 바라는 뜻으로,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지붕에 올라가 북쪽을 향해 망자의 속적삼을 흔들며 망자의 성과 이름, 주소를 부르고, 이어 “복, 복, 복”이라고 세 번 외친다. 여기서 복(復)이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뜻이다.

『상변통고(常變通考)』에서도 혼백의 존재와 초혼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부모가 죽으면 효자의 마음이 황황해져서 소생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가릴 것 없이 하게 된다. 지금 사람들 가운데 죽었다가 살아난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혼기(魂氣)가 하늘로 올라가다가 형체를 사모하여 다시 돌아오려고 하지만 사람들이 울부짖는 것을 두려워하여 편하게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36)『상변통고』 권7, 상례, 복.

만일 혼을 부를 때 울부짖으면 나간 혼이 놀라 못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운명하면 가슴을 치며 통곡하다가도 초혼을 부를 때는 곡을 멈추는 것이다.

이 같은 초혼의 예는 역사 속의 민속 현장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군이 침입하여 강화도의 성을 포위하였을 때 김상용(金尙容)이 옷을 벗어서 집의 종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나라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나는 마땅히 죽을 것이다. 너는 이 옷으로 초혼을 할 수 있게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주어라.” 하고 남문루에 올라가 자리 옆에 화약을 놓고 불을 질러 스스로 타 죽었다. 그의 아들 호조 참판 김광현 등은 청나라군이 물러간 뒤에 강화도로 달려가 보았으나, 성루는 이미 잿더미가 되어 아버지의 해골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보내온 옷으로 초혼을 하고 돌아와 장례를 치렀다.37)이덕형(李德泂), 「송도기이(松都記異)」 이죽천송도견문록후(李竹泉松都見聞錄後), 『대동야승(大東野乘)』 권71. 요즈음에도 시신이 없으면 한복을 지어 혼을 불러들여 장례를 치르는 데, 이를 초혼장(招魂葬)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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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혼장(전남 완도)
초혼장(전남 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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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지가 발달하지 못한 때에는 죽음이란 혼이 우리 몸에서 빠져나감으로써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간 혼이 다시 체내로 돌아오면 일단 죽었던 사람도 소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혼이 우리 몸속에서 빠져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꾸짖을 때 “너 혼내 줄 거야.”라고 한다. “혼낸다, 혼내 줄 거야.” 하는 말은 단순히 꾸짖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곧 몸에서 혼을 빼내 죽인다는 아주 무서운 말인데, 특히 부모가 아이들을 야단칠 때 많이 쓴다. 자꾸 혼내다 보면 정말 언젠가는 혼이 나와 죽게 될지도 모르니 함부로 ‘혼낸다’는 말을 귀한 자식에게 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혼백의 분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무가 불에 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나무에 불을 붙이면 연기가 나고 재가 남는다. 연기는 혼이요, 재는 백으로, 불이 다 꺼지면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재는 떨어져 땅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혼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체백(體魄)은 땅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연기는 곧 사람의 혼기이며, 타고 남은 재는 곧 사람의 체백이다. 따라서 화기가 꺼져 버리면 연기와 재가 다시 합하여 불이 될 수 없듯이, 사람이 죽은 뒤에 혼기와 체백이 다시 합하여 생물이 될 수 없다.38)정도전, 『삼봉집(三峯集)』, 「불씨잡변(佛氏雜辨)」, 불씨인과지변(佛氏因果之辨). 거꾸로 연기와 재를 다시 합쳐 나무를 만들 수만 있다면 곧 날아간 혼과 백을 합쳐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송나라 때 주자(朱子)도 혼백을 향불에 비유했다. 향에 불을 지피면 향의 냄새는 곧 혼이요, 재는 백이라 했다. 주자는 또한 귀신을 감초에 비유하여 감초의 향은 신에 해당하고, 그 즙의 단맛이 곧 귀신이라 하였다.

