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3장 판소리의 전개와 변모
  • 5. 판소리의 현대적 수용
  • 창극
유영대

판소리 사설의 많은 부분이 전통 시대의 상투어나 한문 숙어 등 그 당시에 통용되는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전통 시대 당대에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부분에 주석이 필요하다. 그만큼 우리 언어 문화와 격차가 생긴 것이다. 창극의 대사는 판소리 사설의 영향을 받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한문 투의 말이 현재 사용하는 말로 번역되거나 대체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노래는 대개 전해 오는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전달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고전 오대가를 바탕으로 규격화하여 언제든 동일하게 레퍼토리화한 창극이 만들어졌다. 허규의 작품 ‘춘향전’과 ‘심청가’ 등 오대가는 국립 창극단에서 레퍼토리로 만든 대표적 사례다. 창극을 새롭게 전망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창극은 고전극이므로 정형화하여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창극도 현대 감각에 걸맞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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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심청전
창극 심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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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토대로 하되 오늘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내용으로 현대화한 새로운 소재의 창극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최인훈의 고전 패러디는 창극화한 것도 있고 아직 창극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있으나 고전에 토대를 두고 현대를 투영시킨 작품으로 중요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 최인훈은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 판소리 작품과 온달, 아기 장수 전설 등의 고전 작품을 뛰어나게 패러디하여 원전의 의미를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

놀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놀부전」은 문체도 판소리 투를 닮았으며 연극으로 공연되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러면서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닌 놀부를 근면하고 성실한 인간상으로 변화시켰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심청전에 대한 뛰어난 패러디이자 드라마다. 여기서 심청은 용궁에서 되살아 온 황후가 아니라 청나라에 작부로 팔려간 여인으로 등장한다. 아기 장수 전설에 대한 패러디 작품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도 현실적 맥락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1980년대 이래 인기를 끌고 있는 마당놀이 형식의 공연도 판소리의 현대화와 연관되어 있다. 창극과 마당놀이는 어떤 면으로는 닮아 있고, 어떤 면은 사뭇 다르다. 거칠게 요약한다면 창극은 주로 판소리의 음악 어법을 존중하면서 진행되는 음악극이며, 마당놀이는 전통 음계인 오음계를 사용 하기는 하지만 발성은 완전한 판소리목이 아니라 관객의 취향에 영합하여 서양의 뮤지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음악성은 떨어지나 훨씬 쉽게 대중화하여 현재는 어느 정도 고정 관객까지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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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심청전
마당놀이 심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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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는 고전을 심각하기보다는 가볍게 패러디하여 적극적으로 오늘의 현실 문제를 도입한다. 고전적인 것에서 소재를 취하면서도 오늘의 경험을 담고 있으며, 현재의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시의 적절한 내용이 마당놀이의 현장에서 쉴새없이 자유롭게 터져 나온다. 마당놀이는 일부 배우들이 ‘소리목’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서 어설프게 재미만 추구하거나, 유행어나 음담패설 등과 같은 말초적 수단을 연극 상황이라는 전제로 지나치게 사용하여 코미디화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요소들이 관객을 공연 현장으로 유인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판소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창작 판소리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창작 창극은 전통 연극술의 적용을 통하여 훨씬 정밀해지고 양식화되어서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오늘의 판소리와 창극에 현대 언어를 사용할 경우, 시적 율격(poetic diction)에 맞게 사설을 오늘날의 말로 바꾸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새로 짓는 노랫말은 판소리에서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말투를 포함하여 판소리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 노랫말과 동작을 이면에 맞게, 전통적으로 표현했던 방식을 면밀하게 확인하여 적용함으로써 생명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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