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5권 상장례, 삶과 죽음의 방정식
  • 제5장 무속과 죽음
  • 2. 무속적 생사관의 원형
  • 무속과 유교의 관계
주강현

무속과 불교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무속적인 것과 유교적인 것의 원형을 따로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유교의 영향력이 큰 만큼 많은 의례에 이런저런 결과물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교가 상장례를 최고의 예법으로 간주하면서 무속과 가장 강하게 충돌하였다. 유교는 무속뿐 아니라 불교의 윤회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윤회설을 가장 강하게 비판한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이 다 타 버리면 연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재는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나니, 이는 사람이 죽으면 혼기(魂氣)는 하늘로 올라가고 체백(體魄)은 땅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불의 연기는 곧 사람의 혼기이며 불의 재는 곧 사람의 체백이다. 또한 불기가 꺼져 버리면 연기와 재가 다시 합하여 불이 될 수 없는 것이니, 사람이 죽은 뒤에 혼기와 체백이 또다시 합하여 생물이 될 수 없다는 이치 또한 명쾌하지 않은가.150)『삼봉집(三峰集)』, 불씨윤회지변(佛氏輪廻之辨).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유교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조상 숭배에도 유교적인 것과 무속적인 것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위도의 민속지를 보면, 차례에서조차 유교적인 것과 무속적인 것이 섞여 있다. 조상 차례를 지내면서 반드시 방 안에 있는 집안 지킴이에게 동시에 간단한 제물(祭物)을 올린다. 조상 차례상에서 큰상으로 제대접을 받는 방식은 유교적인 진설법(陳設法)에 기초하되, 큰상 옆의 성주 단지 위에 따로 쟁반에 간단하게나마 조상 상을 차려서 진설하였다. 물론 부엌에서는 조왕(竈王)에게 따로 진설하였다. 따라서 조상 차례 방식에서 제물을 진설하는 것은 유교적이지만, 집안 지킴이에게 진설하는 것은 무속적인 절차이다.

정초의 제사는 물론이고 추석 같은 명절에도 반드시 하늘에 바치는 천신(薦新)과 터주 등의 지신, 집안의 성주, 아기를 보호하는 삼신 등에 동시에 진설하는 풍습은 아직도 일부 남아 있는데, 아주 오래된 풍습이다. 이는 고대 사회의 부루 신앙의 전통과 맥이 닿아 있는 것이며, 불교 유교가 침윤되는데도 의연하게 장기 지속성을 잃지 않은 풍습이다. 섬 같은 변방에 극히 일부나마 이와 같은 원형이 전승되어 무속적 원형의 본디 모습이 어땠는가를 잘 알려 준다.

대체로 상례는 가례식(家禮式)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몇 가지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예서(禮書)에는 혼과 백이 통합되는 고복 단계와 칠성판 위에 모셔 입관하는 염습 단계, 혼과 백을 분리하여 신주가 등장하는 매장 절차가 중심이 되어 있는 데 반하여, 관행에서는 칠성판이 등장하는 수시(收屍)와 사잣밥 차리기를 양반 집안에서는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단지 가례에 나타나지 않는 절차라는 데서 찾지만, 실제로는 사잣밥과 초혼이 갖는 죽음관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본질적으로 유교적 죽음에서는 고복·초혼을 통하여 체백이 새로운 존재로 재생되는 관념을 나타내는 반면에, 사잣밥은 죽은 사람을 먼 저승으로 데리고 간다는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발인한 즉시 사잣밥을 치우는 것으로 보아 더욱 명확하다. 주검이 떠나는 것과 동시에 사자도 떠나는 것으로 인식하는 관점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151)한림대 인문학 연구소, 「한국의 평생 의례에 나타난 생사관」, 『동아시아 기층 문화에 나타난 죽음과 삶』, 민속원, 2001, 26쪽.

