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2장 궁정 연회의 전통과 정재의 역사적 전개
  • 3. 정재의 이념과 미학
  • 정재의 본질과 표현
사진실

정재는 중세 궁정 연극의 범주에 포함된다. 중세 연극은 중세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여 관념적 질서에 의한 조화에 관심을 가졌다. 인도의 산스크리트 연극에서 찾을 수 있는 ‘라사’의 원리는 보편적인 중세 연극의 미학으로 인식되었다.63)조동일, 『카타르시스·라사·신명풀이』, 지식산업사, 1997 참조. 그리스 연극과 산스크리트 연극, 우리 탈춤을 대상으로 고대, 중세 및 근대 이행기의 연극 미학을 밝히고 세계 연극사의 전개 양상을 고찰하였다. 악의 원리 역시 질서와 차별을 인정하면서 조화로운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중세 연극의 미학을 따르고 있다.

예악론에서는 예와 악의 관계를 음양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 임금과 신하가 정해지고, 낮고 높음이 벌어져 있어 귀하고 천한 자리를 정한다. 움직임과 고요함은 항상됨이 있어 작고 큰 것이 달라진다. 방향을 따라 무리가 모이고 일을 따라 무리가 구분되니 성명(性命)이 같지 않다. 하늘에서 상(象)을 이루고 땅에서 형(形)을 이룬다. 이와 같은즉 예는 천지의 구별인 것이다.

땅의 기운이 올라가고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니, 음양이 서로 어루만지고 천지가 서로 움직여 고무하여 우레와 천둥이 되고 분발하여 바람과 비가 되고 움직여 사계절이 되고 따뜻하게 하여 해와 달이 되니 만물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와 같은즉 악은 천지의 조화인 것이다.64)『예기』, 악기19.

음양의 원리가 그러한 것처럼 예악이 서로 하나의 기(氣)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예가 조화하면 악(樂)이고, 악이 절도가 있으면 예라는 것이다. 결국 예와 악이 둘이면서 하나가 되는 이치를 알아야 예악의 체용(體用)에 통달할 수 있다. 예악론의 공연 미학은 예의(禮義)를 내포한 악문(樂文)을 창출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다음에서 악의 본질과 표현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덕(德)이란 성(性)의 실마리이고 악(樂)이란 덕의 꽃이다. 금석(金石)과 사죽(絲竹)은 악의 그릇(器)이다. 시(詩)는 그 뜻(志)을 말하는 것이고, 가(歌)는 그 소리(聲)를 읊는 것이고, 무(舞)는 그 모습(容)을 움직이는 것이다. 세 가지가 마음에 근본을 둔 연후에 악기가 따른다. 이러한 까닭에 정(情)이 깊어 문채가 밝아지고, 기운이 성하여 조화가 신묘하며, 화순(和順)이 심중에 쌓여 꽃(樂)이 밖으로 피어나게 된다. 오직 악만이 거짓될 수 없는 것이다.65)『예기』, 악기19.

성(性)을 드러내는 하나의 단서가 덕이라 하였고, 그 덕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 악이라고 하였다. 악의 근본인 성정(性情)이 외물에 감동하는 바가 깊을수록 악의 표현은 빛나고, 생기가 넘칠수록 감화력은 영묘해지며, 화순의 덕이 속에 차면 훌륭한 악으로 꽃핀다.66)박낙규, 「고대 중국의 예악 사상-‘악기(樂記)’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28쪽. 금석(金石)과 사죽(絲竹), 즉 악기는 악의 그릇이라고 하였으므로 말절(末節)에 해당하여 시·가·무의 뒤를 따르게 된다. 악기는 시·가·무를 표현하는 매체라는 말이다. 그런데 시·가·무는 각각 악의 뜻(志)과 소리(聲)와 모습(容)을 표현한 것이다. 내면의 본성에서 출발하여 시·가·무의 예술 형식으로 나타나기까지 악의 창작 과정을 말하고 있다.

다음의 인용문에서는 악의 창작 과정에 있는 본뜸(象)과 꾸밈(飾)의 단계를 가늠할 수 있다.

악이란 마음의 움직임이며 소리란 악을 본뜬(象) 것이고 문채와 절주는 소리의 꾸밈(飾)이다. 군자는 그 본심을 움직이고 본뜸을 즐긴 연후에 그 꾸밈을 다스린다. 이러한 까닭에 먼저 북을 울려 경계하고 세 걸음을 내딛어 방향을 본다. 다시 시작해서 나아감을 밝히고 다시 끝날 때에 경계하여 물러간다. 빠르더라도 지나치지 않고 매우 그윽하지만 숨기지는 않는다. 홀로 그 뜻을 즐거워하고 그 도(道)를 싫증내지 않으며, 그 도를 준비하고 그 욕심을 사사로이 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정(情)이 나타나 의(義)가 서며, 악이 끝나매 덕이 높아진다. 군자는 선(善)을 좋아하게 되고 소인은 허물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백성을 살리는 도로서 악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67)『예기』, 악기19.

