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 제3장 유교식 상례
  • 1. 초종례, 임종에서 관 속에 들어가기까지
  • 초종례, 임종에서 관 속에 들어가기까지
  • 수시와 저승사자
정종수

수시(收屍)를 습(襲) 또는 천시(遷屍)라고도 한다. 운명한 것이 확인되면 눈을 감기고 깨끗한 솜으로 입, 귀, 코를 막고 턱을 받쳐 입을 다물게 한 뒤 머리를 높이고 반듯하게 베개로 괸다. 시신이 굳기 전에 손과 발이 굽어지지 않게 고루 주물러 편 다음 창호지나 천으로 두 어깨를 당겨 동이고 두 팔과 손을 곧게 펴서 배 위에 올려 모아 동여맨다. 이때 남자는 왼손을 위로 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한다. 다리는 반듯하게 펴서 무릎을 맞대어 동이고 발목을 동인 뒤 발을 바로 서게 하여 동인다. 그리하고는 요 위로 옮겨 반듯이 누이고 홑이불로 머리까지 덮은 뒤 병풍으로 가린다.

수시를 거두는 동안에는 상주 이외에는 모두 곡을 멈추고 정성을 다하여 수족을 거두어야 한다. 만일 소홀히 하여 사지가 뒤틀리면 염습할 때 큰 걱정이 생기게 된다. 수시는 남의 손을 대지 않고 가족이 하는 것이 좋으며, 시체가 있는 방은 덥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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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殯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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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를 걷고 나면 사잣밥을 차린다. 사잣밥은 보통 대문 앞이나 마당에다 차리는데, 메 3그릇, 나물 3그릇, 동전 3개, 짚신 등을 조그만 상 또는 채반 등에 차린다. 사잣밥은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경기 고양 지역에는 절구통을 거꾸로 엎어 놓고 그 위에 흰 종이나 도래방석을 깔고 키를 얹어 놓은 다음 잡곡을 섞지 않는 메(흰 밥)와 무나물 7그릇을 놓고, 그 옆에 짚신 세 켤레, 망자가 신던 고무신 등을 놓는다. 충남 논산 지역에서는 입관이 끝나면 사잣밥을 엎어 놓아 입관이 끝났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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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잣밥(경기 포천)
사잣밥(경기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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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 놓은 사잣밥(충남 논산)
엎어 놓은 사잣밥(충남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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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잣밥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데리러 온다고 믿는 저승사자를 잘 대접함으로써 사자를 편하게 모셔가 달라는 뜻이다. 몸은 땅에 묻히지만 영혼은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온 저승사자에 이끌려 저승으로 가 심판을 받는 것으로 믿었다. 그 사자를 ‘일직사자’와 ‘월직사자’라 한다. 쇠몽둥이와 쇠사슬을 든 이들은 쇠몽둥이로 등을 치고, 쇠사슬로 얽어매어 우악스럽게 사람의 넋을 떼어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은 저승길로 가는 망자를 위한 만가의 한 토막이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 북망산천이 멀다고는 해도

대문 밖이 저승이네 / 염라대왕 부름을 받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 팔뚝 같은 쇠사슬로

결박해서는 잡아끌어내니 / 천하장사가 무슨 소용 있나

그럼 저승길은 혼자일까, 아니면 누구와 동반할까? 저승은 부모 자식 사이라도 함께 갈 수 없다. 혼자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저승길이 너무 외롭고 무서워 동반자를 대동하도록 했다. 망자를 태운 상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무로 깎은 인물상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부친 남연군(南延君)을 운구할 때 썼던 남은들 상여(중요 민속 자료 제31호)를 보면, 맨 위 용머리판 마룻대 중간에 인물상이 하나 꽂혀 있다. 쌍상투를 한 머리에 마치 먼 길을 안내하는 사람처럼 팔장을 낀 동자상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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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부원군 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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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부원군 상여 위의 동자상
청풍 부원군 상여 위의 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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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동법을 시행하였던 김육(金堉)의 아들 청풍 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이 죽었을 때 시신을 향리로 운구하기 위해 썼던 상여에도 같은 위치에 동자상이 타고 있다.65)중요 민속 자료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 춘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자를 타고 있는 동자상은 우뚝한 코에 툭 튀어나온 퉁방울 눈에다 테두리가 큰 벙거지를 쓰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상여에 나무로 깎은 동방삭을 앉히고, 많은 인물상을 장식하여 무서운 저승사자에 끌려가는 영혼을 무사히 저승까지 인도하게 하였다. 이러한 풍속에서 비록 몸은 죽었을지언정 혼은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사생관을 엿볼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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