무속에 대한 유교 예법의 정치적 공세가 강화된 것은 조선 전기부터였다. 조선 초의 몇 가지 기사를 통하여 이른바 음사(淫祠)의 실태를 유추할 수 있다. 민중의 지킴이에 대한 본격적인 회유 통제책은 조선 개국과 더불어 본격화되었다. 사찰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불교 의식이나 무가(巫家)를 중심으로 행해지는 음사를 혁파하기 위한 첫 과제는 집집마다 사당을 세우고 신주(神主)를 만드는 것으로, 이미 고려 말에 정몽주(鄭夢周)나 문익점(文益漸) 같은 신진 유학자들이 건의한 바 있으나, 뒤이은 고려의 멸망으로 그 과제가 조선 왕조로 넘어간 것이다. 조선 왕조가 세워진 지 2개월 뒤인 1392년(태조 원년) 9월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배극렴(裵克廉), 조준(趙浚) 등 대신이 가묘(家廟)를 세우고 음사를 엄단할 것을 왕에게 올린 것을 시작으로 그 뒤 풍속을 규정하는 소임을 맡은 사헌부가 중심이 되어 『주자가례』 보급을 추진하였다. 당시에 음사라고 하면 오신(娛神) 행위와 야제(野祭)를 통한 재화 예방(災禍豫防)이 주류를 이루었다. 오신 행위는 장례 전일에 무격(巫覡)을 초청하여 밤낮으로 음주작락(飮酒作樂)하게 하였으니 그것은 조상신을 위로하는 것으로 당시 세속에서는 그러한 행사를 하지 않으면 부모를 박대하는 불효로 간주하였다. 야제는 질병으로 사망하면 앞으로 오는 재액을 방지하기 위하여 주식(酒食)을 성찬(盛饌)하고 무격이나 승려를 초청하여 가무와 범패를 행하고 남녀가 모여 환희함으로써 풍속을 퇴폐하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1431년(세종 13)에 사헌부에서 다음과 같이 장계(狀啓)하였다.

무식한 무리가 요사스러운 말에 혹하여 질병이나 초상이 나면 즉시 야제를 행하며, 이것이 아니면 이 빌미를 풀어낼 수 없다고 하여 남녀가 무리를 지어 무당을 불러 모으고 술과 고기를 성대하게 차리거나 중의 무리 를 끌어오고 불상을 받아들여 향화(香花)와 다식(茶食)을 차려 놓고 노래와 춤과 범패가 서로 섞이어 울려서 음란하고 요사스러우며, 난잡하여 예절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상하는 일이 이보다 심함이 없으니 수령들로 엄하게 다스리되 …….152)『세종실록』, 세종 13년 8월 갑오.

실상 『주자가례』를 따르는 일은 유교의 교화는 물론이고 경제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었기에 민중은 대개 관행을 지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음사를 유교적인 의례로 바꾸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으며 그나마 완전한 것도 못 되었다.153)배상현, 「주자가례와 그 조선에서의 행용 과정」, 『동방학지』 70, 1991, 233∼234쪽. 조선 전기 『묵재일기(默齋日記)』에 나타난 이문건(李文楗)의 굿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변하는 세계관 속에서 양반 사대부의 어중간한 처지를 잘 보여 준다.

죽은 아들의 7·7일(사십구재)에 아랫집 남쪽 뜰에서 야제(野祭)를 지냈다. 화원(花園)에서 온 무녀가 굿을 하는데 위아래 대청에서 모두들 곡하였다. 나는 당에 있었지만 귀가 조용하지 못하였다.154)『묵재일기』, 가정 36년(1557, 명종 12) 8월 14일 갑오 : 이복규, 『묵재일기에 나타난 조선 전기의 민속』, 민속원, 1999, 72∼73쪽.

체면상 굿을 인정하지 못하여 참석하지 못하면서도 사십구재에 집 안에서 굿이 벌어지는 것을 막지도 않는 이중성이 잘 드러난다. 사십구재에 굿판을 벌이면서 곡하였다는 사실은 당시까지 지극히 관행적인 풍습이었을 것이다.155)조선 초기에는 조부모의 혼을 무당 집에 안치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십구재의 굿판은 일부에만 남고 대개 사라졌다. 위도의 무속적 조상 숭배 의식도 이와 같은 긴 역사 과정에서 살아남은 소중한 사례이다. 유교의 조상 숭배 의식과 무속의 조상굿으로 표현되는 조상의 음덕과 친화력은 때로는 상호 결합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리되어 이어져 온 것으로 여겨진다.

무속적 원형과 불교·유교와의 여러 관계에서 좀 더 중요한 점은 제도 종교와 비제도 종교156)무교라고도 하지만 이를 종교라는 용어로 지칭하는 것에 관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의 본질적 차이이다. 제도 종교에서는 제도적 신앙 체 계를 통해서 종교적 구원에 따라 내세로 가는데, 무속에서는 일정한 신앙을 통하지 않고도 현세에서 내세로 간다. 제도 종교에서는 살아생전의 공과(功過)에 따라 극락과 천당으로 가지만 무속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내세인 저승으로 간다. 이는 무속의 세계관이 지극히 자연적임을 의미한다. 무속의 내세관이 자연적 의미망을 갖는 것은 무속이 자연적인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의미하며, 내세관의 제도 종교적 시스템과 층위를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죽은 뒤에 영혼은 자연의 운행을 따라서 내세로 갈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속의 내세관이 제도 종교의 체계화된 내세관에 비하여 저등(低等)이라는 비교 우월주의적 관점은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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