이전의 인용문에서 노래(歌)는 소리(聲)를 읊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앞의 인용문에 따르면 소리는 악(樂) 자체가 아니라 악을 본뜬(象) 것이었다는 인식에 이르고 있다. 악을 본뜬 소리는 문채와 절주의 꾸밈을 통하여 표출된다. 문채와 절주는 소리를 노래에 이르게 하는 표현 기법이다. 소리와 마찬가지로 뜻(志)과 모습(容) 또한 악의 실체를 본뜨고 꾸미는 단계를 거쳐 시(詩)와 무(舞)로 나타나게 된다. 이상의 개념을 정리하면 ‘악의 본질과 표현’으로 도식화하여 나타낼 수 있다.

(1)과 (2)는 악의 본질에 관한 인식이다. 성은 사람, 사물, 우주의 본성으로 악을 포함한 여러 가지 예술의 바탕이 된다. 또한 성은 여러 갈래의 단서(端)로 나타날 수 있는데, 덕에 미쳐 꽃(華)으로 발현된 것이 바로 악이다. 덕이 아닌 다른 단서에 미치면 악이 아닌 다른 예술 양식으로 전개된다고 상정할 수 있다. 덕으로 발현된 성이 악으로 꽃피는 과정은 천지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일 뿐 인간의 인위적인 창조력이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확대보기
악의 본질과 표현
악의 본질과 표현
팝업창 닫기

(4)와 (5)는 악의 표현에 대한 인식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창조력은 악을 만들어 낼(作) 수는 없지만 악을 본떠 밝힐(述) 수는 있다. 지(志)·성(聲)·용(容)은 악의 본뜸(象)이다. 지·성·용은 악을 본뜬 이미지일 뿐 아직 구체적인 예술 형식으로 표출되지 않은 상태다. ‘시로써 그 뜻을 말하고, 가로써 그 소리를 읊고, 무로써 그 모습을 움직여서’ 지·성·용이 감각의 세계로 드러나게 된다. 지·성·용은 문채와 절주의 꾸밈(飾)에 힘입어 시·가·무, 즉 악의 예술 형식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시·가·무의 악을 연출하려면 그릇(器)이 필요하다. 악기, 의상, 도구, 무대 등이 그릇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상(象)과 식(飾)의 단계는 각각 인간의 예술 창조 영역이 된다.

악의 본질이 심(心)의 영역에 속한다면 악의 표현은 물(物)의 영역에 속한다. 예술 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과 물의 관계에 대하여 시론 (詩論)에서는 ‘탁물우의(託物寓意)’와 ‘우흥촉물(寓興觸物)’의 개념을 언급하였다.68)조동일, 「이인로와 이규보의 시론(詩論)에서 문제된 심(心)과 물(物)」, 『한국의 문학사와 철학사』, 지식산업사, 1997, 112∼113쪽. ‘탁물우의’와 ‘우흥촉물’은 우선 ‘탁물’과 ‘촉물’이 서로 대조된다. ‘탁물’은 물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물을 매개로 의를 전달하자는 뜻으로 보아 마땅하다. 그 의는 물을 매개로 또는 비유의 매체로 하여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촉물’은 물과 부딪히는 행위다. ‘우흥촉물’은 우선 흥이 막연하게 떠오르고 이어서 물과의 부딪힘이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단계를 말한다.

악의 창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과 물의 관계는 ‘탁물우의’의 개념과 일치한다.69)조동일은 ‘우흥촉물’의 개념과 ‘신명’의 문제를 연관시켜 ‘신명풀이 연극’의 이론을 구성하는 단서를 마련하였다(조동일, 앞의 책, 102∼105쪽). 사진실은 이 논의를 수용하여 고려시대 정재 헌선도, 자하동 등의 연출 원리를 논의하면서 ‘탁물우의’의 개념과 결부시켰다(사진실, 「고려시대 정재의 공연 방식과 연출 원리」, 『정신문화연구』 7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110∼111쪽 ; 「정재의 극중 공간·공연 공간 ·일상 공간」, 앞의 책 참조). 성이 덕에 미쳐 악으로 꽃피는 과정에 악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지·성·용과 시·가·무는 악을 본뜨고(象) 꾸미는(飾) 표현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성덕(性德)이 확고하게 선 이후에 사물에 의탁하여 그 뜻을 보여 주는 예술적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70)정재의 본질과 표현에 대해서는 사진실, 「진연과 정재의 공연 미학과 예악론」, 앞의 책, 322∼328쪽 참조.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