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1장 비금속 상품 화폐 시대의 돈
  • 1. 다양한 돈들의 부침
  • 선사 시대의 교역과 화폐
이헌창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자 힐데브란드(B. Hilderbrand)는 교환의 매개 수단이 변천하는 것을 기준으로 경제 발전 단계를 자연 경제 → 화폐 경제 → 신용 경제로 구분하였다. 자연 경제란 교역과 화폐가 없는 자급자족경제를 말하며, 신용 경제란 예금 통화가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이다. 인류의 경제 생활을 보면, 처음에는 자급자족과 물물 교환이 지배적이다가 화폐가 발생하여 역할이 확대되고 나아가 신용 화폐의 비중이 커지므로, 이 경제 발전 단계론은 대체로 맞다고 하겠다.

엄밀히 따지면 이 학설에도 문제점이 있다. 교역은 역사 시대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므로, 순수한 자연 경제란 존립하기 힘들다. 소금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인데, 소금이나 그 대체물을 누구나 자급할 수는 없어, 교환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석기 시대라도 석기의 재료를 조달하기 힘든 지역은 그것을 교환에 의존하였다. 최근까지 석기 시대에 살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이르요른트(the Yir Yoront) 족은 돌도끼의 재료를 가까이서 얻을 수 없었으나, 상당히 정교한 광역의 교역망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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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요석제 화살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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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역은 대부분 물물 교환에 머물렀으나, 그래도 재화나 용역을 교역하는 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불 수단인 화폐는 역사 시대 이전부터 출현하였다. 물물 교환의 가장 곤란한 점은 거래 쌍방의 욕구가 동시에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쌀을 가지고 옷을 교환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옷을 가지고 쌀을 바꾸려는 사람과 만나야 한다. 이러한 불편은 화폐라는 매개수단으로 쉽게 해소된다. 따라서 교역의 개시와 더불어 역사 시대 이전부터 인류는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상품을 발견하였다. 소금, 쌀 같은 주식물, 옷감, 석기 시대의 석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므로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도 석기 시대부터 교역이 존재하였음은 고고학의 연구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신석기시대에 남부에서는 흑요석(黑曜石) 생산지가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가 다량 출토된 것은 동북부나 일본 규슈(九州)와의 교역을 통해 조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시작되는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이 시작되어 교역이 더욱 활발해졌는데, 북한 학계에서는 이 시기의 교환 수단으로 모피, 곡물, 조개껍질, 돌로 만들어진 돈이 통용되었다고 본다. 돌돈은 보통 직경 40∼50㎝로 둥글게 다듬고 직경 6∼8㎝의 구멍을 뚫었다.1) 홍희유, 『조선상업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9, p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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