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 제1장 전쟁의 기원과 의식
  • 1. 전쟁의 정치사에서 문화사로
박대재

현재까지 한국사에서 전쟁을 문화사의 범주에서 다룬 예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기왕에는 통사이든 분류사이든 간에 전쟁은 주로 정치사의 범주에서 다루었다. 전쟁을 정치사의 범주에서 다룬 것은 19세기 전통 역사학 이래 오랜 관습인데, 전쟁을 ‘정치의 연장(continuation of policy)’으로 이해하는 입장은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 1780∼1831)의 『전쟁론(Vom Kriege)』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의 3요소로 정치의 역할을 지적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의 ‘정치성’은 이후 그의 이론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정치가들이 과장한 측면이 있다.1)M. Howard, “The Influence of Clausewitz”, On War, (eds. and trans.) M. Howard and P. Paret,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1984. pp.27∼44.한편, 20세기 중엽 신사학(new history)은 전쟁을 정치사에서 벗어나 사회사의 범주에서 다룰 것을 제안한다.2)F. Braudel, “The Mediterranean and the Mediterranean World in Age of Philip Ⅱ: Extract from the Preface”, On History, (trans.) S. Matthews, Chicago: The Univ. of Chicago Press, 1980. pp.3.

전쟁의 사회사는 전쟁을 통해 신분 구조, 경제 구조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여 당시 사회 저변에 깔려 있던 구조에 접근하는 방법론이었다.3)Y. Garlan, War in the Ancient World: A Social History,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1975. 그런데 20세기 말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회사는 ‘새로운 문화사(new cultural history)’의 도전을 받게 된다. 새로운 문화사는 물질 요소를 정치나 문화의 동인(토대)으로 파악하는 사회사의 유물론에 반대하면서, 문화의 개체성을 강조하고 오히려 문화의 사회적 결정성을 강조하거나,4)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광기의 역사』, 나남, 2003. 문화와 물질 사이 의 뫼비우스(Möbius)의 띠와 같은 상호 작용의 관계를 주목한다.5)린 헌트, 조한욱 옮김, 『문화로 본 새로운 역사』, 소나무, 1996. 예컨대 계급 구분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주관적으로 형성된 계급 의식 내지 문화적 경험의 차이라는 것이다.6)E. P. 톰슨, 나종일 외 옮김,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 창작과 비평사, 2000. 즉, 부르주아가 부르주아인 것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특유한 생활양식 내지 세계관을 발전시켜 소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7)로버트 단턴, 조한욱 옮김, 「한 부르주아는 그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다: 텍스트로서의 도시」, 『고양이 대학살』, 문학과 지성사, 1996.

문화사는 이미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약한 부르크하르트(Jacob C. Burckhardt), 호이징가(Johan Huizinga) 등의 연구 방법론에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 사회사를 경험하면서 그에 대한 문제 제기로 두껍게 읽기, 다르게 읽기, 작은 것을 통해 읽기, 깨뜨리기 등의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면서 ‘새로운 문화사’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8)조한욱,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 2000. 새로운 문화사는 역사 연구에 인류학의 방법론을 접목한다는 점에서 역사인류학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인류학은 문헌을 인류학적으로 해석하는데,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구조보다는 개별적이고 변화 가능한 인자(agent)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9)박영태, 「역사 인류학의 방법에 대한 연구」, 『성대사림』 10, 1994 ; 리햐르트 반 뒬멘, 최용찬 옮김, 『역사 인류학이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001 ; 퍼터 버크, 조한욱 옮김, 『문화사란 무엇인가』, 도서출판 길, 2005. 특히,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민중의 생활과 문화에 주목하는데, 이런 경향은 한국학의 입장에서 보면 1990년대 이후 대두하고 있는 역사민속학10)한국 역사 민속 학회, 『역사 속의 민중과 민속』, 이론과 실천, 1990. 의 방법론에 비견된다. 한국의 역사민속학은 20세기 전반 손진태(孫晉泰)의 연구에서 비롯되는데, 그는 기록에 잘 남아 있지 않은 문화를 민속(토속)을 통해 역사적으로 복원하고자 시도했다.11)한국 역사 민속 학회, 『남창 손진태의 역사 민속학 연구』, 민속원, 2003. 이러한 손진태의 연구 방법론은 국내 역사민속학의 토양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통적인 역사학이 전쟁의 정치성을 부각하였다면 기존 사회사는 전쟁의 사회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기왕의 시각과 달리 이 글은 고대의 전쟁에 대해 새로운 문화사의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일단 ‘전쟁의 문화사’라고 명명해 두면 어떨까 한다. 전쟁의 문화사에서 전쟁은 그 시대의 문화를 바라보는 ‘창(窓)’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공식적인 기록(연대기)을 통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고대 사회를 전쟁이라는 문화의 창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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