다음은 귀신에 대해 살펴보자. 귀신이란 죽어서도 한이나 원한이 많아 승천하지 못한 혼이 음기(陰氣)가 되어 구천(九泉)을 떠다니다 내려온 것을 이른다. 한마디로 귀신은 음(陰)이 뭉쳐서 된 것이다. 우리 민속 신앙의 기저에는 반드시 귀신 관념이 깔려 있다. 귀신을 알면 우리 풍속의 절반을 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예부터 동양에서는 기(氣)를 우주를 형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로 보았다. 기는 인간과 자연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이 분화하여 정신도 되고 물질도 된다고 하였다. 또한 만물의 기본 요소로 음양이란 것을 생각하였다. 음양의 협조, 음양의 조화에 따라 만물이 생성하고 변화하며, 음이 양보다 우세하면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여겼다. 예를 들면 흉년이 들거나 전쟁에서 지는 것, 재물의 손실, 질병의 발생 등 해로운 일들은 모두 양보다 음이 강해 생기는 것이라 여겼다. 이러한 귀신 관념 때문에 전통 사회에서는 가해자격인 음의 발동을 누르고 압승하는 것이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섣달 그믐날 머리카락을 태우는 것, 정월 대보름날 문 앞에 체를 걸어 두어 야광귀(夜光鬼)를 쫓는 것, 동짓날 팥죽을 먹는 것, 아이를 낳으면 금줄에 붉은 고추나 솔가지를 거는 것 등은 모두 귀신이나 잡귀, 부정을 막기 위 한 일이다.

이러한 귀신 퇴치법을 양귀법(攘鬼法)이라 하는데, 대체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귀신을 공격하거나 위협하고, 상처를 내거나 결박하여 쫓아내는 적대적 방법이다. 둘째는 귀신의 위력에 굴복하여 춤과 노래, 혹은 음식을 접대하여 순순히 물러나게 하는 타협적 방법이다. 셋째는 주문을 외거나 부적, 약물 등을 이용하여 쫓아내는 의타적(依他的) 방법이다. 넷째는 귀신도 성정(性情)이 인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그가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색채, 냄새, 맛, 촉감, 광명 등을 사용해서 물리치는 혐기적(嫌忌的) 방법이다.

물론 사람에게 좋은 귀신도 있고 해를 끼치는 귀신도 있다. 귀(鬼)는 얼굴에 무엇을 가린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신(神)은 번개의 모습을 본 뜬 것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귀신은 죽은 이의 혼령이 승천하지 못하고 이승을 헤매는 존재를 이른다. 이들은 삶도 죽음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이승을 떠도는 원귀(寃鬼), 원령(怨靈)으로 인간에게 해를 주는 존재이다. 죽은 이의 넋이 원귀가 되는 것은 한 때문이다. 한(恨)이란 마음이란 글자(心)와 뿌리를 의미하는 글자(艮)가 합쳐져 된 것이다. 즉 한은 마음을 풀지 못하고 맺힌 것을 이른다. 한 맺힌 죽음이란 원통하게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요절 혹은 객사를 하거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거나 어린 자식 혹은 불구 자식을 두고 죽거나 살아생전 죽도록 고생만 하다 죽는 등 한마디로 비정상적으로 죽는 경우를 말한다. 이들은 맺힌 한을 풀기 위해 사람을 해칠 때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풀이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수단을 써서 원귀나 원령을 쫓으려고 한다.

이 같은 귀신과 대비되는 것이 신명(神明)이다. 신명은 사람에게 이로운 귀신이다. 죽었다고 아무 혼이나 신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명이 되려면 죽어서 미련 없이 이승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한 세상 잘 살다 간다면 갈 때도 자연히 신명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많으면 신명이 날 수 없다. 그러면 승천도 못 하고 구천에 떠돌다 귀신이 된다. 그래서 승천한 양기를 밝다는 명(明) 자를 써서 ‘신명’이라 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신명이 많다고 한 것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그럼 신명과 신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 조상은 승천하는 양기를 신명이라 하여 신과 구분하였다. 쉽게 말하면 신명은 일종의 조상신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이란 하느님이나 부처님처럼 예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말한다. 조상신 격인 신명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예배의 대상이 되지 못하지만 전혀 숭배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속 신앙에 많이 등장하는 신은 크게 자연신(自然神)과 인격신(人格神)이다. 자연신은 천신(天神), 산신(山神), 수신(水神) 등을 말한다. 인격신은 임경업(林慶業) 장군, 최영(崔瑩) 장군, 단종 대왕처럼 사람이 죽어 신으로 받들어지는 경우이다. 죽은 사람의 한이 크면 클수록 신의 힘이 커지거나 신통력이 더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조상신에 해당되는 신명은 인격신과는 엄연히 다르다.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절하는 것은 단지 신명격인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지 결코 신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신명을 신으로 인정한다면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신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 제사는 조상 숭배가 아니다. 조상을 신처럼 숭배한다면 제사도 영원히 지내야 하지만 우리는 4대 조상에게만 제사를 지낸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상이 예수, 부처와 같은 신이 아니고, 단지 관습일 뿐이기 때문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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