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6권 연희, 신명과 축원의 한마당
  • 제5장 인형극의 역사적 전개 양상
  • 3. 고려시대의 인형극
  • 오락적 인형극의 활성화
허용호

고려시대의 오락적 인형극은 이전 시기보다 한층 활성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간과 상층을 막론하고 오락적 인형극이 벌어졌음이 몇 가지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다음에서 인용하는 기록은 어린아이들이 연행자가 되어 벌인 오락적 인형극의 사례다. 민간에서도 오락적 인형극이 활성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들의 단순한 풀각시놀이로 볼 수도 있지만, 세밀하게 따져 보면 단순한 어린아이들의 놀이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혜민국 남쪽 거리에서 어린아이들이 동서 두 패로 나뉘어서, 각기 풀을 엮어 동녀(童女)를 만들어 비단 옷을 해 입히고서는 또 계집종 하나를 꾸며서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앞에다 사방 한 발 되는 탁자를 놓고서 금옥으로 장식을 하고 음식을 차려 놓았다. 구경꾼이 둘러선 가운데 두 패가 아름다움과 교묘함을 경쟁하고 과시하여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웠다. 이렇게 대엿새 동안 하더니, 끝내고서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247)『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11, 의종 17년 2월.

풀로 어린 여자아이를 만들어 비단 옷을 해 입히고 계집종도 꾸몄으며, 탁자 위에 금옥으로 장식을 하고 음식을 차려 놓았다는 내용으로 볼 때 단순한 풀각시놀이는 아니다. 구경꾼이 가득 모여들고 두 패가 아름다움과 교묘함을 다투며 대엿새 동안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웠다는 주변 정황 역시 이 대목을 단순하게 볼 수 없게 한다.

고려시대에 오락적 인형극이 활성화되었음은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한시 「부답병서(復答幷序)」와 「관롱환유작(觀弄幻有作)」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인형극을 대상으로 지은 두 시 모두에서 작자는 인형극에 대한 낯설음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적어도 이규보가 살았던 12세기 후반에는 인형극이 성행하여 자주 볼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조종사가 놀리는 인형 사람을 현혹시키느라고 / 巧人弄幻使人眩

단청을 만들었다가 순식간에 거두어 버리네 / 丹靑傅會須臾卷

조물주가 사람을 주재하는 것도 이런 놀이일 터인데 / 造物主人亦戲耳

인형 오가는 것 굽어보며 눈 크게 뜰 필요 있으랴248)이규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12, 「부답병서」. / 俯觀去來空瞪眄

인용한 대목은 이규보의 「부답병서」 일부분이다. “조종사가 놀리는 인형”이라 하여 조종사의 조종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단청을 만들었다가 순식간에 거두어 버리네”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두 가지로 풀이가 가능하다. 우선 단청을 ‘울긋불긋하게 색을 칠한 인형’으로 보아 울긋불긋하게 색을 칠한 인형을 가지고 놀리다가 재빨리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249)조동일, 「이규보가 본 꼭두각시놀음」, 『한국 설화와 민중 의식』, 정음사, 1985, 258쪽. 이와는 달리 단청을 절로 보고, 절을 지었다가 다시 헐어 버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250)전경욱, 앞의 책, 509쪽. 이 경우 현전하는 남사당패 꼭두각시놀이의 마지막 대목에서 상좌들이 절을 지었다가 헐어 버리는 대목과 유사하여 흥미롭다. 절을 지었다가 헐어 버리는 내용의 인형극이 적어도 12세기 후반에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확대보기
꼭두각시놀이의 절짓기
꼭두각시놀이의 절짓기
팝업창 닫기

이규보가 지은 또 다른 한시 「관롱환유작」에서도 고려시대 인형극의 양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조물주가 사람 놀리기를 인형처럼 하는데 / 造物弄人如弄幻

달인은 인형을 보고 인생을 성찰하네 / 達人觀幻似觀身

인생살이란 인형놀음과 한가지인데 / 人生幻化同爲一

끝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하겠느냐 / 畢竟誰眞復匪眞

일거수일투족 앙증맞게 사람 모습 갖추었으니 / 俯仰嚬伸具體微

누가 마음의 장인이라 하늘 재주를 빼앗았는가 / 孰將心匠奪天機

사람도 기운 하나로 꿈틀거리면서 살다가 / 人緣一氣成螢蠢

기운 빠지면 인형놀음 마친 듯이 되나니251)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권3, 「관롱환유작」. / 氣出還同罷幻歸

이 시에서 대상으로 하는 인형극에 등장하는 인형은 「부답병서」에 언급된 인형과 같이 사람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이다. “조물주가 사람 놀리기를 인형처럼 하는데 달인은 인형을 보고 인생을 성찰하네.”나, “사람도 기운 하나로 꿈틀거리면서 살다가, 기운 빠지면 인형놀음 마친 듯이 되나니.”라는 구절을 통해 인형 조종사가 인형 놀리는 것을 조물주가 사람을 놀리는 것에 비유하고, 사람이 기운이 빠져 있는 것이 인형극이 끝난 후에 움직임이 없는 인형으로 되돌아간 인형과 다름없다고 하고 있다.

「관롱환유작」에서는 인형 자체의 정교함과 더불어 인형 연행술의 뛰어남을 말하고 있다. “일거수일투족 앙증맞게 사람 모습 갖추었으니”라는 구절은 인형들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묘사한다. 그리고 “누가 마음의 장인이라 하늘 재주를 빼앗았는가.”라는 구절은 인형을 놀리는 연행술의 정교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 속에는 인형 연행자들이 벌이는 인형극이 실제 사람들의 삶을 그럴듯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도 함축되어 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