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7권 전쟁의 기원에서 상흔까지
  • 제2장 출정에서 회군까지
  • 2. 전투
  • 적을 처음 만나면 해야 할 일
심승구

적진에 들어가면 장수는 지형과 병기를 잘 배합하여 전투를 대비한 행군을 했다. 우선, 한 길 반이 넘는 도랑과 수레가 빠질 만한 물과 비탈길에 돌무더기가 쌓인 곳에서는 보병이 맡아 싸웠다. 이런 지형에서는 전차병, 기병 5명이 보병 1명을 당해 내지 못했다. 평원이나 광야가 서로 이어진 곳에서는 전차와 기병을 이용하였다. 이런 지형에서는 보병 10명이 전차병이나 기병 1명을 당해 내지 못했다. 마주 보이는 곳에 계곡이 가로질러 있는 곳에서는 활과 쇠뇌를 사용했다. 이런 지형에서는 칼과 방패 3명이 궁노수(弓弩手) 1명을 당해 내지 못했다. 초목이 무성하여 잎새와 가지가 우거져 있는 곳에서는 끝이 갈라진 짧은 창(矛鋌)을 사용했다. 이런 지형에서는 긴 창 2명이 모연수(矛鋌手) 1명을 당해 내지 못했다. 높은 언덕과 좁은 길에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는 칼과 방패를 사용했다. 이런 지형에서는 궁수와 노수 2명이 칼과 방패 1명을 당해 내지 못했다.142)정도전, 「병기와 지형」, 『진법』, 전사 편찬 위원회, 1983, 266쪽.

출병에서 진영까지 준비가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이때 첫 번째 해야 할 일이 바로 요적(料敵)이라 해서 적정을 탐지하 는 일이었다. 적과 싸우기에 앞서 보병으로 된 유격대(遊軍)와 기병으로 이루어진 유격대(遊騎)가 적군의 동정을 정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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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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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하지 않고 적을 공격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적군이 전장에 막 도착하여 지형을 잘 모르거나 영채(營寨, 임시로 만든 성)를 아직 세우지 못했을 경우, 적이 나루터를 건너는데 선박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이 서로 뒤섞여 있을 경우, 적이 얕은 물을 절반쯤 건넜을 경우, 적이 관문(關門)을 절반쯤 통과하였을 경우, 적이 굴곡이 심한 길목을 만나 인마(人馬)의 통행이 어려울 경우 등이다.

또한 적군이 아직 진영을 설치하지 못하고 깃발이 정돈되지 못하며 인마가 떠들고 있을 경우, 적의 병력은 많으나 주장이 확고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여 군사들이 자주 뒤를 돌아볼 경우도 역시 곧바로 공격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적장이 용병술에 능한지 능하지 못한지를 사전에 알 때만 공격할 수 있었다.

적이 진영을 설치한 지 오래되었는데 갑자기 연기와 불을 넓은 지역에 피우고 깃발을 많이 꽂아 의병(擬兵, 의진지)을 만들 경우는 그 진영을 떠나기 위해서거나, 적국에 변란이 있어 철군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아군을 유인하기 위한 술책이다. 이때에는 급히 정예병을 출동시켜 요로(要路)에 매복하고, 정탐하는 군사에게 높은 곳에 올라가 적의 동정을 살피게 한다. 그리고 아군의 성채를 굳게 지키며, 재물을 많이 써서 적군을 매수하여 적군의 허실을 알리게 했다.

적이 만일 아군 측 민가의 가축과 재물 등을 노략질하고 돌아갈 경우, 적의 군세가 강성하면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적이 통과할 지역과 시기를 미리 판단한 다음, 정예병을 요로에 매복시켜 놓고 의병을 설치한다. 그리하여 적과 일진일퇴해서 적군을 혼란에 빠지게 한 뒤에 장수가 직접 소속 군사를 이끌고 적의 주장을 추격하게 했다. 물론 이 방법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활용했다.

행군할 때 적병이 있는 곳에서부터 멀리 떨어져서 아무런 우려도 없는 환경이 아니면 주민의 집에 들어가 휴식하거나 유숙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되었다. 혹 들어가 휴식 또는 유숙하는 경우에는 척후대를 멀리 배치하고 야간 순시를 엄밀히 하여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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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능행도병의 야영 장면
화성능행도병의 야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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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의 눈과 귀 구실을 하는 유군(遊軍)과 척후(斥候)를 잘못 운영하면 패전으로 직결되므로 조심스럽게 운영하였다. 특히, 적의 복병을 수색하는 일은 전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간혹 승리한 장수와 병사들이 이 원칙을 지키지 않다가 패배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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